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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가 건네는 위로

화려함을 뒤로하고 그 빛을 내려놓고 빈 몸으로 서 있는

by 현월안




아름다운 가을 내내 노랑과 빨강, 주홍이 번갈아 세상을 물들였다. 가을은 마치 한 편의 오케스트라처럼 계절이 펼치는 장엄한 피날레였다. 그 화려함을 뒤로하고 그 빛을 내려놓고 빈 몸으로 서 있는 모습을 마주하면 마음이 잠시 멈춘다. 우리 집 창밖의 은행나무도 어느새 보석 같은 노란 잎을 다 떨어뜨리고, 하늘을 향해 앙상한 가지를 들어 올리고 있다. 어쩌면 화려했던 가을보다 더 깊은 사유를 안겨준다. 나무의 잎이 떨어진 풍경은 언제나 말없이 가르친다. 이제 다음 한 걸음을 내디딜 시간이라고.



겨울나무를 마주할 때면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의 시를 다시 펼친다. 그는 사소한 것들을 맑고 간결한 언어로 길어 올려, 삶의 슬픔과 아름다움을 마치 투명한 그릇에 담아 보이는 시인이다. 그의 시세계는 언제나 묻는다. 시는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 물음 앞에서 다시 멈춰 서게 된다. 시는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지만, 그 거울이 특별한 이유는 그 안을 들여다보는 시인의 눈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바라본다는 것은 살아낸다는 것이며, 느낀다는 것은 기억한다는 일이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차려입고 벗어던지는' 표현은 나무 한 그루가 한 해에 겪는 변화를 몇 자로 압축한 문장이다. 연초록의 숨결이 돋아나고, 짙은 녹음이 세상을 가리고, 그 녹음이 불길처럼 물들어 다시 스러지는 생의 전 과정을 펼쳐놓는다. 그러고 나면 시는 나무의 겨울을 데려온다. 가지들은 텅 빈 채로 하늘을 향해 뻗어 있고, 그 사이로 달이 빛난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자리에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이 드러난다. 과장 없는 삶의 본질과 비어 있음의 품격, 그리고 버티어 서 있는 존재의 자세.



겨울이 녹록지 않은 계절임을 잘 안다. 차갑고 쓰라린 바람이 무심히 불어올 것이고, 어둠은 길어질 것이다. 그러나 나무는 겨울 앞에서 주저하지 않는다. 슬기로운 생은 이미 꽃눈을 품은 채 서서 잠드는 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 큰 그림 꽃눈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지만 나무들은 이미 내년의 빛을 준비해 둔 채, 묵묵히 버티고 있다. 나무의 인내는 침묵 속에서 또렷하게 드러난다. 그 고요한 기다림 속에 계절 한 줄기가 다시 싹 틔울 희망이 숨어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문득 내 마음속 꽃눈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다. 아직 말로 다 꺼내지 않은 꿈일까, 잊은 줄 알았던 감정일까, 또 더 사랑하고 더 따뜻해지고 싶다는 마음의 미세한 떨림일까. 계절의 순환은 언어로 온전히 붙잡을 수 없는 신비를 품고 있다. 자연은 거대한 시이며, 인간은 그 시를 읽는 작은 독자일 뿐이다. 내가 아무리 글로 그림으로 자연 예찬을 한다고 하더라도 자연을 다 담을 수 없다. 그 앞에서 겸손히 느끼고 감탄할 뿐이다. 그 감탄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내가 자연과 이어져 있다는 가장 은밀한 표현이다.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인간이 나무처럼 서서 잠들 수도 없는 일이다. 바람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가장 추운 날에도 내면의 온기를 지켜내기도 어려운 일이다. 인간의 마음에도 꽃눈이 있다면, 그 꽃눈은 상처와 시간을 지나 더욱 단단해진 사랑의 형태일 것이다. 인간은 자연을 닮아 있고, 자연 속에서 늘 배우며 살아간다. 계절은 다그치지 않는다. 조용히 말할 뿐이다. 한 계절이 또 지나간다고.



~~~~---~-~-==~~----ㅊ


벌거벗은 나무들 사이로 불어오는 겨울바람 속에서, 아직 드러나지 않은 봄의 순환을 기억한다. 자연이 건네는 사랑은 늘 이렇게 조용하고 단단하다. 이겨낸 겨울 뒤에야 꽃은 피고, 버틴 시간 끝에야 생은 다시 반짝이기 시작한다. 삶은 그렇게 겨울을 건너갈 것이다. 가진 것을 내려놓고 마음을 단단히 모으고, 보이지 않는 꽃눈 하나를 마음속 깊이 심어 두고, 난 오늘의 바람을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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