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만인가 맞선자리가..
봄비가 내리는 봄날 바다 수평선이 마치 지우개로 지워진듯 아스라 하던 오후였다. 거리는 청춘 남녀들로 가득하고 차량반 사람반의 도로는 각양각색 우산들로 채워졌다. 간혹 투명한 비닐 우산을 편의점에서 사가는 사람들이 눈에 띄여 준비되지 못했던 만남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 또한 마음의 준비가 되지 못해 머릿속이 털지못한 우산처럼 정리 되지 못했다.
나는 심각하거나 가볍거나 두가지 상황에 늘 익숙했던 것 같다. 너무 쓸데없는 생각에 몰입하거나 진지해야 할때 가벼워 오해를 받는 그런 타잎의 남자.. 그도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책임이라는 의식을 최소한 내 개인적 삶에서 발휘해본적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스트레스를 받을게 뻔하고 잘못돼 봐야 해프닝이니 그게 삶을 대하는 일상의 태도였던것이 분명하다.
맞선보는 그날도 심각하거나 가볍거나 하는 그 숱한 해프닝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약속장소는 카페였는데 뷰만 근사하면 되겠지 라며 뷰좋은 카페를 키워드로 검색을 했고 카페 주인의 후원을 받았음직한 카페의 후기글을 보고 카페를 정했다. 부산에 살기는 했지만 김해 창원으로 거처를 옮긴것이 이년이 넘었을 때였다.
변하지 않은 것은 광안리 바다의 푸른 물결과 인파 뿐 이었다. 트랜드와 취향이 빠른 속도로 변하는 것은 젊은이들의 거리와 상점들만한 곳도 없으리라. 분명 과거의 나는 광안리 이곳 어디에서 한두번 정도는 맞선이나 데이트를 해봤던 기억이 새록 새록 나는데 새롭게 달라진 간판의 숫자 만큼이나 맞선 생각에 생각이 많아졌고 심경도 복잡해졌다.
분명 맞선자리로 나가는 자리가 심쿵하는 자리여야 맞는데 몇개월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종종 생각났다.
그러면 가슴한구석에 거센 파도가 밀어닥쳤다가 빠져나가는 허전함이 일었다. 눈시울도 뜨거워지고 광활한 벌판 가운데 혼자 내버려진듯한 고독감도 느끼곤 했다.
그렇게 이별과 만남은 교차하듯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약속장소에 도착하는 시간만큼은 꼭 지키고 싶었다. 여자들이 보통 미리와서 기다리지 않고 다소 늦게 나타날것이라는 상상부터 하면서 주차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비가 오는데 주차할곳을 비집고 아니 정확하게는골목 어디쯤 무례하게 주차를 하고 나왔다.
주차 한곳에서 약속 장소까지는 한 오백미터 가량 거리이고 나의 그 덜렁거림으로 우산을 챙겨오지 않음을 깨달으며 편의점에서 비닐우산을 집어들었다. 휴대폰 속 시간을 확인하니 한 오분 정도 남았는데 카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 에 위치했다. 엘리베이터 공간은 왜 이렇게 비좁은지 ..엘리베이터에 내려서 약속장소인 카페를 막상보니 현기증이 났다. 안경에 맺힌 빗방울 때문인지 카페에 들러서자 생긴 습기 때문인지 약속장소를 잘못 선택했다는 후회감 때문인지 아득한 생각에 당황스러움에 어찌할바를 몰랐다. 앉을 만한 자리도 없었지만 이십대 미만으로 보이는 어린 친구들의 소음으로 오늘 맞선의 처참한 결과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어제 밤 내 잠자리를 뒤숭숭하게 만든 그 꿈" 그 노파의 희롱이 떠올랐다.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던 그 꿈
항상 사람들은 자신의 이상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나의 이상형은 무엇이었나? 어릴적 나는 예쁘고 고운 심정이 착한 사람을 꿈꿔왔던 것 같다. 게다가 어머니의 영향 때문인지 직장을 가지고 있는 당당한 커리어우먼을 배우자로 꿈꿔 왔다. 이쁘고 돈잘벌고 착하고 현모양처 같은 천사같은 아내 .. 이런 이상형이야 모든 남성들의 바람일것이고 나는 정말 뜨거운 사랑을 해보고 싶었다. 보고있어도 보고 싶고 떠나 있으면 더욱 그리운 사랑 이런 이상적인 사랑을 지금까지도 누려보고 싶었던 것은 변변치 않은 사랑 연애 조차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결혼정보회사에 많은 돈을 주고 조건을 보며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과 알음 알음 소개시켜줘서 만났던 여성들은 내가 눈이 높아서였는지 사람을 보는 식견이 미천해서 였는지 내맘에 차지 않았다. 어릴적에 데이트를 해도 만나지 못한 여성을 나이 오십에 만날수 있으리라 누가 상상하겠는가.
준비없음과 즉흥적인 삶의 태도 가 익숙해져서인지 순발력과 문제 해결 능력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번도 통화해보지 않은 상대 여성을 전화를 걸어 약속 장소를 변경하자고 제안을 했다. 내생각엔 그때 내 말투는 다정하거나 상냥하거나 했던 것이 아니라 다소 사무적 목소리 였다.
" 지금 어디쯤 계신가요"
" 저 도착했는데 주차 할곳이 없어 계속 주변을 돌고 있어요"
아 생각보다 더 심각하구나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얼마나 짜증이 날까
" 저 죄송한데 약속 장소를 바꿔야 할것 같습니다"
"네 어디로요? 저도 주차 여건이 괜찮은 곳으로 바꾸는게 좋을 것 같네요"
" 혹시 추천해주실만한 장소 있으신가요?"
물론 나도 전화 통화하기 전에 만나야 할 장소를 검색해둔 차였다. 그래도 신의 한수는 상대방에게도 있으리라 생각 했건만 ..
" 저도 딱히 생각 나는데 없는데 .."
" 제가 서 있는 장소에서 보니깐 민락회센터 옆 건물에 카페가 보이는데 거기는 어떠세요?"
" 일단 장소부터 정해주시면 찾아가겠습니다"
그래도 이 만남이 다음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좋은 장소에서 만난다면 인상이 더 나빠질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주차여건도 좀더 나은 수변공원쪽 카페를 찾아보기로 했다. 자체 주차장도 있고 뷰도 좋고 한 그런 장소를 검색해서 상대여성에게 문자를 했다.
분명 패배한 게 분명한 게임이지만 매너 줗은 패자의 모습을 남기고 싶었다. 그날 만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