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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1등 (4)

햇빛 아래에서 불린 이름 하나

by 김별

복도에서 길을 잃고, 성적에서 길을 찾다

초등학교 졸업식 장면은 이상하게도 흐릿하다.

누군가는 와서 꽃다발을 안겨주고 축하도 해주었을 텐데,

사진처럼 또렷한 장면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고향의 작은 학교였다면 어땠을까.

분명 상도 받고 큰 박수 속에 졸업장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학 이후, 존재감은 희미했고

도시는 그저 빠르게 흘러가는 풍경일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어느새 버스를 타고 중학교에 가는

낯선 ‘도시의 학생’이 되어 있었다.


대구의 가톨릭 미션스쿨, 이름부터 반짝이는 샛별 H여중.

그 이름은 마치 내 앞날을 예고라도 하듯

작은 빛을 품고 있었다.

지금은 남녀공학으로 바뀌었지만,

그 시절의 나는 오직 낯설고 높은 건물 속에서

나만의 길을 더듬어 찾고 있었을 뿐이었다.

중학생 첫날, 잊히지 않는 순간이 있다.

너무 넓고 너무 반듯한 건물 속에서 헤매다

전혀 다른 교실로 들어갔고,

결국 나만 늦게 우리 반 문을 열고 들어갔다.

51번—마지막 번호.

담임 수녀님과 아이들의 시선 한가운데에 선 채

겨우 숨을 고르며 자리에 앉았다.


그 장면을 떠올릴 때면

나는 가끔 그 시절의 나를 공상 소녀로 본다.

주변 파악은 느리지만, 상상은 나 홀로 경계없이 넘나드는 아이.

단층집과 흙길만 있던 고향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복도는 작은 미로 같았다.

아마 그 낯섦이, 나를 그 교실 문 앞에

조금 늦게 데려갔던 것이리라.



21등에서 1등까지, 아주 짧은 거리


중학교 생활은 수업시간 ‘집중 반, 공상 반’,

그런 어정쩡한 균형 속에서 흘러갔다.

그래서일까. 첫 중간고사 성적은 21등이었다.

크게 놀라지도, 아쉬워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같은 버스를 타는 친구에게 영어 참고서를 빌리려 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참고서를 사야 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았던

그런 순한 마음의 시절이었다.


그러나 작은 체구에 안경을 쓴 그 친구는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안 돼.”


순간적으로 마음 한 곳이 꽉 조여왔다.

참고서가 그렇게까지 귀한 존재였나—

그때의 당혹은 조금 웃기고, 조금 쓰라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거절이

내 안에서 묘한 반짝임을 남겼다.

‘그래, 참고서 없이도 해보자.

그러면 놀라겠지.’


그 생각이 들자,

마치 어둠 속에 갑자기 촛불이 켜지듯

내 마음이 또렷해졌다.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전 과목을 정리했다.

그렇게 시험을 봤다.

그리고,

21등이었던 나는

기말고사에서 1등이 되었다.


나도 놀라고, 친구들도 놀라고,

담임 수녀님까지 놀랐다.

"운칠기삼"은 운동에서나 통하는 말이지,

시험에서 운을 기대긴 어렵다.


그러니 그 작은 성적표 한 장이

내 안의 어떤 문을 조용히 열어젖혔다.


그리고 이 일을 잊을 수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여름 방학 직전, 운동장에서 열린 조례에서

전교 10등까지 차례로 호명되었다.

햇빛 아래에서 내 이름이 불리고

나는 단상 위로 걸어 올라갔다.


교장 신부님의 손을 잡았던 순간,

상장을 받던 그 장면이

내 기억의 한 귀퉁이에 선명하게 남았다.

그리고 그때 나는 깨달았다.


“아,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구나.”


그리고 신이란 존재는 희미했지만

누군가 내 등뒤를 떠 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요즘 말로는

‘끌어당김의 법칙’이라 할 수도 있고,

혹은 돋보기 아래 모인 햇빛이 종이를 태우는 것처럼

나는 처음으로 ‘집중의 온도’를

제대로 체험하게 되었다.

집중한 마음이 일으키는 조용한 기적을!

.

그날 이후,

다소 얄밉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라는 말이 나에게도 자연스러워졌다.


내가 항상 1등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1등이라는 자리가

큰 산이라기보다

마음을 모으면 닿을 수 있는 언덕 정도로

느껴졌다는 뜻이다.


그 가벼운 감각이

고3까지의 긴 학생 시절을

한결 부드럽게 지탱해 주었다.

그렇게 중1 때의 그 작은 기적 같은 경험이,

내 학창 시절 전체의 분위기를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바꾸어 놓았다.




사족 ~~나는 세상 없어도 마음이 내키지 않는 일은 잘 못/안 하는 편이다.
자서전도 덜컥 시작해놓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연재일을 지키지 못했다.
미리 글을 써 두고 시작한 것도 아니고 평소처럼 글은 그냥 마음이 동하고 쓸거리가 생기면
그때 그때 쓰는 편이라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앞으로는 되도록이면 연재일을 지키려 한다.
이 글은 지난 주 수, 금 양일을 땡땡이 친 걸로 오늘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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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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