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질의 수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했던 노력
사람이 잠을 자는 것은 깨어 있는 동안 열심히 일한 뇌가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 12시간 이상 머리를 혹사시키고 잠을 제대로 자지 않으면 그다음 날 컨디션이 엉망이 되는 것은 많이 경험해 봐서 잘 알고 있다. 이것은 잠이 오지 않게 하는 약물의 힘을 빌려 깨어있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깨어있더라도 뇌가 과부하되어 일하기를 거부한다면 어쩔 도리가 없다.
회사를 다닐 땐 수면장애를 겪어본 적이 없다. 자리에 누워 머리를 베개에 올리고 눈만 감으면 바로 잠들기 일쑤였다. 일만 하다 하루를 마감하는 것이 아쉬워서 누운 채로 핸드폰을 보는 경우는 왕왕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도 핸드폰을 손에서 놓고 눈을 감으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바로 꿈나라로 가곤 했다. 그만큼 회사에서 두뇌 노동을 많이 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예전에 일을 그만두고 쉴 때 아주 특이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퇴사 이후 두 달 동안 말 그대로 뇌를 사용하지 않고 지낸 적이 있었다. 의식적으로 한 건 아니었고 그동안 머리를 아프게 하던 모든 문제에서 벗어나 휴식을 하고 싶다는 바람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두뇌가 일을 해야 하는 독서, 공부, 연구 이런 것들을 멀리하고 무뇌상태로 놀기만 했었다.
그러자 곧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바로 밤에 잠이 안 오는 것이다. 뇌가 피곤하지 않고 계속 활력 넘치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날은 밤새 다른 놀거리를 찾아 놀기도 했다. 그 놀 거리래 봐야 역시 머리를 쓰지 않는 서브컬처 문화 소비 정도였다. 수면장애와는 다른 증상이므로 거의 밤을 지새우고 난 다음 날에도 몸은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머리도 아주 기운 넘치게 깨어 있는 상태였다.
처음엔 생체리듬이 망가진 건가 걱정도 되었지만 곧 이 상태를 즐기게 되었다. 적응이 되자 이틀에 한 번씩 8시간 정도 자도 생활에 지장이 없게 되었다. 깨어있는 채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늘어난 셈이다. 이 신기한 경험은 약 한 달 정도 계속되다가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예전의 루틴으로 돌아가버리긴 했다. 하지만 그때 겪었던 신기한 경험은 아직도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물론 잠 대신 얻게 된 시간을 다시 생산적인 활동에 사용했더라면 자연히 뇌가 일을 하게 될 테니 이런 이상한 각성 상태는 곧 사라졌을 것이다. 그 말인 즉 정상적인, 아니 현대 사회에서 직장인의 일반적인 ‘일’과 ‘놀이’의 비율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 아무런 걱정도 스트레스도 없는 진정한 백수일 때만 겪을 수 있는 특이 케이스인 것이다.
자연스러운 수면 상태를 유발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 뇌를 일하게 한다
- 몸을 일하게 한다
조합을 해 보면 총 4가지 경우가 있다.
1 격렬한 육체 활동을 하고 고강도의 두뇌 활동을 한다
이 경우는 그냥 꿀잠이다. 눈을 감았다 뜨면 아침일 것이다. 활동이 과하면 오히려 본인의 의지대로 잠들지 못하고 졸음을 못 이겨 쓰러질 가능성도 있다. 웬만한 체력과 정신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이런 생활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2 격렬한 육체 활동을 하지만 두뇌 활동은 하지 않는다
몸만 쓰는 케이스. 쉽게 잠들고 안정적인 수면 상태를 유지할 것 같지만 내 경험상 이 경우는 수면의 질이 고르진 않았다. 오히려 아침에 너무 일찍 깨서 다음 날 컨디션에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었고, 몸은 피곤하나 머리는 말똥말똥하여 잠들지 못하고 밤늦게까지 뒤척이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얻는 이득은 신체의 튼튼함이 있겠다.
3 육체 활동은 하지 않고 고강도의 두뇌 활동을 한다
운동할 시간조차 나지 않고 책상에 오랜 시간을 앉아 일해야 하는 직장인의 패턴. 집에 가면 모든 것이 피곤해져서 씻지도 못하고 잠들기도 한다. 잠은 깊게 잘 수 있으나 다음날 가뿐하게 일어날 수가 없다. 일어나는 것도 힘들고 수면 양이 모자라면 오히려 더 피곤한 날이 되기도 한다.
신체의 기능도 떨어지고 결국 병만 얻게 된다.
4 육체활동도 하지 않고 두뇌 활동도 하지 않는다
이건 플라나리아의 삶인가? 의도적으로 시도해 볼 수는 있겠으나 평생은 불가능할 것이다. 돈을 벌 수도 없거니와 지적 욕구를 채울 수도 없다.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터득한, 7-8시간 깊게 잠을 자고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볍거나 중 강도의 육체 활동을 꾸준히 하되, 중에서 고강도 사이의 두뇌활동을 적절하게 섞어 주는 것>이었다.
너무 몸을 혹사시킬 경우 머리를 쓰기 전에 몸이 지쳐 의욕을 잃고 만다. 너무 머리를 혹사시킬 경우 정신적 피로감에 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하고 루틴을 포기하게 된다. 뭐든 적절한 비율로 조합해 주는 것이 좋다. 아마 개인 성향에 따라 가지각색의 조합 방법이 나올 것 같다.
나는 육체활동보다는 두뇌활동을 선호하는 편이므로 두뇌활동을 주로 하되, 두뇌활동에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 경우 뇌에 자극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육체활동(주로 산책)을 한다. 또는 두뇌가 너무 시달려 휴식이 필요한 경우는 오로지 몸에만 집중할 수 있는 운동(스트레칭/요가 또는 등산)을 해서 머리에 쌓인 것들을 싹 날려버리기도 한다.
최근에 집중해서 글을 써야 했던 기간이 2주 정도 있었는데, 그때 나는 죽은 듯이 잠에 들곤 했다. 거의 직장에서 집중해서 일하는 시간만큼이나 몰입해서 글을 썼는데 그 피로감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물리적인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하는 일이었기에 앉아서 글만 쓰는 것이 즉각적인 해법이었지만 그렇게 해서는 좋은 글이 나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용케 집중해서 작업을 완료했다 하더라도 그 이후에 멍해진 머리가 무조건 쉬겠다고 파업하는 바람에 비슷한 시간만큼을 무기력하게 날려버리기도 했다. 결국 페이스 조절이 문제다.
되게 신기한 것을 알려준다는 식으로 떠들고 말았는데 결국은 다 아는 얘기다.
양질의 수면을 꾸준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육체와 두뇌를 적절하게 돌아가며 써야 한다는 얘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그 일을 이루는데 필요한 활동은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고 육체와 두뇌를 어떻게 배분해서 써야 할지 계획을 해보자. 거창할 필요도 없다. 계획을 실천해 나가다 문제가 있으면 바로 수정이 가능하니까.
나는 일주일에 3번 이상은 점심 먹고 혹은 저녁 시간 이후 동네 산책을 한다. 그리고 역시 일주일에 3-4번은 집에서 자기 전 목과 어깨를 이완해 주는 스트레칭을 하거나 요가를 한다. 긴장했던 두뇌를 풀어주고 두뇌가 아닌 몸의 여러 곳곳에 신경을 쓰다 보면 몸이 편안해진다. 그리고 나면 더 편안하게 잠들 수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집에서 하는 운동이 잘 습관이 되지 않고 귀찮기만 했었다. 하지만 오래 앉아서 일하는 사람이 해야 하는 최소한의 운동이라고 생각하니 지금은 글을 쓰다 몸이 찌뿌둥 해지면 자연스럽게 매트를 깔고 운동을 시작한다. 도저히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막혔다고 생각할 때 몸을 움직여서 새로운 자극을 주면 두뇌는 그걸 에너지 삼아 또 다른 아이디어를 떠올리며 일을 하게 된다.
다들 건강한 상태로 좋아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억지로 잠들려고 노력할 필요 없이 원하는 시간에 기분 좋게 잠에 빠져들 수 있으면 좋겠다.
잠에서 깨어나면 쌩쌩해진 두뇌로 하고 싶은 일에 몰입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