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면접을 마치고 돌아온 어느 오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역시 나이에서 이력서가 걸러지고 있었구나.
13년의 경력이 있느니만큼 당연히 나이도 먹었다.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세월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너무 잦은 이직이, 누군가에게는 너무 늦은 시작이, 누군가에게는 새롭게 뭘 배울 나이가 아니라는 편견이 내 이력서를 대신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예상은 했어도 유쾌한 일은 아니다.
수 많은 업장에 이력서를 돌리고 돌려서 겨우 한 곳에서 면접을 보자는 전화를 받고 오늘 오전 다녀왔다.
그리고 태어나 이렇게 수치스럽고 비참한 면접은 다시는 있어서는 안된다는 마음으로 기록하려고 한다.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통해 이력서를 넣었고, 10분도 안되서 전화가 오길래 기뻐했던 마음으로 응했던 면접이었는데, 처음부터 싸하기는 했다. 면접 시간을 개인 사정으로 두 번이나 바꾸며 면접 당일날 아침까지 좀처럼 시간을 정하지 못하더니 내가 도착하는 시간대로 시작하자는 애매한 대답을 받아들고 면접장소로 향했다.
이력서도 검토하지 않았는지 내가 앉자마자 구직 사이트를 모니터에 띄워 내 이력서를 검토하질 않나, 이력서 인쇄도 내가 도착한 후에 허겁지겁 하느라 나에게 인쇄된 프린터를 가져다 달라고 (?) 하는 쇼킹한 경험에 정신을 못 차리고 얼얼하게 앉아있는 중이었는데 첫 마디가 다름 아닌,
"나이가 꽤 있으시네요?"
였다. 그 말을 듣고 잠시간 사고가 멈췄다. 내 나이를 모르고 나를 불렀나? 이력서를 조작한 것도 아닌데 나이를 몰랐다는 게 말이 되나? 많은 나이가 걸리면 애초에 안 불렀으면 됐을 일 아닌가? 여러가지 생각이 쏜살같이 머리를 휘저었고 정신을 차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다음 질문은 더 가관이었다.
"영문학과 나오셨네요? 영어 이메일은 파파고 있으니까 괜찮죠?"
물론 영어 비지니스 이메일을 쓰면서 파파고를 한번도 쓰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렇게 빈정대면서 들어야 할 말인가 싶어 잠시간 또 멍해졌다. 지금껏 경력을 쌓아오면서 나는 회사를 세 번 이직했는데 이 이직 횟수가 너무 잦은 것 같다며 나에게 이유를 물어보기에
"연봉 협상에서 잘 안된 이유가 크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연봉 인상 폭이, "
"아, 돈 때문에."
"... ..."
이거 나랑 지금 면접을 보자는 건가, 시비를 걸겠다는 건가?
잠시 말이 막혀 또 입을 다물었더니 이 말은 좀 부끄러운 줄 알았는지 허허 웃으며 자신의 회사에 대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좁아 보여서 의심스럽겠지만 - 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말에서 단박이 이 사람을 읽어내릴 수 있었다.
자존심이 굉장히 세고 방어기제가 엄청난 사람이다.
처음으로 만난 자리에 자연스럽게 사람의 단점을 먼저 읽는 부정적인 태도와 그것을 입 밖으로 구태여 꺼내어 말하는 무례함, 그리고 자신이 지적당하지 않으려고 먼저 밑밥을 깔아두는 방어적인 태도가 내 모든 인생의 경험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런 사람을 상사로 두면 그건 망한다, 는 레이더를 엄청 울려대고 있었다.
나이가 많다니, 그럼 부르지 말았어야지. 이직 사유가 마음에 안 들다니, 그럼 나중에 불합격으로 말했어야지. 이 정도 상식도 되어있지 않은 사람이 인사를 하고 채용을 진행한다고? 진심인가?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몰상식에 감탄할 새도 없이 무례함에서 무례함이 계속해서 이어졌는데,
정말 비참한 건, 그 앞에서 마냥 웃고만 있어야 하는 나 자신이었다.
한 마디도 못하겠더라. 심지어 일주일에 두시간씩 주 2회만 일해주면 되니까 다른 메인잡을 구하라는 공고와 전혀 다른 말 앞에서도 제대로 말 한마디 못하고 듣고 있어야만 했다. 왜냐면, 그게 지금 채용시장에서의 구직자의 역할이니까. 자리 하나가 아쉬운 사람의 입장이니까.
아, 진짜 먹고사는 게 뭘까. 20대 초반에는 일본으로 처음 유학을 가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할 때는 꼬박 세달 남짓 걸렸다. 거절이 일상이었던 지라 마지막에 면접을 보러 오라고, 그리고 너무나 호의적으로 면접을 봐주었던 부장님께 감사해서 귀국하기 하루 전까지 모든 시프트를 다 채우고, 그 후로 취업이 되어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을 때 감사했던 마음을 담아 선물을 사들고 매장에 다시 방문하기까지 했었다.
연고 하나 없는 나라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구했을 때에도 이런 모욕은 당해보지 않았는데, 익숙한 곳에서 단지 정규직이 아닌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치욕을 무릅써야 하다니, 돌아오는 길이 내내 너무 우울해서 꾹 참고 있다가 외출 전에 눌러놓고 간 빨래가 다 돌아가 빨래를 널며 울었다.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한 후 주간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은 아무래도 역경이 있겠구나 생각했었는데, 이런 시작일줄은 몰랐다. 이 사람은 내가 합격해서 나랑 같이 근무하면 어떤 낯으로 나를 보려고 초면에 이런 무례를 시도했을까. 여전히 이해가 안되는 일이지만, 어쨌든 그렇게 첫 면접을 끝내고 돌아왔다.
너무 우울해서
달다구리를 안 먹을 수가 없더라.
면접은 회사와 나와의 첫번째 상견례자리이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불합격과 입사 거부의 형태로 나타나야지, 면접 자리에서 인신공격이나 이력을 공격하며 칼을 휘두르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은 나만 알고 있는 상식이었나. 결혼 상견례에서도 이렇게 하면 결혼이 파토나고 사이가 틀어지는데 무려 채용의사를 가지고 면접을 시도하는 사람이 이렇게 구직자를 모욕해서 얻어지는 것은 또 무엇인지. 정말로 알 수가 없었고, 이해도 되지 않는다.
이런 모욕과 수치심을 어디다 묻어야 할까 하다가, 이 곳에 털어놓는다.
쉬운 일은 하나도 없고, 되는 일도 없지만 이 일을 부디 상처가 아닌 자양분으로 삼고 도약했으면 하는 나 자신에 대한 바람으로.
구직을 하는 모두가 이런 치욕을 감당한다고 하지만 당해도 되는 일은 절대 아니다.
그저 이 사람을 반면교사 삼아 나는 절대로 저런 어른은 되지 말아야지, 절대로 안 되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이 일을 갈무리하고 나아가려고 한다.
알바 이력서 벌써 네군데에 더 넣어놨다.
일할 데가 거기만 있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