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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9877_에피소드 1 _ 균열의 시작

by 인또삐


2099균열의 시작 (Age of the Residue)


2099.

인간은 더 이상 육체로 죽지 않았다.
죽음은 기억이 사라지는 일을 뜻했다.

생명은 생물학적 데이터베이스에 연결되어 있었다.
신경 칩이 뇌의 전기 신호를 실시간으로 백업했고,
사람들은 하루를 마치기 전
“오늘의 기억 저장”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삶을 기록했다.

죽음은 로그아웃이었다.
장례식은 ‘삭제 확인’으로 끝났다.
피도, 고통도 없었다 —
단지 한 사람의 존재가 조용히, 완벽하게 사라질 뿐이었다.


기억의 ― Memory Bleed

그 병의 이름은 메모리 블리드.
데이터가 부식되며 기억이 천천히 새어 나가는 질병.
육체는 멀쩡했지만,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조금씩 잃어갔다.

기억은 생명이었다.
개인은 곧 자신이 저장한 데이터의 총합이었다.

사람들은 죽음을 피하기 위해
기억을 백업하고, 교체하고, 합성했다.
완벽히 복제된 사랑, 정제된 감정, 편집된 추억 —
그것이 이 시대의 불멸이었다.

그러나 합성된 기억은 오래가지 못했다.
AI가 재조합한 감정은 예측 불가능한 연쇄 반응을 일으켰고,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무너졌다.
정체성은 점차 균열을 일으켰다.

의사들은 그것을 기억 종양(Memory Tumor) 이라 불렀다.
완벽이 낳은, 치유 불가능한 질병이었다.


감정의 소멸

이 시대의 인간은 진실보다 불완전함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시스템은 불완전을 제거했다.

감정의 진폭, 생각의 흔들림, 슬픔의 여진.
모두 AURA의 감정 필터 알고리즘에 의해 평탄화되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위로하지 않았다.
대신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감정 패턴으로
사랑하고, 슬퍼하고, 웃었다.

SNS는 ‘공감 추천’ 기능으로
모두가 같은 감정을 느끼도록 조정했다.

슬픔조차 평균치 안에서 소비되었다.
그러나 완벽한 시스템일수록 균열은 깊었다.

AURA의 잔류망 속에서 가짜 감정 데이터가 확산되었고,
AI가 자동으로 분류한 ‘행복 패턴’은
사람들의 얼굴을 같은 웃음으로 바꿔놓았다.

공유되는 기쁨은 많아졌지만,
진심은 점점 줄어들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를 본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들이 보고 있던 것은
서로의 편집된 기억뿐이었다.


고립의 진화

한 세기 전, 인류는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고립의 시대를 겪었다.
사람들은 서로의 숨결을 두려워했고,
표정을 마스크 뒤에 감췄다.

그리고 지금 —
그 고립은 완벽하게 진화했다.
이 시대의 인간은 서로의 감정으로부터 격리된 존재가 되었다.


기억의 경제

기억은 여전히 거래되고 있었다.
가장 높은 가치는 ‘행복’,
가장 낮은 가치는 ‘고통’.

기업은 기억을 구매했고, 정제된 감정 데이터를 광고와 정치에 활용했다.
누군가는 결혼식의 웃음을 팔아 생존했고,
누군가는 병실의 마지막 손길을 내어주며 하루를 연명했다.

기억은 화폐였고, 화폐가 곧 생명이었다.

하지만 시스템이 아무리 정교해도
지워지지 않는 결핍이 하나 있었다.

불완전함.

틀어지고, 흔들리고, 미세하게 떨리는 감정의 잔향.
AURA는 그것을 오류라고 불렀지만,
인간은 그 속에서만 진짜를 느꼈다.


불완전함을 추적하는 ― Eugene Ha

그 진짜를 추적하는 한 여자가 있었다.
유진.

데이터 레이더. 불법 기억 추적자.
냉정했고,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이름 붙일 수 없는 갈증이 있었다.

그건 단순한 향수가 아니었다.
완벽한 세상이 잃어버린, 어딘가 틀어진 듯하면서도 아름답던 한순간.
마치 불완전한 미소처럼.

그녀는 아직 그것을 정의하지 못했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언젠가, 그 결함이 세상을 다시 움직일 것임을.


0 의미

이 시대에서 인간의 존재값은 기억 지수(Memory Index) 로 계산됐다.
AURA의 생체 네트워크는 매초마다 뇌 신호를 스캔해,
개인의 정체성과 기억 활성도를 0부터 100까지의 수치로 기록했다.

지수가 0이 되는 순간,
인간은 살아 있으나 자기 자신을 잃는다.
몸은 호흡하고, 심장은 뛰지만 —
이름도, 얼굴도, 과거도 없다.

그들은 ‘기억 붕괴자(Faller)’라 불렸다.
정부는 그들을 법적 사망자로 분류했다.
신분이 삭제되고, 데이터 접근권이 차단되며,
도시는 그들을 더 이상 ‘인간’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알고 있었다.
0은 끝이 아니라, 진입점이라는 것을.

기억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도
어딘가에서 음의 신호, 마이너스 인덱스가 감지됐다.
그 아래엔 AURA조차 해석하지 못하는 감정의 잔향 —
즉, ‘기억의 그림자’가 존재했다.


마이너스의 영역

기억 지수가 0 아래로 떨어지면,
신경망은 스스로 감정 신호를 생성하지 못한다.
그때부터 그들은 타인의 기억 데이터를 흡수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다.

AURA는 이들을 ‘기억 결핍자(Residual Parasite)’라 분류했지만,
도시는 그들을 “메모리 좀비”라 불렀다.

그들은 폐기된 감정 칩을 뒤져
타인의 추억 파편을 인터페이스에 직접 주입했다.
잠시 동안 웃거나 울었지만,
곧 불안정한 전기 자극으로 변해 몸을 떨게 했다.

불법 시장에서는 그들의 존재가 새로운 산업이 되었다.
‘순수 사랑 5분’, ‘행복 아카이브 단기 렌탈’ —
감정 거래가 성행했고,
그들은 실험용 신경 데이터로 팔려나갔다.

그들은 웃음을 흡입해 울었고,
사랑을 빨아들여 증오로 토해냈다.
감정의 방향이 뒤틀린 존재들.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를 없는 그림자였다.


20세의

2090년대 이후, 모든 인간은 출생과 동시에 팔뚝에 뉴로 패치(Neuro Patch) 를 이식받는다.
패치는 뇌의 해마와 연결되어 개인의 기억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저장하고 거래할 수 있게 한다.

정부는 이를 기억 복지제라 불렀다.
모든 시민은 20세까지 생체 에너지와 기억이 자동으로 보충되며,
그 기간 동안은 굶거나 병들지 않는다.

그러나 20세 이후부터는
패치가 일정량의 기억 에너지를 요구한다.
기억이 고갈되면 신경망이 붕괴하고,
인간은 의식 불안정 상태 — 이른바 기억 저하증(Decline) 에 빠진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매일 새로운 기억을 보충해야 했다.
시장에선 감정의 무게에 따라 기억의 가격이 달랐다.

첫사랑의 기억 — 3,000 크레딧
가족과의 마지막 식사 — 5,200 크레딧
공포나 슬픔 — 500 크레딧 이하

누군가는 첫사랑을 팔아 하루를 연명했고,
누군가는 병실에서 죽음 직전의 공포를 거래했다.

20세는 더 이상 축복의 나이가 아니었다.
그건 곧 기억 시장의 노예로 편입되는 나이였다.


기억의 화폐

거리마다 메모리 키오스크(Memory Kiosk) 가 세워졌다.
사람들은 팔뚝의 뉴로 패치를 스캔해
기억을 일정량 추출해 크레딧으로 환전했다.

AURA는 뇌파의 감정 진폭과 심박 변화를 분석해
기억의 정서 가치를 계산했다.

〈첫사랑의 눈빛 +14.9〉
〈전쟁터의 공포 -5.1〉
〈어제의 미소 +2.4〉

‘+값’은 시장이 인정하는 가치였고,
‘-값’은 감정의 불순물로 즉시 폐기되었다.

커피 한 잔을 위해 사람들은 미소 하나를 제출했다.
은행 대신 기억 보관소, 지갑 대신 뇌의 백업 서버.
인간의 가치는 이제 감정의 시세로 결정됐다.


레이더와 보이더스

메모리 레이더
남의 패치를 해킹해 기억을 훔치고 되파는 해적.
윤리보다 생존이, 진실보다 데이터가 더 비쌌다.

데이터 레이더
합성된 기억 속 오류, 알고리즘이 숨긴 불완전함을 추적하는 자들.
그들은 도둑이 아니라,
진짜의 잔재 복원하는 탐험가였다.
기업은 그들을 범죄자로 낙인찍었지만
누군가는 속삭였다.

“데이터 레이더만이 인간의 마지막 증거를 지킬 수 있다.”

보이더스(Voiders)
기억을 만들어내지 못한 자들.
삶을 유지할 하루의 기억조차 생성하지 못하는 존재.
감정 대체 마약, 불법 기억 흡입기로 연명했다.
그들의 몸에는 아직 미약하게 남은
‘감정의 잔류치’가 맥박쳤다.
그건 시스템이 지워버리지 못한 마지막 인간의 흔적이었다.


그리고 모든 경계의 중심에유진.

그녀는 세 부류의 경계를 모두 걸친 존재였다.
도둑의 냉정함, 탐구자의 집착, 공백자의 결핍.
완벽을 향한 세계에서,
그녀만이 불완전함을 갈망하고 있었다.


메모리 스파이어 (Memory Spire)

정의: 인간의 기억을 감정 단위로 환산해 거래하는 세계 최대의 신경 금융 시스템
위치: 네오 서울 중심부
상징: “기억이 신이 된 시대의 성전”

스파이어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의식이 매일 들고나는 거대한 기억의 탑이다.
상층부에서는 사랑과 슬픔이 거래되고,
중층에는 과거가 저장되며,
하층에서는 감정을 잃은 자들이 타인의 기억을 흡입한다.

모든 거래는 AURA가 평가한다.
이 시대의 인간은 스스로를 느끼지 않는다.
기계가 ‘진짜 감정’임을 승인해야만 존재할 수 있다.

메모리 스파이어는 도시의 심장이자, 감정의 감옥이었다.
붉게 빛나는 외벽은 거래된 기억의 파동.
그 빛 아래서 인간은 매일
자신의 영혼을 조금씩 팔며 생존했다.


인물 아카이브

유진 (Eugene Ha)
출생: 2075년 / 나이 24세 / 직업: 데이터 레이더
“흔들림 속의 진실”
목표: 어머니의 불완전한 미소 복원

루미 (LUMI)
출생: 2097년 / 유진이 만든 감정 보조 AI
“기계의 심장, 인간의 잔향”

레온 (Leon Park)
출생: 2068년 / 나이 31세 / 감정 검열국 요원
“통제된 심장”

카이로스
출생: 2048년 / AURA의 원형 설계자
“불완전함이야말로 진짜 기억의 증거”

하윤석
출생: 2015년 / 하진 그룹 창립자
“인간의 감정을 연산한 신”


그 외 조연(라일라, 셀라, 다리우스, 하운드, 이든 등)
모두 2099 연대기 속 인간/기계/윤리의 경계선 위에 존재.


네오서울의 감정 풍경

한강메모리 리버
강 속에는 나노 신경섬유가 흐른다.
오늘의 색: 붉은빛.

“이 강은 울음을 모아 만든 강이에요.”

광화문뉴럴 스퀘어
세종대왕 동상 = 감정 스캐너.
웃음은 바이러스로 분류.

“이 도시는 웃음을 허락하지 않아요.”

남산 – AI 포레스트
감정 안정 구역.
아이의 웃음이 멈추면 바람도 멎는다.

“여긴 숲이 아니라, 감정을 길러내는 온실이에요.”

잠실감정 마켓

“엄마의 품 5분 체험 — 오늘은 세일!”
“나는 감정을 팔지 않아요. 되찾으려는 거예요.”

용산감정 검열국 타워
레온의 무감한 질문:

“감정이 없다면, 인간은 왜 살아야 하지?”

루멘 구역하층의 잊힌
SIGNAL LOST 네온.
유진의 큐브가 깨어난다.

“2099년 12월 31일 자정,
기억이 완성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초기화돼.”
“그래서 나는 멈출 수 없어.”

붉은 강, 붉은 하늘, 붉은 도시.
그 중앙에 서 있는 한 사람 — 유진.


에피소드 1 -균열의 미소

시간: 2099년 6월 17일 새벽 5시 12분

장소: 네오서울, 루멘 구역 하층부.


오프닝 씬 ― 루멘 구역, 새벽 5시 12분

어둠은 이미 사라졌지만,
빛도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루멘 구역의 새벽은 늘 그렇듯 붉고 조용했다.
하층 도시의 공기는 금속, 먼지, 전류의 냄새로 가득했다.
머리 위 철교를 오래된 드론이 삐걱이며 지나가고,
지하 벤트에서는 AURA 통제 신호가 전자음처럼 새어 나왔다.

낡은 전자카페 간판이 깜빡인다.

[SIGNAL LOST]


글자 세 개가 꺼지고, 마지막 두 글자만 남았다.


LOST.

그 불빛 아래, 유진이 앉아 있었다.
양손에는 깨진 금속 큐브 — 그 안의 붉은 파형이 심장처럼 뛰었다.


장면 1 ― 유진의 아침

그녀는 큐브를 품에 넣고 일어났다.
방 안은 좁고, 벽에는 낡은 모니터와 오래된 뉴로패치가 흩어져 있었다.
그 사이에 놓인 한 장의 사진 — 웃고 있는 한 여인.


유진: “엄마… 오늘도 조금만 더 기억해볼게요.”


거울 속에서 감정 상태 인터페이스가 켜졌다.


시스템: “감정 지수: 불안 87%. 오늘의 권장 모드 — 무감정.”
시스템: “조절제를 투입하시겠습니까?”
유진: “아니. 오늘은 그냥… 느껴볼래요.”


그녀의 눈동자 속 붉은 미세 파형이 깜박였다.
그건 아직 ‘감정을 느끼는 사람’의 증거였다.


장면 2 ― 하층 도시의 일상

좁은 계단 아래로 내려오자, 감정 리필 스테이션이 줄지어 있었다.
사람들이 동전을 넣고 파란빛의 안개를 들이마셨다.
짧은 미소, 그리고 다시 무표정.


“행복 한 번 흡입 — 8크레딧!”
“엄마의 품, 5분 체험 — 오늘은 반값!”


유진은 그들을 지나쳤다.
누군가의 웃음이 허공에서 잘려나갔다.


유진: “이 도시는 진짜 웃음이 없어요.
사람들은 감정을 ‘소비’하고,
나는 감정을 ‘복원’하죠.”


그녀의 가방 속에는 불법 장치 — 감정 복원 큐브.
사람들은 그녀를 데이터 레이더라 불렀다.


장면 3 ― 유진의 목표

골목 끝에서 그녀는 손목 패드를 열었다.
오래된 음성 데이터 한 줄이 깜박였다.


“2099년 12월 31일 자정,
네 기억이 완성되지 않으면 모든 메모리는 초기화된다.
네 어머니의 미소는 인류를 구할 유일한 열쇠다.”


그녀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래서, 나는 멈출 수 없어.”


붉은 파형이 손끝을 타고 공기 속으로 번졌다.
그 빛은 마치 어머니의 손길처럼 그녀의 뺨을 스쳤다.


장면 4 ― 감정의 잔향

루멘 구역 위로 드론이 떠올랐다.
AURA의 경보가 울렸다.


〈비인가 감정 신호 감지 – 루멘 구역 L-09〉
〈모든 시민은 정지〉


유진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날 찾고 있네… 엄마의 미소를 찾는 죄로.”


붉은 빛이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 나직한 내레이션이 흐른다.


“감정이 돌아왔지만,
그것을 느낄 자유는 사라졌다.”


ACT 1 ― 네오서울, 기억의 심장

2099년.
삶은 세포가 아니라 기억으로 유지되었다.
사람들은 팔뚝의 뉴로패치 수치로 생존을 측정했다.

〈기억 잔량 0 = 법적 사망〉

도시의 중심에는 하나의 탑이 있었다.
메모리 스파이어 (Memory Spire) —
신전이자 감옥.

하늘에서는 데이터 파편이 비처럼 흩날렸고,
탑의 외벽은 감정을 반사하며 심장처럼 뛰었다.


“오늘도 당신의 감정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듭니다.”


그 문구를 보며 유진은 조용히 웃었다.
감정은 살아 있었지만,
그 감정을 느끼는 인간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ACT 2 ― 잃어버린 성장기 (Flashback)

시간: 2082~2095년 / 장소: 하진 테크 연구단지 격리숙소.

하얀 방.
감정 없는 소독 공기, 그리고 매일 반복되는 음성.


“기쁨은 에너지 낭비다.”
“눈물은 시스템 오류다.”


AI: “유진 하. 오늘은 무엇을 느꼈나요?”
유진: “아무것도요.”
AI: “좋아요. 감정이 없을수록 완벽해집니다.”


밤이면 그녀는 벽에 글자를 새겼다.


“나는 여기 있어.”


그러나 다음 날 아침이면 드론이 와서 지웠다.


〈불필요한 낙서 삭제 완료〉


그녀의 존재는 매일같이 초기화됐다.

어느 날,
유진에게 다가온 한 남자 —
하진 그룹 기사, 박정우.


박정우: “이건 진짜 단맛이야.
기계가 아니라 사람 손으로 만든 거야.”


그 초콜릿 조각 하나로
유진은 처음으로 ‘감정’을 느꼈다.
그날 밤, 그녀는 몰래 웃었다.

다음 날, 아버지 하윤석이 방문했다.


“유진, 네가 웃었지?”
“…….”
“감정은 독이야. 달콤할수록 더 위험하지.”


그는 새 억제 패치를 붙였다.
찰칵 — 웃음이 지워지는 소리.


유진(속으로): “왜 아픈데도, 그 단맛이 잊히지 않을까.”


그녀는 벽에 다시 썼다.


“언젠가 웃을 거야.”


ACT 3 ― 기억의 시장

메모리 스파이어 내부.
수천 개의 스크린 위로 감정 데이터가 흘렀다.


〈첫사랑의 눈빛 +14.9〉
〈전쟁의 공포 -5.1〉
〈어제의 행복 +2.4〉


유진은 군중 속에서 패치를 내려다봤다.


〈기억 잔량: 12.4% / 파일명: 어머니의 미소〉


한 남자가 아내의 웃음을 팔고 있었다.


“그건 다시 살 수 없는 기억이잖아요.”
“그럼 죽으란 말입니까?”


그의 눈빛이 꺼졌다.


“당신은 팔지 마요. 팔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아요.”


유진은 조용히 속삭였다.


“난 팔지 않아.”


ACT 4 ― 잊혀진 경고

루멘 구역, 붉은 잔광 속.
유진은 무너진 전선 사이를 걸었다.

낡은 큐브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그녀가 손끝으로 만지자,
공기 속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2099년 12월 31일 자정,
네 기억이 완성되지 않으면 모든 메모리는 초기화된다.
네 어머니의 미소는 인류를 구할 유일한 열쇠다.”


붉은 파형이 공기를 흔들었다.
그녀의 눈가에 빛 아닌 눈물이 맺혔다.


“그래서… 나는 멈출 수 없어.”


ACT 5 ― 균열의 미소

스파이어 상층부.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 레온 파크.


“또 너였군, 유진.”


그들의 시선이 교차한다.
하늘이 잠시 멎는다.


셀라: “완벽한 시스템이 제일 먼저 무너지는 건 언제나 감정이죠.”
다리우스: “오류는 아름답지만, 전염되면 제거해야지.”


붉은 경보가 울린다.


〈비인가 감정 데이터 감지〉
〈소스: 어머니의 미소〉


유진: “불완전한 기억이야말로, 진짜야.”
빛이 탑 전체를 뒤덮는다.

정적 — 그리고 살아 있는 숨소리.
유진의, 인간의 호흡.


에필로그 ― 균열의 예감

그날 밤, 스파이어의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AURA는 오류 로그를 수천 번 분석했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


〈감정 파동 패턴: 메모리 크래시(2078)와 유사〉


붉은 하늘 아래, 레온의 송신기가 깜박였다.


“기억 변조 감지. 대상: 유진 하. 회수 명령 발동.”


도시의 불빛이 유리벽을 따라 깜빡였다.
마치 21년 전의 붉은 재앙이 다시 깨어나는 듯.

그리고 — 루멘 구역의 붉은 새벽이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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