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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은 세상을 밝힌 빛이었지만,
인간의 마음을 비춘 첫 번째 스크린이기도 했다.”
불이 있었다.
약 7만 년 전의 어느 밤, 누군가의 손에서 처음 타오른 불. 그것은 짐승의 눈을 물리치고 어둠을 쪼개기 위한 것이었지만, 불은 그 이상을 했다. 불은 세계를 드러냈다. 동굴 벽의 윤곽, 손바닥의 주름, 타인의 얼굴—모든 것이 처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이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당신도 알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둠 속에서 당신은 화면을 켠다. 작은 빛이 당신의 얼굴을 비춘다. 당신은 세상을 보려 했지만, 빛은 당신을 본다. 7만 년이 흘렀어도, 우리는 여전히 그 불 앞에 앉아 있다. 보는 자이자 보이는 자로.
불은 카메라가 되었다. 카메라는 스크린이 되었다. 스크린은 알고리즘이 되었다.
기술은 변했다. 그러나 무언가는 변하지 않았다. 인간은 언제나 무언가를 '프레임' 안에 담아왔다. 세계를, 타인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보는 것이 곧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무언가 달라졌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동안, 세상도 우리를 보기 시작했다. 알고리즘은 우리의 시선을 기억하고, 화면은 우리의 욕망을 학습하며, 카메라는 우리의 존재를 기록한다.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여전히 보고 있는가?
아니면 보여지고 있는가?
당신이 이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당신은 이미 하나의 프레임 안에 있다.
그리고 그 프레임이 당신을 보고 있다.
"인류 최초의 넷플릭스는 모닥불이었다."
1막. 빛의 발견 ― 세상이 켜졌다
해가 지면 세상은 말 그대로 꺼졌다.
불이 없던 시절의 밤은 단순히 어두운 게 아니라, 세계 자체가 사라지는 시간이었다. 친구의 얼굴도, 내 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숨소리와 체온으로만 서로를 확인했다. 시각장애인처럼 살았던 게 아니라, 눈이 있어도 쓸모없는 세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두 손을 비벼 불꽃이 일었다.
찰칵.
세상이 켜졌다.
나무가 보였다. 돌이 보였다. 내 손이 보였다. 그때 인간은 처음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을 것이다.
"이거... 내가 만든 건데?"
이 순간이 얼마나 대단한지 상상해보자. 태양은 자연이 준 빛이었지만, 불은 내가 만든 빛이었다. 신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밝힌 것이다.
그날 인간은 그냥 따뜻해진 게 아니라, 세상을 보는 주체가 되었다. 세상은 더 이상 나를 삼키는 어둠이 아니라, 내가 들여다볼 수 있는 무언가가 되었다.
이게 바로 문명의 시작이다. "나는 본다"라는 감각의 탄생.
2막. 그림자 놀이 ― 나를 처음 본 날
불이 타오르자 벽에 그림자가 생겼다.
누군가 손가락을 펴서 새를 만들었다. 펄럭, 펄럭. 다른 사람은 두 손을 모아 늑대를 만들었다. 으르렁. 사람들은 깔깔 웃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자기 손을 들어 올렸다.
벽에 손 그림자가 생겼다.
"...어?"
분명 내 손인데, 저건 나 같지 않았다. 내 손은 따뜻한데, 저 그림자는 차갑고 평평했다. 내가 움직이면 저것도 움직였지만, 저건 나인가, 아닌가?
그날 밤, 인간은 깨달았다.
"내가 본 나"와 "실제의 나"는 다르다.
그림자는 가짜였지만, 분명 나를 닮았다. 이건 세계 속에 투영된 또 다른 나였다. 말하자면, 인류 최초의 셀카였던 셈이다.
이게 왜 중요할까? 이 순간부터 인간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동물은 자기 모습을 보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은 불 앞에서 처음으로 "아, 나는 이렇게 생겼구나"를 경험했다.
뤼미에르 형제가 카메라를 발명하기 수천 년 전, 불 앞의 인간은 이미 자기 자신이라는 영화를 보고 있었다.
3막. 이야기의 탄생 ― 현실을 편집하는 인간
사냥이 끝난 밤. 사람들이 불가에 모였다.
한 사냥꾼이 벌떡 일어나 몸짓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 나는 거대한 맘모스를 만났어!"
창을 던지는 시늉. 달리는 시늉. 사람들은 숨죽이고 봤다.
"그리고 단칼에 쓰러뜨렸지!"
환호성이 터졌다.
그런데 실제로는? 맘모스는 도망갔고, 사냥꾼은 넘어져서 진흙투성이가 됐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야기 속에서 그는 영웅이었다.
이게 바로 인간의 특별한 능력이다.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말한 "허구를 믿는 능력"이 여기서 시작됐다. 인간은 현실을 그대로 기억하지 않았다. 편집하고, 재구성하고, 의미를 부여했다.
실패는 교훈이 되었고, 두려움은 용기로 바뀌었다.
그날 밤, 인간은 "기억하는 동물"에서 "이야기하는 동물"로 진화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신화가 되었고, 신화는 문명의 기초가 되었다.
영화가 현실을 재구성하는 예술인 것처럼,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 인생을 편집하는 감독이었던 것이다.
에필로그 ― 프레임의 탄생
불빛은 모든 것을 비추지 않았다.
어둠은 여전히 저 너머에 있었다.
그래서 인간은 선택해야 했다.
무엇을 비출 것인가. 무엇을 어둠 속에 둘 것인가.
그게 바로 프레임이다.
영화 감독이 카메라 앵글을 정하듯, 불 앞의 인간도 시선을 선택했다. 어디에 집중하고, 무엇을 의미 있게 볼 것인지.
그리고 그 선택이 곧 사유의 시작이었다.
빛과 어둠의 경계 속에서, 인간은 질문하기 시작했다.
"저 어둠 속엔 뭐가 있을까?"
"왜 이것은 보이고, 저것은 보이지 않을까?"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우리가 지금 스크린 앞에 앉아 넷플릭스를 보는 이 행위는,
사실 그날 밤 불 앞에 둘러앉았던 인간들의 연장선이다.
불은 렌즈가 되었고,
그림자는 스크린이 되었으며,
이야기는 영화가 되었다.
그리고 그날의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나는 본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다음 편에서는 동굴 벽화를 그린 인간, 즉 "최초의 영화 제작자"를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