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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1. 회의 시작 5초 전 — 예민 센서 폭발
회의실 문 앞.
손잡이를 잡자마자 내 머릿속이 울렸다.
[띠링! 예민 센서 5세대 자동 부팅]
숨 한번 세게 내쉰 장견제 → “누가 오늘 사고 치겠다” 느낌
종이를 넘기며 웃는 학과장 → “이 판 누가 망가지는지 보겠다” 느낌
빈 자리 하나 → “저 자리에 누가 앉느냐가 오늘의 하이라이트” 느낌
문이 닫히는 소리도 없이
윤사린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M세대 나의 임용 동기.
같은 날 발령을 받았고,
첫 강의도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다.
겉으로는 “동기니까 더 친하게 지내요”라며
부드럽게 웃는 사람이지만—
이상하게 그녀와 마주하면
내 마음 어딘가가 조심스레 웅크리는 느낌이 들었다.
말투는 정중한데
그 정중함 끝에 미묘한 계산이 있고,
시선은 부드러운데
그 부드러움 속에 정확한 저울이 있었다.
겉으론 동기,
속으로는 서로 조용히 견제하는 존재.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내 앞에 놓여 있던 회의 자료를
말없이 집어 들어 한 장 넘기며
톡 소리를 냈다.
그 작은 소리 하나에
회의실의 집중이 흔들렸다.
사린은 고개를 천천히 들며 말했다.
“박 교수님, 이 부분… 정말 이렇게 하신 거예요?”
말투는 조용했다.
그런데 ‘이렇게’라는 단어를
아주 미세하게 눌러 발음했다.
마치 *“나는 이 방식이 의문이에요”*라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두는 듯했다.
회의실은 정확히 그 순간,
조용해졌다.
사린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펜 끝으로 내 자료의 한 문장을
가볍게 딱— 찍고 있었다.
그 작은 행동 하나가
불필요한 말을 백 개 던지는 것보다
훨씬 강한 압박이 되었다.
나는 그때 알았다.
사린은 말로 흔드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 하나로 분위기를 바꾸는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녀의 등장에
마음속 어딘가가 조용히 움찔했다.
Scene 2. 학과장의 ‘의도된 칭찬’으로 시작되는 혼란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학과장이 나를 보며 말했다.
학과장:
“박 교수, 지난번 회의 때 스타일 참 좋더군요.”
칭찬?
아니다. 이 사람의 칭찬은 ‘미끼’다.
장견제가 툭 말했다.
장견제:
“스타일도 좋고 콘텐츠도 좋고…
요즘 교수들은 참 편하게 가르치네.”
편하게?
나보고?
내가?
내 예민 센서가 확 뜨거워졌다.
박양이 (속마음):
“나 지금 공격당한 거지…?”
윤사린이 곧바로 웃으며 끼어들었다.
윤사린:
“박 교수님 콘텐츠 수업 좋죠.
근데… 그게 학습효과랑 직결되진 않잖아요?”
그녀의 말투는
샴푸 광고처럼 부드러웠지만
문장은 비수였다.
장견제가 불쾌한 기침을 했다.
나?
이미 머릿속 과열 상태.
[경고: 멘탈 CPU 온도 97℃]
Scene 3. 윤사린의 “초안 선제공격” — 1타 KO급
학과장이 말했다.
학과장:
“윤사린 교수가… 박 교수 수업 분석 자료를
미리 만들어왔다고 하네요.”
순간,
회의실 공기가 “찰칵” 하고 굳어 붙었다.
마치 누군가 방 안의 산소를 반 컵쯤 빼낸 것처럼.
내 심장도 그때 멎은 듯했다.
박양이: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그때 윤사린이
고개를 아주 천천히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표정은 평온했지만,
그 평온함이 오히려 더 서늘했다.
윤사린:
“박 교수님 영상수업이 흥미롭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먼저 분석해봤어요.”
그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말의 선은 너무 정확했다.
마치 “이미 먼저 자리를 잡았다”는 신호처럼.
— 이건 관심이 아니라, 선점이다.
장견제의 얼굴은
숨만 더 들이마시면 바로 터질 것 같았다.
장견제:
“윤 교수…
그건 좀, 너무 앞서간 거 아닌가?”
그러나 윤사린은
눈동자 하나 흔들지 않았다.
말의 결을 살짝 세우며 말했다.
윤사린:
“장 교수님.
‘선’이라는 건…
누가 먼저 움직이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잖아요?”
회의실이 순간,
묘하게 뒤틀렸다.
그녀의 미소는
겉으론 환하고 다정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상대의 허점을 정확히 짚는 날이 숨어 있었다.
장견제의 표정은
마치 껍질이 금 간 돌처럼 굳었고,
나는
심장이 책상 아래로 떨어진 것처럼 내려앉았다.
그리고 학과장은 그 모든 장면을
누군가의 실수를 기다리는 노련한 관객처럼
미세한 미소를 띤 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순간
회의의 중심은 완전히 바뀌었고,
분위기는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윤사린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Scene 4. PPT 대참사 — 장견제의 폭발
윤사린이 PPT를 켰다.
〈박 교수 수업의 강점 & 보완점〉
라는 제목 아래:
감성 강함
학생 호응 높음
논리 구조 약함
세 번째 줄에 내 눈이 멈췄다.
논리 구조 약함?
약함??
강조까지 진하게?
장견제:
“이건 박 교수 흉보는 자료 아닌가?”
윤사린:
“흉이 아니라… 분석이에요.”
장견제:
“봐요! 이런 게 요즘 애들이라니까!”
학과장은 커피를 마시며
작게 중얼거렸다.
학과장:
“좋네요.
이 정도 충돌은 있어야 발전하죠.”
나는 속으로 절규했다.
“발전은요? 전 지금 멘탈이 파손 중인데요?”
Scene 5. 결전의 순간 — 모든 시선이 나에게
학과장이 갑자기 말했다.
학과장:
“자, 이제 박 교수 의견 들어볼까요?”
정적.
시선 16개가 나를 찔렀다.
장견제의 눈빛:
“내 편이다. 떠나라 저기.”
윤사린의 눈빛:
“기회는 잡는 사람이 가져가는 거죠.”
학과장의 눈빛:
“둘 다 키워볼까? 누가 먼저 쓰러질까?”
그리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 왜 여기 끼어있지?”
하지만 입으로는 이렇게 말했다.
박양이:
“…좋습니다.
다음 회의에는…
제가 먼저 보여드릴게요.”
회의실 공기가 순간 정지했다.
장견제 눈 커짐.
윤사린 눈 미세하게 내려감.
학과장 입꼬리 상승.
정해문 학과장은 조용히 말했다.
학과장:
“기대할게요.
이제 진짜 재미있어지겠네요.”
Epilogue — 퇴근길의 자각
집으로 가는 버스 안.
창밖을 보며 깨달았다.
장견제: 드러내고 짖는 개
윤사린: 조용히 물고 늘어지는 뱀
학과장: 숲 전체를 보는 여우
나 박양이: 예민하지만 한 번 결정하면 물러서지 않는 고양이
오늘 나는
그들의 서커스판 한가운데에 올라섰다.
그리고…
웃기게도 조금 설렜다.
“All is well.
다음 회의에서… 내 발톱이 나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