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족 마을 트레킹
지금은 방송에도 나오고 제법 알려진 여행지이지만 내가 갈 때만 해도 치앙마이는 동남이 일주를 하는 사람들만 정도만 알고 있던 곳이었다.
어느 정도 유명세를 탄 지금도 치앙마이만 콕 집어 여행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많고 많은 동남아 여행지 중에 첫 번째로 치앙마이를 선택했던 것은 혼자 하는 여행이었고,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치앙마이는 트레킹 코스가 유명하다. 산기슭에 있는 고산족 마을을 다녀오는 코스인데, 업체마다 프로그램은 비슷하고 보통 1박 2일과 2박 3일 코스가 많이 있다.
이 트레킹에 가장 큰 매력은 함께 여행하는 멤버들과 새롭게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낯가림 심한 E형이라는 다소 특이한 캐릭터의 나도 이렇게 함께 여행하는 상황에서는 쉽게 친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사람과의 추억을 기대하며 치앙마이로 갔다.
치앙마이 트레킹 후기를 찾아보면 10이면 10 이렇게 대답한다
"한국인은 저 밖에 없었어요."
그 당시 치앙마이 자체가 한국인이 많이 가는 여행지가 아니고, 태국이 오리엔탈 문화에 관심이 있는 서양인이 많이 찾는 여행지기도 해서 충분히 그러리라 예상했다.
트레킹 출발점까지 타고 갈 픽업트럭 뒤에 걸터앉아 어색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한 무리가 우르르 탑승을 한다. 한눈에 봐도 어린 학생들이었고, 한눈에 봐도 한국 사람들이었다. 거기에 또 한 명이 탑승을 하는데 이번에도 한눈에 봐도 어린 학생이었고, 한눈에 봐도 한국 사람이었다.
트럭 안에는 한국인 6명, 그리고 트럭 밖에는 인솔자 2명이 있었다. 밖에 인솔자가 없었으면 내가 학생 데리고 수학여행 온 선생님 같이 보였을 것 같다. 마지막 한 명은 드디어(?) 외국인이 탑승했다. 이렇게 한국인 6명, 외국인 1명의 조합으로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이 트레킹에 한국인이 아닌 유일한 친구는 멕시코계 미국인 아이반이었다. 이 상황이 제일 힘든 건 아이반이라 생각했는데 가장 먼저 대화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그런데 맞은편에 앉은 어린 친구들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원어민의 영어에 숙연해지더니 자기들끼리 대화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내가 먼저 숙연해지려고 했는데 선수를 뺏겨서 나는 어쩔 수 없이 한국인을 대표해서 아이반과 영어로 대화를 나눴다.
기억나는 대화가 몇 개 있다. 전날 펍에서 우연히 만난 스웨덴 가이가 준 마리화나를 피고 정신을 완전히 놓고 숙소에 토를 잔뜩 하고 왔다는 얘기. 그리고 방콕에 가서 어떤 쇼를 꼭 볼 거라는 얘기. (어떤 쇼였는 지 기억이 안 나서 얘기 안 하는 것은 아니다.) 여행지에서의 에피소드도 문화마다 이렇게나 다르다.
트레킹 시작점에 처음 내려서 아이반이 나이를 물어본다. 한국인 아니면 나이를 잘 안 물어보는 줄 알았는데 아이반은 여러 가지로 내 예상을 빗나간다.
"twenty" 한눈에 봐도 어린 학생 무리(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는 네 명의 남자아이들)
"twenty-two" 한눈에 봐도 어린 혼자 온 여대생
"twenty-one" 아이반
그리고
"... thirty" 나
어색해진다. 낄끼빠빠해야 할 것 같지만 나도 이런 조합을 원한 건 아니었다. 물어본 아이반도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걱정 마. 그렇게 안 보여." 라며 급 칭찬을 건넨다. 그렇게 우리는 부쩍 어색해진 상태로 트레킹을 시작했다.
우리의 가이드는 흡사 <정글의 법칙>의 족장 김병만 같았다. 앞장서서 걷다가 나무에 달린 파파야를 즉석에서 칼로 따서 우리에게 맛보라고 건네기도 하고, 상태가 좋은 바나나 잎을 하나씩 따서 무언가에 쓸 요량으로 들고 다니기도 한다. 그렇게 산속에서 능수능란한 가이드에게 살짝 반하려던 찰나 시원한 폭포가 일품인 계곡에 도달했다.
"No swim, No lunch"
가이드는 이 말 한마디 남기고 식사 준비를 한다. 다들 물놀이할 생각으로 옷을 준비해 왔는지 신나게 물놀이를 즐긴다. 이들의 보호자 같은 인상착의에 나는 멀찍이 떨어져 이 친구들이 노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마치 내가 데려온 것처럼.
드디어 점심시간. 아까 가이드가 따온 바나나 잎은 알고 보니 우리의 밥그릇이었다. 선물처럼 곱게 포장된 바나나 잎을 풀러 보니 피시 소스의 새콤한 맛이 일품인 볶음 면이 들어있었다.
몇 시간을 걷고 걸으며 새로운 풍경을 만나는 즐거운 여정을 지나, 드디어 고산족 마을에 도착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의 나무집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산 정상에 가까운 높은 곳이라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멋졌다. 하늘의 푸름과 풀과 나무의 초록색과 어우러진 이 이국적인 풍경이 나의 눈을 정화시켜 주고 있었다.
저녁 식사까지 자유 시간. 마을의 아이들과 공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중 제일 어린아이가 잘 끼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이라 마음이 쓰였다. 사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둘의 공통점은 어울리기에 기량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동질감을 느끼며 그 아이와 함께 겉돌다가 사진을 찍었다.
사실 이번 트레킹에서 많은 외국인들과 동행할 거라고 예상을 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주려고 한국 전통 디자인의 냉장고 자석을 한국에서 미리 준비했었다. 졸지에 주인을 잃은 이 냉장고 자석 하나를 이 친구에게 주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선물을 받으니 신이 난 아이는 내가 준 선물을 들고 엄마에게 자랑하려는 듯이 집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바로 다시 나온 아이는 사진을 한 번 더 찍자고 했다. 하나 더 달라는 뜻이었다. 어차피 많이 남았고, 애들도 많으니까 기꺼이 한 개를 더 줬다. 그리고 이번엔 좀 더 (나만) 친근하게 사진을 찍었다.
건강에는 좋지 않지만, 술은 사람들 간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혀 놓는다. 물론 자고 일어나서 좁혀진 거리가 다시 원래대로 멀어지기도 하지만 새로운 사람과 만났을 때 적당한 취기가 주는 긴장감이 완화된 상태가 좋다. 우리는 깜깜한 밤, 모닥불 앞에서 적어도 우리가 취할 때까지는 무한대로 제공될 것 같았던 맥주들과 함께 하루 종일 함께 있을 때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언제 얘기가 나왔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내가 어느 대학을 나왔고 어느 회사에 다닌다는 얘기를 하게 되니깐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때 썼던 말인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그들 눈엔 내가 좀 '쩔었다'.
그 덕인지 각자의 인생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나는 전혀 모르는 분야인데도 무언가 조언을 해줘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 프로파일러가 되고 싶다고 하던 친구에게 내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기억이 안 나서 천만다행이다. 누가 그 당시 내가 했던 말을 녹음하고 대가를 요구한다면 나는 원하는 돈을 지불하고 그 파일을 지웠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이 어린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게 좋았다. 특히 2005년에 첫 여행을 했던 내가 계속 떠올랐다. 그래서 하나같이 귀엽고 챙겨주고 싶은 막내 동생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행에서 이 친구들을 만나서 행복했다. 잠들기 전 치앙마이를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자리에 막 누웠을 때 아이반이 무서운 이야기를 하나씩 하자고 제안한다. 그 제안이 우리에게 가장 무섭다는 사실도 모른 채 아이반은 신나서 우리에게는 듣기 평가였던 무서운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Who's next?"
한국인 여섯 명은 피곤했는지 눕자마자 거짓말처럼 잠들었다(고 아이반은 믿었다)
다음 날 아침, 평화로운 고산족 마을에 정산의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의 흥을 돋우며 시원한 아이스박스에 가득 담겨있던 맥주들은 당연히 대가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남자아이 네 명에게는 갑작스레 이별 통보하는 연인만큼이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나 보다.
'우리 좋았었잖아..'
하는 눈빛을 가이드에게 보내며 시무룩해진 아이들을 보며 나는 또 그게 너무 귀여웠다.
"우리 이제 치앙 라이 가서 굶어야 해..."
총무는 나머지 세 명에게 비보를 전한다. 나머지 세 명은 숙연해진다. 나는 또 그게 너무너무 귀여웠다. 나는 (받을 생각 없이) 돈을 빌려주겠다고 하고 대신 맥주 값을 지불했다.
"시내 도착하면 다 같이 저녁 한 번 먹을까? 내가 알아둔 데가 있는데"
내려오는 길에 나는 제안을 했다. 다들 흔쾌히 좋다고 했다. 그래서 나의 주최로 우리는 1박 2일 트레킹의 뒤풀이를 했다.
"사은춀, You look fancy."
내가 가자고 했던 레스토랑이 나름 파인 레스토랑이기 때문에 셔츠와 긴 바지를 입고 갔다. 그랬더니 아이반이 칭찬 한 마디를 건넨다. 내가 식사를 하자고 한 곳은 강변에 있는 근사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이었다. 어른들의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유형의 레스토랑. 하지만 20대 초반 배낭 여행객에게는 사치일 수밖에 없는 그런 레스토랑이다.
우리는 1박 2일 동안 마치 야생에서 채취한 음식들만 먹다가 제대로 된 음식을 처음 먹는 것처럼 맛있게 먹었다. 분위기도 좋고 음식도 맛있었다. 가격은 역시나 제법 나갔다. 고산족 마을에서 마신 맥주 값은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저희도 여행 중에 이런데 한 번은 와보려고 했어요. 그러려고 돈도 남겨 놨거든요."
자꾸 이 막내 동생 같은 애들이 귀여움을 한도 초과하려 했다. 이렇게 귀여운 허세가 어디에 또 있을까. 나를 안심시키려는 마음이 담긴 너무 예쁜 거짓말이다. 하지만 진짜 더치 페이를 했다면 이 친구들은 남은 여행 동안 1일 1 식 하며 나를 원망했을 수도 있다.
즐거운 식사가 끝나고 이제 내 멋짐이 폭발할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조용히 화장실 갔다 오겠다고 하고 카운터로 가서 모든 식사 값을 지불했다. 사회인들의 일반적인 스킬이지만 아직 겪어보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이보다 서프라이즈도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날 타이밍이 되자 "계산은 얼마씩..." 하면서 쭈뼛쭈뼛하는 타이밍에
"아까 내가 계산 다했어. 여기는 내가 살려고 했어."
이 말을 뱉은 순간 아이들의 표정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저항 없이 터지는 행복한 미소. 근심이 한순간에 해소된 표정. 미리 말을 하면 미안한 마음에 음식을 제대로 주문하지 못할까 봐 일부러 늦게 말했었다.
나는 그 표정을 보면서 이러려고 돈을 버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맛있게 밥 먹는 아이를 보는 아빠처럼. 아직도 여행에서 가장 행복하게 돈을 썼던 순간을 떠올리면 주저 없이 이때였다.
식사를 마치고 다 같이 야시장을 갔다. 특히 고3 친구들의 텐션이 갑자기 살아났다.
"형, 저녁 사주셨으니까 군것질 거리 저희가 하나 살게요"
여러 번 나를 심쿵하게 한다.
함께 야시장을 돌며 기념품 구경도 하고 간식도 먹으며 어느새 진짜 동행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이별을 해야 할 시간. 나는 다음 날 아침 방콕으로 떠나는 일정이었다. 1박 2일이라는 시간 동안 정이 들어버려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모두 좋은 기억을 가지고 꼭 다시 볼 거라는 믿음도 가지고 그렇게 서로의 남은 일정을 무사히 마치길 기원하며 연락처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숙소에 깊은 여운을 남긴 채 카톡에 아이들의 연락처를 하나, 둘 저장했다. 그리고 한 명의 프로필을 보고 깜짝 놀란다.
"상철이 형, 감사합니다!!"
마지막까지 이 친구들은 나를 행복하게 했다. 다행인 건 내 덕에 이 친구들도 여행의 좋은 추억 하나 만든 것 같다. 여행은 이렇게 출발하기 전까지 예상할 수 없는 새로운 인연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만남의 시간이 길지 않아도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Ivan, 혜진이, 진우, 대호, 제호, 상진이
덕분에 즐거웠다.
Ivan과의 인연은 나중에 다시 나올 예정이다. 8년 만인 올해 Ivan이 있는 California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혜진이는 그 뒤로 한 번 더 본 적이 있다. 내가 대구에 갈 일이 있어서 대구에서 학교를 다니던 혜진이를 따로 연락해서 밥을 먹은 적이 있다. 나머지 상진, 진우, 대호, 제호는 아쉽게 그 뒤로 못 봤고 자연스레 멀어졌다. 카톡에는 아직 네 명 다 남아 있어서 이제 어엿한 청년의 모습을 한 아이들을 한 번씩 보며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다.
이 넷이 지금도 친한 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들 프로필 사진을 넘겨 보면 여전히 여행을 사랑한다. 아마도 친구들과의 첫 동남아 여행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여행을 다니고 있을 것이다. 이 것마저 나를 떠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