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언젠가 스스로 죽을 것을 안다.
열 살 때부터 생각해 왔던 그것은 이제 나의 바라지 않는 염원이자, 언젠가는 끝내야 하는 숙제가 되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작가 백세희 씨가 자살하기 나흘 전, 나는 새로운 소설 하나를 구상하고 있었다. 그 소설은 주인공 J가 자살한 친구의 궤적을 따라가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로, 인간관계의 무상함과 자기 결정사와 자살의 차이점에 대해 조명해보고자 하는 소설이다.
해당 소설의 집필을 위해 나는 '심리부검'이라는 법심리학 분야에 대해 톺아보기 시작했는데, 공교롭게도 자료 조사를 시작한 날로부터 나흘 후 백세희 작가의 부고를 들었다. 좋아하던 작가의 부고 앞에서 슬픔과 추모의 감정이 밀려들어오기도 전에 내 머릿속에는 현재 쓰고자 하는 소설의 상세한 자료가 생겼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그 후에 나의 비인간적인 사고회로에 대한 약간의 죄책감과 그것보다는 조금 큰 슬픔이 가슴을 치고 갔다.
심리부검은 자살로 유명을 달리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자살한 사람이 남긴 자료를 분석하고, 남겨진 사람들과의 면담을 통해 사망자가 자살에 이르게 된 원인을 찾아내는 과학적 도구를 말한다. '심리부검'이라는 단어가 명명하고 있듯 사체가 아니라 심리를 부검하는 것이다. 심리부검은 미국자살학회의 설립자이며 심리학자이자 사망학자인 에드윈 슈나이드먼(Edwin S. Shneidman)이 창시한 학문으로 변사 사건에서 사망자의 의학적인 사인(예: 질식사, 추락에 의한 다발성 장기부전, 익사 등)은 알게 되어도 그 죽음이 자살인지, 사고사인지, 자연사인지, 타살인지를 파악하는 방법이 없다는 것에 착안하여, 사망자의 일기나 기록물 또는 지인들에게 했던 말이나 그의 삶의 궤적등을 정량화하여 고인의 죽음이 자살일 확률을 측정하고, 이에 더해 미래에 자살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예측해 그들의 죽음을 예방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이에 관한 책 중, 한국 최초의 심리부검가이자, 범죄심리학자인 서종한 박사의 저서 『심리부검 - 나는 자살한 것을 후회한다』 에는 자살 위험군 프레임워크 상세 기준이 나와 있는데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해당 내용은 참고용으로 자가 진단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자가 진단 질문지는 글 마지막에 개별 첨부함.)
[위험군 분류]
- 고위험군: 자살에 임박한 상태로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하고 입원 치료 수준의 개입이 필요한 수준
① 필수 위험 요인 1~2개 + 추가적 위험 요인 3개 이상
② 필수 위험 요인 1개 + 추가적 위험 요인 4개 이상
③ 고위험군 해당자가 연령대별 가중 위험 요인을 함께 포함할 경우 '고+ 위험군'이 된다.
- 중위험군: 향후 자해 혹은 자살 시도 가능성이 농후한 상태로 약물, 상담 치료 등 통원 치료 이상 수준의 개입이 필요한 수준
- 저위험군: 앞으로 자살할 가능성이 존재하므로 가족과 주변인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수준
[필수 위험 요인]
- 복수 이상의 자해
- 1회 이상의 자살 시도
- 2회 이상의 반복적인 자살 의도(관념, 준비, 계획) 표현
- 1회 이상의 정신과적 진단 (우울증 포함)
[추가적 위험 요인]
- 어느 정도 이상의 관계 단절 발생
- 경제적 문제 [무직 12개월 초과, 파산, 실직, 퇴학, 5천만 원 이상의 빚] 중 2가지 이상
- 12개월 이내 4회 이상의 생에 어려운 사건
- 스트레스 반응
- 가정 경험 [불행, 가정 폭력, 학대, 방임, 협박]중 2가지 이상
- 부부 경험 [이혼, 사별, 독신, 별거] 중 2가지 이상
- 알코올 혹은 약물 남용 경험
- 최근 혹은 과거 건강상태 변화 (입원, 명백한 손상 이상)
- 1회 이상의 가족 또는 지인의 자살 관련 행동 노출
- 1회 이상의 정신질환자가 가족 또는 가까운 지인 중 존재
- 가족 중 심각한 신체 질환자(중증 이상)가 존재
[연령대별 가중 요인]
- 20대: 과거 및 최근 신체 질병 존재
- 30대: 가중 요인 없음
- 40대: 대인관계없이 혼자 지내거나 신뢰할 사람 없음, 부정적 사건, 경제적 큰 변화, 12개월 초과 무직, 별거, 정신 상태 변화, 정신적 문제, 알코올 중독
- 50대: 대인관계없이 혼자 지내거나 신뢰할 사람 없음, 부정적 사건, 경제적 큰 변화, 12개월 초과 무직,
가족 중 심각한 질환자 있음, 중증 이상의 질환
- 60대: 별거, 음주, 알코올 영향, 만성화된 신체 질병, 가족 중 심각한 질환자 있음, 중증 이상의 질환
이 프레임워크에 따르면 나는 자살 고+위험군이었다가 자살 고위험군을 거쳐 현재 자살 중위험군으로 지내고 있다. 그러나 거쳐온 생의 경로에 의해 나는 자살 저위험군 또는 자살 위험군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상태로 내려갈 수는 없게 되었다. 이는 내가 자살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 아니라. 그저 심리부검이라는 학문이 명기하고 있는 정량적 사실에 의거한 기술이다.
나는 작년에 죽으려 했다. 모아 두었던 약물을 정맥 주사하려고 하였는데, 나름 철저하게 도구와 방법을 준비했다고 생각했으나 몇 십 번이나 머릿속으로 시물레이션 한 것과는 다르게 나의 서투른 손길으로부터 정맥은 무심히 달아나버렸다. 약물의 양이 적었으므로 피내주사로는 의도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달아나버린 정맥에게 비겁하다고 일갈한 후 준비했던 일을 실패로 마쳤다.
그러나 시도가 시도가 되어버린 일에 대해 다행이라고 생각하냐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하고 싶다. 나는 시도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실패에 대해 후회한다. 덧붙여, 재실행하겠냐고 묻는다면 당장은 아니라고 대답하겠다.
『모모』 , 『자기 앞의 생』 ,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등을 쓴 프랑스의 위대한 소설가 로맹가리는 자신의 유서에 "나는 마침내 완전히 나 자신을 표현했다. (Je me suis enfin exprimé entièrement)"라고 적은 후, 권총으로 머리를 쏘아 자살했다. 그의 죽음은 철저히 계획된 것이었는데 이는 그가 자살하기 전 날 마지막으로 편집장과의 미팅을 끝낸 일, 피와 뇌수가 쏟아질 것을 대비해 붉은 실내복과 붉은 침구를 새로 장만해 정갈하게 죽음의 절차를 실행 점을 근거로 한다.
그는 3살 때 홀어머니와 함께 전쟁 중인 조국 러시아를 떠나 폴란드를 거쳐 프랑스에 정착했다. 그의 소설에는 세 가지 언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인물이 자주 등장하는데 로맹가리 본인이 세 가지 언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영어)를 구사하는 삼중언어자였다. 그의 어머니는 아름다운 배우이며 훌륭한 어머니였는데 재능 있는 아들의 양육을 위해 헌신하였다. 그러나 평생 아들에게 그의 아버지에 대한 것은 함구한 채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으며 로맹가리가 자살하기 1년 전인 1979년에 약물 과다 투여로 생을 마감했다.
로맹가리는 비행사로서 세계 제2차 대전에 공군으로 참전했으며 많은 전투에서 승리했다. 종전 후 전쟁에서의 공적을 인정받아 많은 훈장을 수여받고 불가리아와 스위스에서 프랑스 외교관으로 5년간 근무하다, 로스앤젤레스 대사관의 프랑스 총영사가 된다.
외교관으로서의 성공과는 별개로 21살에 작가로 데뷔해 31살에 프랑스 비평가상을 상을 수상하여 명성을 얻었다. 41살에는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를 집필하며 당시 할리우드와 유럽에서 오드리 헵번과 미아 패로와 함께 쇼트커트 양식을 대표하는 미녀 배우이자, 24살 연하의 영화배우 '진 시버그(Jean Dorothy Seberg)'와 결혼한다. 그의 두 번째 결혼이었다. 그의 첫 번째 결혼은 31세에 보그의 편집장인 레슬리 블랜치와의 결혼이었고 41살에 그가 진 시버그와 불륜 관계를 맺으며 이혼했다. 그의 추종자들은 그가 진 시버그와 사랑에 빠지기 아주 오래전부터 부인과 별거하는 등 성격 차이로 인해 이미 혼인 파탄 상태에 이르렀다고 옹호하나, 이혼 전의 연애는 개인적 사정과 별개로 불륜이 맞다.
『새들은 페루에서 죽다』가 미국에서 최우수 단편상을 수상한 이후에도 그는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나 문단은 이상하게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43살에 『흰 개』를 발표했으나 프랑스 문학계와 세계 평론가들 사이에서 자기 복제를 이유로 로맹가리에 대한 평판이 떨어졌다. 후에 이 수상한 평가 하락의 전말이 그의 유서를 통해 밝혀지게 되는데, 자신의 전작 소설에 대해 칭찬 일색의 평을 내놓은 한 비평가가 로맹가리를 만났으나 감사의 말 한마디가 없었던 것을 이유로 그 다음 소설 『흰 개』에 대해 지독한 혹평을 실었고 그것이 일종의 복수였음을 로맹가리가 알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그는 세 개의 필명을 갖게 된다. 첫 번째는 '포스코 시니발디'라는 필명으로 『비둘기를 안은 남자』를 출간했고, 두 번째는 47세에 '샤탕 보가트'라는 필명으로 『스테파니의 얼굴들』을 발표했으며, 세 번째는 그 유명한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60세에 『그로칼랭』을 출간했다.
『그로칼랭』이 출판과 함께 문학계의 찬사를 받으며 에밀 아자르는 단번에 신예로 떠올랐는데 에밀 아자르가 너무 유명해져 실체 없이 활동하기 어려워지자 로맹가리의 조카의 아들인 폴 파블로비치가 에밀 아자르의 행세를 했다. 로맹가리는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네 권의 책을 더 출간했는데 그에게 두 번의 공쿠르상을 받은 최초이자 마지막 작가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한 작품 『자기 앞의 생』을 포함하여 『가면의 생』, 『솔로몬 왕의 고뇌』, 『연』이 그것이다. 후에 에밀아자르는 자살 전 집필해 둔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을 통해 로맹가리와 에밀 아자르가 동일인이었음을 밝혔다.
나는 로맹가리의 삶을 최대한 압축하여 간단하게 적으려고 했으나, 그의 삶은 간단하지 않았다.
로맹가리의 생을 심리부검자의 눈으로 훑어보면 그는 자살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버지를 모른다는 것은 아이에게 자신의 존재의 뿌리를 탐구하지 못하게 하는, 극복할 수 없는 방해물이다. 이는 자아 정체성 근원의 근간을 아무것도 없는 허공의 우주에 던져둔 것과 같다. 그런데 그의 정체성을 미궁에 던진 사람은 그의 어머니였다. 이럴 때는 차라리 어머니와의 사이가 좋지 않아서 어머니를 원망할 수 있는 편이 낫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양육자로서 좋은 사람이었으므로 로맹가리는 그의 어머니를 미워할 수 없었다.
그는 전쟁에 참전한 군인이다. 많은 훈장을 받았다는 것은 그가 많은 전투에 참여하여 많이 죽였고, 전우들의 죽음을 많이 목격했다는 말도 된다. 전쟁은 그것을 겪은 사람들에게 얕든 깊든 간에 반드시 상처를 남긴다. 인간은 연약하다. 어떤 PTSD 연구에는 전쟁을 표현한 미디어물 (영화나 드라마 심지어 사진 한 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PTSD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의 작품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는 16개의 에피소드가 실려 있는데 그중 6개의 에피소드가 전쟁을 소재, 배경, 주제이다.
나는 그가 남긴 문장들에게서 전우들의 유품과 맞바꾼 그의 훈장들과, 부음(訃告)처럼 흩어지는 희생자들의 비명을 듣는다.
2025년 현재 한국은 이혼이 만연한 시대이지만, 이런 시대에도 이혼 이유와 상관없이 당사자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지 않는 이혼은 없다. 나는 당시 프랑스에 현재 한국만큼이나 이혼이 만연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가 이혼으로 인해 상처받았다는 것만큼은 추론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이혼 전 오래도록 별거했다.
그의 곁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죽음이 있었다. 그의 두 번째 부인 진 시버그는 살해당했으며(자살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로맹가리는 타살이라고 믿었다. 심리부검 프로토콜에 따라 로맹가리가 타살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녀의 죽음은 로맹가리에게는 타살이다.), 그가 평생토록 사랑했던 어머니는 자살했다.
백세희 작가에 대해서는 현재 그녀의 동료와 가족들이 아직 그녀의 죽음에 대해 추모하고 있는 중이므로 최대한 밝혀진 사실만 건조하게 조명해 보자.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폭력과 어머니의 외모 가스라이팅, 언니와의 부정적 애착관계 형성으로 인해 어릴 때부터 고통받았으며, 그로 인해 기분부전장애, 2형 조울증, 공황장애, 무기력증을 진단을 받았다. 사랑했던 강아지의 죽음으로 펫로스 증후군을 앓고 있었고, 최근 녹내장으로 한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을 뻔했으며 녹내장 수술로 인해 입원했던 적이 있다. 어릴 때부터 심한 아토피를 앓았다. 갑상선과 부신의 병으로 인해 병원을 다니고 있었으며, ADHD였고 섭식 장애를 앓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왕따를 당했고 그 후로 학창 시절 내내 교우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 또한『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에서 밝혔듯 여러 번의 자해 경험이 있고, 한 번의 자살 시도를 했다.
나는 그녀를 사적으로 전혀 모른다. 그저 그녀가 쓴 몇 권의 책을 읽었고 인스타 팔로잉이 되어 있을 뿐이다. 사적인 기록이 아닌 공개적인 기록만으로도 이만큼이니 숨겨진 상처는 또 얼마나 있을까. 굳이 심리부검의 프로토콜로 분석하지 않더라도 그녀가 자살 고위험군이라는 것을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최근 내가 천재라고 생각했던, 그래서 아직 어리므로 앞으로 활발히 활동할 것을 기대하고 있던 K의 부고에 그를 알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고작 스물다섯 살인 그가 죽음을 선택하게 된 이유를 그의 에세이로 짐작해 보자면 그의 성장 과정에는 어린 시절부터의 가정 폭력이 존재했을 것으로 짐작되며 그로 인해 부모와 연을 거의 끊다시피 하며 지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독한 가난으로 인해 영어 영문학과를 휴학한 와중에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이어가며 법심리학을 공부하는 등 생의 의지를 지켜갔으나, 최근 지인들과의 마찰로 심각한 고립을 겪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작품에는 그가 이인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짐작되는 묘사가 발견되는데 이인증은 자신의 몸이나 정신세계가 외부의 관찰자처럼 느껴지거나 자신으로부터 분리된 느낌을 받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병명이라기보다는 증상이다. 이인증을 일으키는 주요 병명은 불안장애, 우울증, 양극성 장애, 강박장애, 편두통, 심각한 수면부족등이 있으며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이인증은 정신병력이 없어도 심한 스트레스에 의해 유발될 수 있다.
나의 병력과 생의 궤적은 내가 아직 살아있으므로 생략한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이상(1910~1937)이 요절하지 않고 예순 살까지만 살았더라면 한국 문학은 어디까지 발전했을까' '기형도(1960~1989)가 아직까지 살아있다면 현대 한국 문학의 모습은 어땠을까?' '김소월(1902~1934)이 광복(1945)의 기쁨을 맛보았더라면 얼마나 많은 작품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을까' 하는 상상이다.
로맹 가리가 유서에 적은 "나는 마침내 완전히 나 자신을 표현했다"는 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만약 그가 자살 시도에 실패하여 그 이후 몇 년간 더 살았더라면, 66세에 했던 저 말을 철회하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66세의 그는 자신을 다 표현했다고 생각했을지 몰라도 67세가 된 그에게는 더 표현하고 싶은 자신이 새롭게 생겨나지 않았을까?
나는 예술가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필수적인 자질 중 하나가 어떤 특정 분야의 재능이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더라도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없다면 그 재주는 예술에 닿지 못한다. 차라리 재주가 없어도 자기표현의 욕망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욕망은 실체화되어 예술의 형상을 갖출 것이다.
나 또한 어릴 때부터 자기표현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떤 숙고한 이성은 본능을 넘는다. 자신을 남기고자 하는 욕망과 삶을 끝내고자 하는 갈망 중 어떤 것이 이성이고 어떤 것이 본능인지 알 수 없게 된 지금, 나의 유예는 아직 표현되지 못한 문장에 대한 예의이며, 아직 퇴고하지 못한 문장들에 대한 약속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살아 있다. 아직 다 쓰지 못한 문장들에게 붙들리고, 남겨진 문장을 보듬으며 하루를 연장한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자기 생의 심리부검을 하며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아직 끝나지 않은 마음을 번역하고 나름대로의 번역본을 임시 저장 하며 그 저장된 폴더 속의 희망을 본다.
폴더의 파일 형식은 .hope다.
참고도서:
『심리부검 - 나는 자살한 것을 후회한다』 서종한 저, 학고재
『전문가를 위한 한국형 심리부검』 서종한 육성필 조윤정 홍현기 김경일 저, 박영 story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백세희, 도서출판 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2』 백세희, 도서출판 흔
『Album Romain Gary』 M. Decout 저, Gallimard
『새들은 페루에서 죽다』 로맹가리 저 김남주 옮김, 문학동네
『폭력의 기억,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 앨리스 밀러 저, 신홍민 옮김, 양철북
『무의식의 뇌과학』 엘리에저 J. 스턴버그 저, 조성숙 옮김, 다산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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