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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린-5강] 두 세계의 지구

by 정채린

05화 5주차 강의: 장면을 감정으로 나타내기

정윤 작가님의 소설 강의 - 제 5회차 "장면을 감정으로 나타내기" 과제 입니다.

강의에 참여하고 싶으신 분들은 해당 링크로 넘어가서 댓글로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선택한 주제는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사람] 입니다.



두 세계의 지구




"뭐 시켰어? 나는 오믈렛."

"응, 나는 그냥 당근주스. 식욕이 없어, 어제부터 속도 울렁거리고."

아까부터 손가락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수현이 명치 아래를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말했다. 수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을 이어갔다.

"이제 정말 선택해야 하는 시간이 왔네. 넌 어떻게 할 거야?" 수현의 목소리는 평평했다. 마치 오늘 저녁메뉴를 묻는 것 같은 건조한 말투에 동규는 메뉴판을 들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넌 어떻게 할 거야라고 물어도 괜찮은 거야? 우리 어떻게 할까라고 물어보길 기대했는데."

"응, 그러니까, 네가 어떻게 할지 궁금해서."

높낮이 없이 건조하게 대답하는 수현의 시선은 동규가 아니라 음식 픽업대에 놓인 숫자판을 향하고 있었다. 16번, 17번, 21번. 모니터에는 빨간 숫자들이 깜빡이며 바뀌고 있었다. 그녀의 물기 하나 없어 보이는 눈동자를 보며 동규의 심장이 늑골 안쪽에서 마르고 딱딱한 소리를 냈다.

"수현아..."

동규의 목소리에 한숨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상관없다는 듯 무표정으로 여전히 모니터만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만지작 거렸다.

"다쳤어? 그 손은 왜 자꾸 만지는 거야?"

"아니, 여기에 다칠 일이 뭐가 있어. 인공 중력이 있긴 하지만 지구의 반 밖에 안되고, 그나마도 항상 우주슈트를 입고 있는데." 수현은 그제야 동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표정은 없었다.

"손톱 거스러미가 생겼어."

"응?"

"그거 있잖아, 손톱 옆에 생기는 거. 나 그거 잘 생기거든. 근데 손톱깎이를 안 챙겼지 뭐야. 아니, 챙겼는데 캐리어에 들어 있어서 선실 안에는 없어. 알다시피 이 안에 날카로운 금속성 물질은 못 가지고 들어오잖아."

어깨를 약간 들썩이며 말을 마친 수현은 입술을 살짝 오므렸다 펴면서 볼에 바람을 넣었다. 수현의 볼이 아기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녀가 곤란할 때마다 짓는 표정이었다. 동규가 수현을 본 건 승선 첫날 오리엔테이션에서였다. 그녀는 맨 앞줄에 앉아 승무원의 안전 수칙 설명이 지루하게 이어지는 동안에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하고 있었다.

"해당 사항을 반드시 지켜주셔야 합니다. 질문 있으실까요?"

길어지는 안내에 동규의 옆 사람은 계속 하품을 해대고, 몇 명의 승객은 화장실을 핑계로 자리를 떴음에도 진지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녀는 승무원의 마지막 멘트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아까 나눠준 112페이지짜리 "우주여행안내책자"를 펼쳤다. 동규도 책자를 몇 장 살펴보다 이내 덮고는 수현 쪽으로 걸어갔다.

"한국분이세요?"

동규의 물음에 수현이 고개를 들어 동규를 올려다보았다. 녹색 빛이 살짝 도는 연한 갈색의 눈동자와 까맣고 긴 속눈썹, 분홍빛 뺨에 단아한 입술이 동양화의 미인도와 르느와르의 소녀 그림을 합쳐 놓은 듯했다. 설명을 듣는 내내 진지한 표정이었던 그녀의 얼굴에 반가운 미소가 어렸다.

"네, 그쪽도 한국 사람이에요?"

"맞아요, 반갑습니다. 김동규라고 합니다. 이 에버렛호의 인턴이에요."

동규가 한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최수현이에요."

수현이 망설임 없이 악수를 받아들였다. 가벼운 자기 소개와 함께 이어진 대화는 미인은 성격이 차가울 거라는 동규의 편견을 완전히 뒤집어놓았다. 그녀는 작은 농담에도 쉽게 까르르 웃고, 한 마디를 물어보면 세 마디는 대답했다. 동규가 무언가를 말하면 마치 그런 흥미로운 말은 처음 들어봤다는 듯 눈동자를 빛내며 높은 톤의 비성으로 조곤조곤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백일 간의 지루한 여행을 어떻게 견딜까 싶어 개인용 패드에 전자책을 백권 넘게 다운로드 해온 동규는 곧, 그 준비가 쓸데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너 좋아하는 것 같아."

"우리 어제 처음 만났는데?"

동규의 어설픈 고백에 수현은 장난스레 대답했지만, 그녀의 미소에는 질문 대신 대답이 걸려 있었다.

"좋아."

"응?"

"나도 너 좋아."

수현이 답했다. 햇빛이 비칠일 없는 우주선 안이 햇살로 가득 찬 것 같았다. 압력차가 없는 선실 안이라 불어올 리가 없는 바람을 타고 달디 단 복숭아 향기가 동규의 코 끝을 스쳤다. 동규의 눈에 수현의 뒤쪽 벽에 설치된 모니터가 눈에 들어왔다. 우주선의 작은 모니터에는 언제나 파란 곡면이 떠 있었다. 우리가 '고향'이라고 부르는, 라니아케아 초은하단 가장자리에 위치한 태양계 속 작은 행성. 정식 명칭은 UriE-0701. 일명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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