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알랭 드 보통의『불안』

고상한 패배자들을 위한 진통제

by 정채린

서점에서 이 책을 집어드는 사람의 눈빛을 상상해 본다.

그들은 월세가 밀려 쫓겨날 위기에 처해있거나, 통장의 잔고를 보며 당장 내일의 일을 전전긍긍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시그니엘 아파트를 자가로 가지고 있는 사람도 아닐 것이다.


그들은 애매한 지위와 경제력을 가진, 애매한 사람들일 것이다. 적당한 학교를 나와, 적당한 직장을 다니며, 굶어 죽을 걱정은 하지 않는 사람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늘 미세하게 긴장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속 인플루언서의 사진과 동기의 승진 소식에 좋아요를 누르면서도 심장에 미세한 스크래치가 나는 사람들.

이 책은 삶이 망해서 불안한 게 아닌, 무난하게 잘 살아서 더 불안한 사람들에게 그런 적당한 찌질함을 철학적 어휘로 포장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진통제이다.


이 책은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내면에서 은근히 속삭이는 열등감을 철학적 고뇌로 격상시켜 준다. '나보다 잘 나가는 저 사람 때문에 내 지위가 격하된다.'는 비밀한 생각을 '지위로 인한 불안'이라는 근사한 문장으로 정의해 주는 탁월함은 이 책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려놓았다.


책은 357페이지에 거쳐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한 가지로 귀결될 수 있는 주제를 이렇게나 길게 쓸 수 있는 재능은 천재의 것이다. 책은 말한다. "너의 괴로움은 네가 못나서가 아니다. 그것은 능력주의 사회가 가난을 무능으로, 부를 미덕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너는 시스템의 피해자다."

책을 읽으며 독자는 쾌감을 느낀다. 나의 열등감이 사회 구조적 모순에 대한 예리한 통증으로 승화되는 순간의 희열을 느끼며, 자신의 혼란이 사랑 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등의 제목으로 깔끔하게 분류되어 있는 것으로 묘한 안도감을 얻는다. 그리고 "아! 내가 왜 아픈지 알겠어."라며 책을 덮는다.

물론 아픈 건 여전하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책에 해결책이 없다고? 책을 제대로 다시 읽어라. 이 못난 독자야."

이 책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원성이 내 책상 위에 쌓이는 것이 보이므로, 『불안』이 제시하는 해법들을 자세히 살펴 보겠다.

『불안』은 말한다. '예술을 통해 위로받아라'.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라', '해골을 보며 죽음을 기억하라' 정말 아름답고 고상한 조언들이다. 그러나 현실은 책 밖에 있다.

물론 인간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어려울 때, '문제를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 만으로 만족한다. 자신의 삶을 구조적으로 박살 낼 용기를 내기보다, 불안의 메커니즘을 이해한 깨어있는 지식인이라는 자의식을 갖는 것이 더 쉽다.

일종의 자기 비하적 미학이다. 미학이므로 아름답다.


그러므로 애매한 당신은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어차피 우리는 속세를 탈출할 용기가 없다.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소파에 앉아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며 배달 어플을 켜는 겁쟁이들이다. 속세의 편리함과 성공도 놓고 싶지 않고, 지적인 품위도 챙기고 싶은 욕심쟁이다.

그리고 그런 평범한 당신에게 『불안』은 평범함을 견딜 수 있는 언어를 선물한다.


이 책을 읽는다고 연봉이 오르진 않는다. 이 책을 찢어 버린다고 해서 불안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의 질투와 박탈감이 혼자만의 것이 아닌, 인류가 2천 년간 앓아온 고질병이라는 사실은, 당신을 안전한 삶 속에서 포근한 이불에 뉘이고, 단 잠에 들게 할 것이다.



당신의 불안은 그의 대머리와 같다. 해결할 수 없으나, 포장 할 수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로버트 그린의 『유혹의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