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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과 나

행복 한잔 하시겠어요?

설악산 공룡능선 1부

by 플랫폼

갑자기 잔잔하던 감정이 요동쳐 옵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걸까요. 이른 새벽 녹슨 과거 사진 몇 장을 빼어들고 금새 멍떄리기에 돌입합니다. 과거에 내가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있었나. 그래서 잠시의 고민후 결심했습니다.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보려구요. 가을의 중심에 서서 1년전의 아련했던 기억상자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보렵니다.


그 추억잡기 여행이 시작되기 일보 직전. 비록 타임머신을 타고 까마득히 멀리가는 그런 여행은 아니라지만 독자님들! 그 강을 건너는 말랑말랑한 여행길에 혹시 동승해 보지 않으실래요? 내 삶에서 2024년은 그야말로 아스라했던 나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아직도 내 뇌리에 생생하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더치커피처럼 달콤한 기억들이 우후죽순처럼 꿈틀거리던 시기였다고나 할까요.

잔뜩 움츠렸던 1월이 겨우 지나고 만물이 생동하는 2월. 어느덧 복수초, 노루귀, 바람꽃을 보겠노라고 이곳저곳 먼길을 쫒아 헤매이던 나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3월의 노란 개나리와 집나간 여인 얼레지. 4월의 백설같은 벚꽃들. 그리고 핏빛으로 온 산야를 물들었던 5월의 철쭉라일락. 이렇게 따스한 봄의 징검다리를 겨우 건넜더니만 유난히도 징그러웠던 여름의 깔딱고개가 내 앞에 선큼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여름은 유난히도 집요했고 혹독했었죠. 폭염과의 지겨운 동행. 그렇치만, 여름도 내 불타오르는 욕망을 꺾어내진 못했죠.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버티어 냈습니다. 그 오름길에 몇 번의 고비도 있었지만요. 산행길도 인생길처럼 한고개 뒤에 또 한고개, 한고비 뒤에 또 한고비. 그것마져 운명으로 여기며 억척스럽게 버티어 냈더니만 내 앞에 선큼 와 있던 가을.


그 기세 만만하던 여름의 흔적은 어느새 과거의 머나먼 일이 되어버린지 오래. 여름은 물러갈때도 곱게 물러가 주질 않았습니다. 며칠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를 억수로 뿌려대더니만 자신도 힘들었던지 어느날 갑자기 존재를 완전히 감추어 버렸습니다. 얼마나 가을이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기 싫었으면 그랬을까 싶어지기도.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점점 무뎌져 가는 플랫폼의 더듬이를 생각해 봅니다.


그러던 중, 어느날 갑자기 파랑새가 내 앞에 나타나 내 머릴 온통 헤집어 놓습니다. 쪽빛하늘과 뭉게구름, 코스모스 길 그리고 오색 낙엽들. 이래저래 떠남중독증 환자들의 마음이 바빠집니다. 그땐 구르몽을 생각하며 그리고 그 낙엽 즈려밟으며 첫사랑에게 그리움의 편지라도 보내보픈 시기이죠. 그야말로 수많은 격랑과 마주하며 걱정들속에서 살았던 시간들이 아니었나 싶어집니다.


지난내내 머리속이 복잡하기도 했었구요. 그렇치만 나름 그런대로 잘 버티어 냈습니다. 세월은 유수와 같다더니 어느덧 시월. 벌써 가을이라니. 지난하긴 했지만 기어이 가을은 오고야 말았습니다. 플랫폼도 이제 가을이란걸 타는 걸까요. 매년 오는 계절이지만 올해는 유난히도 내 맘을 흔들어 놓습니다. 하늘이 높고 구름 뭉게뭉게 피어있는 하늘을 볼라치면 어디론가 떠나주어야 함을 직감적으로 느낍니다. 어디가 좋을까.


미지의 세계를 향해서 떠나는 생각만으로 벌써부터 심장이 벌렁벌렁해집니다.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해주기 위해선 어디론가 떠나주는것보다 좋은건 없죠.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생각들이 제자릴 못찾고 서로 뒤엉켜 있는 요즘. 그 사이 불안과 초조들이 어김없이 그 틈새를 비집고 파고듭니다. 일에 귀차니즘이 발동하고 피로감만 나날이 쌓여갑니다. 멈춰버린 시계처럼 시간마져도 야속하게 느리게 흐르고.

그 프레임에 꼼짝없이 갇혀버린 플랫폼. 이럴땐, 산행만한게 없을 테죠? 가을가을한 계절에 우린 설악산으로 향하기로 했습니다. 공룡의 등짝에 은근슬쩍 올라타 볼까 해서요. 동해 쪽빛바다가 머리속에 어른거리고 온통 맘속을 헤집어 놓습니다. 우리는 양양 설악동 여느 아담한 펜션에 베이스캠프를 차렸습니다. 거기에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그야말로 꿀맛이었죠. 별 총총한 밤은 아니었지만 심장이 벌렁벌렁한 날이었습니다.


다음날 알람소리에 잠에서 깼습니다. 단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번개의 속도로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세면대 거울앞에 모습을 드러낸 플랫폼. 초췌하기 그지없고 쭈굴쭈굴한 이마, 지친듯한 육신. 미션이 아직 시작도 되기 전인데. 그런 초췌한 육신을 이끌고 이른 아침 도착했던 용대리는 벌써부터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축제가 시작되기 일보 직전. 우린 배낭을 매었습니다.


오늘이 마지막인것처럼 살아보기위해서 였죠. 물론 아침일찍 행복 한잔 하지 않을 수 없죠. 잔이 부딪힙니다. 행복을 위하여! 조용하던 식당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킵니다. 다행히 시비거는 손님들도 없습니다. 동병상련일테죠? 멋찐 시간들 보내보겠습니다.

기대해도 될까요?


2부에서 계속됩니다,


PS)제목은 저의 블로그 절친이시자 출간 작가님이신 상냥한 맘님의 종이책을 모티브로 했던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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