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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과 나

코드명, 치마난초는 어디에

강씨봉자연휴양림

by 플랫폼

세월은 덧없다더니

25년 4월이란 시간도

불과 며칠도 채 남지않게 되었다.


인간의 시계도

봄의 시계도

여전히 빠름주의보가 발령중인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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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봄인가 싶더니만 벌써 계절의 길목.

꽃쟁이들은 마치

가시방석에라도 앉은것처럼 좌불안석인 시기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새로운 출발선상에 서있는 나.

빠름에 역행에 쉼이란 걸

내 안에 잡아놓기 위한 긴여정이 시작되기 직전이랄까.


일주일만에 재개된 새로운 미션.

작전명,

치마난초를 찾아라.

깊이봉 해발고도 780미터.

작전명을 하달받은 난

강한 결기로 무장한다.

단,

두어시간후 그 무장은 강제로 해제되고 말았다.


애마를 타고 오늘의 미션을 수행하러 떠나가는 길.

거리는 마치 폭풍전야처럼 고요하기만 하다.

산과 나.

둘이 한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며

괜한 상상의 나래까지 펼쳐본다.


어느덧 만추의 중심에 서있는 나.

봄의 아련했던 기억속으로 점점 빨려들어가는 중이다.

산과 인연이 되기전까진 난 늘 심심했다.

아무것도 안하는게 일상이자 취미.


처음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니

정말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것처럼 보였다.


매일, 매시간이 지루했고 내 삶은 점점 활기마져 잃어가고 있었다.

무엇을 하면서 하루의 무료함을 보낼것인가, 가

오직 내 관심사의 전부이자 삶의 유일한 의미였던 시절.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기위해 애쓰는

베짱이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산이라는 걸

올라보기전까진 말이다.

과거로의 여행에 푹빠져있는 사이

나의 애마가 강씨봉 자연휴양림에 미끄러지듯 도착했다.

숨고르기조차도 생략한 채

난,

산행들머리를 무심히 서성거리고 있는 중.


나비 몇 마리가 내 주변에 빙빙돌다 앉았다 금새 사라졌다.

뿔나비 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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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참매 한마리도

점처럼 하늘을 가르며 활공하는 중.

먼 창공을 쉼없이 휘젓는 작은 날개의 펄럭임이 유려하게 느껴지기까지.


이에 뒤질새라

전봇대위에 까마귀 한마리도 지나가는 나그네를

한참 째려보다가 헛기침소리에 금새 숲으로 들어갔다.

산야는

어느새 저마다 연두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마치

저마다 다른방법으로 시합을 준비하듯.

어젠 불타는 금요일.

모처럼 그 밤을 한 동료와 막걸리로 보냈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단 나을거라는

막연한 환상에 깊이 사로잡혀.

어제의 불타는

피곤함을 등에 짊어진채.

오늘도 여전히

쌩자릴 치고 올라갔다.


깊이봉 780미터라.

두발의 중심이 출발부터 마구마구 흔들리기 시작했고

심장까지도 덩달아 아우성이다.

부담감 백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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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중에도

두눈만큼은 여전히 제 할일에 열씸이다.

나무도 보고 꽃도보고 벌레도 보아야 하였기에.

오르는중 가져간 간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워보며

어제의 숙취가 가셔주길 빌었다.


또,

못다한 과거속으로 여행도 다시 재개해 본다.

산은 과연 나에게 어떤 존재였던건지.

어떻게 나에게 다가오게 되었는지.

중력에 역행해 오른다는건 무슨 의미인건지.


산과의 첫 만남.

그땐 나의 거의 모든걸 송두리째 바꿔놓은 계기가

될거라곤 미쳐 생각치도 못했다.

내가 선택한일 중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단연코 산을 좋아하게 된것이 아닐지 싶다.


잠자고 있던 바이오리듬도.

삶의 루틴까지도 다시금 일깨우게 만든

그야말로 일석삼조.

그땐 늘 그랬다.

첫 오름때의 그 어색함. 서먹함, 서툼, 그리고 낮섬.


오르려고

출발선상에 그냥 서있기만해도 심장의 박동소리는 떨려왔고

하늘은 그져 노래졌고 오른다는게 과연 무슨의미인지조차 모르던

그런 막막하고 넋없던 시절이었다.

시작부터 심장은 요란스럽게 요동치고 있었다.

가만 두었다가는 온몸의 장기들이

파업까지 불사할듯 싶었다.


때론

달래고 때론 어깃장도 놓아가며 또 진정시켜가며 올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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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역에서의 숨고르기는 필수였다.

그러던 와중에도 고무줄거리는 조금씩 조금씩 좁혀져 오고 있었다.

진달래가 곱다 느껴졌을때쯤

드디어 깊이봉 780미터 지점.


그 와중에도

과거로의 회귀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베짱이가 메뚜기로 변태를 시작하는 순간은 그야말로 천지개벽 수준이었다.

주인장의 갑작스런 변화에 장기들도 놀라고 있었다.


첨엔

뒷동산정도밖에 안된 곳을 여러번 쪼개어 올랐다.

달팽이가 작은 몸위에 제 몸집만한 단단한

짐을 지고 가듯

그져 천천히 걸었다.

그렇게 몇 년이란 시간이 훌쩍 흘렀고

어느새 몸의 장기들도 적응하기 시작했다.


잿빛하늘이 코발트색으로도 보여지기 시작하고

점점 난 산과 한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건 누가봐도 운명에 가까웠다.

늘 무언가에 굶주려 있던 삶에

잠시 여유가 생긴 순간.


쥐구멍에도 볕들날이 있다더니

그래서 삶은 살만한듯 싶어졌다.

그때부턴 먹이찾아 산기슭을 오르내리는 하이에나처럼

시간만 나면 산을 오르고 또 내렸다.

생전 안하던 아침 조깅도 하고

심지어는 퇴근해서 헬스장도 1년씩 끊었다.


평생 못끊을것 같던 금연에 성공한건 너무나도 위대한 일이었다.

열정은 계속해서 달아올랐다.

물론 중간역에서 위기가 전혀 없었던건 아니었다.

낭떠러지 바위위의 아슬아슬한 낙락장송처럼

뿌리내림을 하려면 그런 존재가 절실히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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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풍을 맞으면서도

위기를 유연하게 대처할수 있는 그런 메시아같은 존재.

이런저런 과거에 취해 있던 사이 한발 두발 걸음을 옮기다보니

깊이봉이었다.


도대체

치마난초는 어디에 있는걸까.

이제 찾기만 하면되는데.

도전도 해보기도 전에 한숨으로 오늘을 망쳐버릴수는 없었다.

배낭을 풀어 주인잃은 벤치위에 고히 모셔두고

난 홀로 미션을 시작했다.

바람은 쉬임없이 불어왔다.

새들도 지저귀고 있었다.

나뭇잎들사이로 조각난 햇빛들이 보였다.


파편화된 빛들이 모이고 모여

산 모롱이를 감싸고 있었다.

삼십여분을 숨바꼭질중.

숨은그림은 좀체로 이어지지 않았다.

아직은

제마음을 열어주기 싫은걸까.


미치광이풀들만 엉성하게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할 뿐.

심신은 점점 지쳐갔다.

애가 탔다.

점점 위기감이 고조되고.

바람따라 여행갔을까.

구름속에 숨었나.

봄마실이라도 가버린 걸까.


하지만, 오늘의 미션은

여기까지

포기했다.

미련을 버렸다.

미션에 노예가 되기 싫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금 배낭을 둘러맸다.


귀목봉으로 향하다 이따금씩 무심결에 다시금 뒤돌아 보았다.

완전히 내려놓치 못한것 같았다.

두발이 퍼지기 일보직전

그런데

예기치않은 천상의 화원이 펼쳐졌다.


의기소침했던 마음이 다시금

의기양양해졌다.

낮은 포복도 오체투지도 불사했다.

얼레지가 춤을 추고

노루귀가가 바람에 살랑거리며

노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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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열기는 고조되었다.

불타는 금요일이 어느새 모두 사라졌다.

야생화가 뭐라고

사람맘을 요동치게하는지 모를일이었다.

휴양림으로 되돌아오는길 계곡물소리 힘차게 흐르고

애호랑나비 한마리가 내앞에 서성거렸다.

두마리

세마리

계곡속으로 점점 들어갔다.

족도리풀 이파리를 헤쳐보았다.


혹시 산란이라도 한게 아닐까 하고

아직이었다.

치마난초 미션은 아쉽게 실패했지만

나름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한 하루였다.

치마난초는

다음에 다시와도 되는거였다.


꿩대신 닭이라고.

야생화들의 재롱잔치에 초대된 그런 기분이었다.

산상화원에도 어김없이 해가 저물어갔다.

오늘도

대성공이었다.

이만하면

미션이상의 성과가 아닐지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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