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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Feb 16. 2024

눈은 덮어준다

눈이 내리는 기상학적인 이유를 우리 모두는 대강 알고 있음에도 내리는 눈을 볼 때 올라오는 기분은 그리 기상학적이지만은 않다. 우리가 땅을 딛고서 위를 바라보는 존재이기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얀 것에 특별한 감정이 이는 것일까. 하얗게 변한 세상이 주는 시각적 경험이 그 이상의 무엇을 자아내게 하는 것일까. 실제로 존재한 적 없는 상상의 피조물이지만 실재와 환상을 뚜렷이 구별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 거의 주입식으로 들어 마치 오래 전 멸종된 고대의 생물인 듯한 천사와 선녀는 흰 옷을 입거나 하얀 날개를 달고서 하늘과 땅을 오간다. 이들의 옷과 날개에 하필 흰 색이 쓰인 기원이나 이유를 살펴보자면 분명 눈에 관련된 이야기 하나 쯤은 걸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선녀와 천사의 화이트는 눈을 연상하게 한다. 


눈 설雪은 위에 비 우雨를, 아래엔 빗자루 혜彗를 놓아 하늘에서 떨어진 것을 빗자루로 쓸어내는 행위를 형상화한 글자다. 눈이 오면 길바닥이 미끄러질 걱정, 도로가 막힐 걱정, 신발과 바짓단이 더럽혀질 걱정이 먼저 드는, 안 그래도 오만가지 걱정을 머리에 이고 사는 어른의 심리가 적용된 글자라고 해야 하나. 눈을 형상화 할 수 있는 여러 선택지가 있었을 것인데, 가령 우雨에 흰 백白이나 얼음 동氷, 아니면 얼다는 뜻의 동凍을 결합해 글자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인데 하필이면 빗자루 혜彗와 합쳐 놓다니, 참 건조하다. 비질을 하듯이 더러움을 씻고 털어내는 것이라면 눈보다는 비가 으뜸이다. 비 갠 후 더 환하게 펼쳐진 삼각산 백운대 좌우의 푸른 날개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비 우雨는 낙하하는 물을 나타낼지언정 씻어내림을 가리키는 뜻이 없다. 물기 덕에 촉촉해진다는 뜻의 윤택潤澤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렇다면 눈이 무언가를 씻어준다는 것은 비처럼 실질적인 세정의 기능을 뜻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물리적 사태 그대로를 말하자면 눈은 씻지 않고 덮는다. 하늘과 땅이 하나의 색인 듯하다는 뜻의 건곤일색乾坤一色은 눈으로 뒤덮인 하얀 세상을 가리킨다. 겨울철의 모노톤이 지미地味, 즉 흙빛의 수수함이라면 그 위를 하얗게 덮는 눈의 모노톤은 천미天味, 바로 하늘빛을 담은 소소素素함이다. 사위가 밝고 환해지니 소소炤炤함이라 해도 좋겠다. 하늘에서 내려온 하얀 것이 지상에 내려앉는 모습은 선녀나 천사가 하늘의 기쁜 소식을 들고 이 땅 위에 온 듯한 시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예수를 잉태할 것이라는 하느님의 소식을 전하러 마리아에게 내려온 천사 가브리엘처럼 예수가 태어난 날을 예비하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천사 같은 흰 눈을 기대하는 건 눈을 하늘로부터의 온 메신저로 대하는 심리가 작용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 심리의 기원은 다분 시각적인 데서 온다. 


눈이 덮어버리는 건 보이는 것만이 아니다. 들리는 것 또한 눈으로 덮인다. 눈은 내리면서 소리들을 자신의 몸으로 품는다. 눈의 성긴 구조가 이를 가능케 한다. 마치 감쌀 포包, 머금을 함含의 글자 모양처럼 속이 넉넉하게 비어 있다. 그 비어 있음이 세상의 소리를 감싸고 머금는다. 세상이 눈으로 하얘진 만큼 사위는 고요하고, 사위가 고요해진 만큼 세상은 하얗다. 백색소음. 시각적인 것과 청각의 것이 네 글자로 모인 이 단어는 공해에 해당하지 않는 공간음, 바탕음을 말한다. 눈이 소리를 덮는다는 건 무반향실처럼 모든 소리가 결여된 상태를 만든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온전히 들을 수 있게 청각의 흰 바탕을 마련해준다는 뜻일 것이다. 무언가를 쓰거나 그리기 위해서 백지가 필요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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