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정훈 Apr 08. 2024

썰매와 설마

썰매는 단어 그대로 눈[눈 설雪] 위를 달리는 말[말 마馬]이란 뜻이지만 내 기억 속의 썰매는 언제나 빙판 위를 달렸다. 그것도 그냥 빙판이 아니라 겨울 논을 물로 채워 만든 빙판. 설마雪馬가 썰매가 된 건 세월과 사람이 만든 음운변동의 탓이겠지만 얼음 위를 질주하는 썰매의 속도감은 ‘설’보다는 ‘썰’이 더 그럴듯하게 들린다. 스케이트 날을 개조해서 만든 썰매날의 예리함도 ‘ㅅ’보다는 ‘ㅆ’이 더 그럴듯해 보인다. 


매는 또 어떤가. 매는 막대기 따위 및 이것으로 치는 행위를 이르는 말이다. 얼음 위를 미끄러져 달리는 행위를 얼음지치기, 혹은 그냥 지치기라고 한다. 혹자는 (상대방을 뒤로) ‘제치다’에서 온 말이라 하지만, 얼음지치기를 강원과 충청에서는 얼음말타기, 제주에서는 얼음치기라고 하는 걸 보아 지치기는 역시 ‘치다’라는 행위에서 온 말이다. 매는 치기의 도구이니 썰매는 매로 얼음 위를 쳐서 쌩쌩 달리는 수레 혹은 배라는 뜻이 된다. 국어사전은 설마를 썰매의 원말이라 설명하지만 썰매는 마치 위의 언어 과정을 거쳐 내려온 낱말인 것만 같다. 


한자에는 설마를 뜻하는 또다른 단어가 있다. 轌과 艝이 그것이다. 둘 다 설로 발음하고 뜻도 썰매로 동일하다. 한자사전에는 본디 일본 문자라고 나오지만 옥편에는 두 글자 모두 없다. 옛 일본이 말이 드물었던 섬나라였다 것을 감안하면 말이 끄는 눈 위를 달리는 이동수단은 아예 본 적이 없거나 극히 드물었을 것이니, 말보다 훨씬 가까운 수레 거車와 배 주舟를 눈 설雪과 결합해 썰매라는 글자를 만들었을 것이란 짐작에는 무리가 없다. 


그런데 또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썰매를 뜻하는 또다른 한자가 있다는 점이다. 橇. 소리そり라고 발음하고 썰매라는 뜻을 가졌다. 한자사전에는 썰매 취 또는 교라고 나오고 또다른 뜻으로 덧신이 있다고 한다. 이누이트 족 등이 가축의 외피를 벗겨 잘 말리고 손질한 후 가죽을 바깥으로, 털을 안쪽으로 해서 신발을 만드는 장면을 보면 덧신을 橇라고 쓰는 것이 바로 이해된다. 이 글자를 풀어보면 나무 목木에 毳가 붙어 있는데 취라고 읽는다. 뜻은 솜털, 털가죽이고 파생의미로 썰매가 있다. 털 모毛가 세 개나 모였으니 많은 털을 나타낸다. 혹시 눈썰매를 끌던 두툼한 가죽의 털복숭이 썰매개를 가리키는 글자 아닐까? 썰매개가 끄는 탈 것은 목재로 만들었을 터이니 당연히 나무가 붙었을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나주와 소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