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집입니다. 수선이 완료되었습니다.” 동네 수선집에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처음 받아본 것도 아니건만, 받을 때마다 같은 내용이건만 유독 한 단어가 글쓰기를 유발한다. 수선집. 집. 수작업을 하는 공방이니 수선공방이라 해도 좋고(수선방이라고 하는 경우도 드문 보인다), 업종이 비슷하니 세탁소처럼 수선소라 해도 어색하지 않고, 딱히 물건을 파는 건 아니지만 화폐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소이니 수선점이라 해도 될 터인데 집이라니. 수선 더하기 집이 전혀 낯선 조합이 아님에도 오늘따라 왜 나의 주목을 끄는 것인지.
우리 일상에서 무엇무엇을 …집으로 쓰는지 흘깃 살펴본다. 먼저 떠오르는 것들은 신체의 중요 부위의 명칭처럼 1음절에 붙은 집들이다. 밥집 술집 떡집 빵집 옷집. 가히 눈 코 입 귀 뺨에 비견할 1음절들이다.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인 의식주衣食住 중에서 집이 주에 해당하므로 이를 제외하고, 의과 식에 붙은 집이 역시 가장 기본이 된다. 자주 사용하는 물건들을 눈에 잘 뜨이거나 손에 가까운 곳에 두어 굳이 공들여 찾는 수고를 들이지 않듯이 우리 생활에서 가까운 것들의 이름은 기억을 더듬어 찾거나 입을 열심히 여닫을 필요도 없이 짧다. 언제 어디서나 기본은 간략하다. 길게 말하지 않아도 된다.
밥집이 세분화 되면 한식집 중국집 일식집 양식집으로 나뉜다. 중국집을 짜장면집으로, 일식집을 초밥집으로 바꿔 부르는 경우도 있다. 물음표가 생기는 지점은 왜 유독 중식만 중식이 아니고 중국으로 부르는가이다. 짐작으로는 중국과 중식을 등가로 매긴 탓이 아닐까 한다. 일본이라는 이미지를 구성하는 요소들 중의 하나가 일식인 반면, 중식은 중국이라는 여러 이미지들 중 하나의 구성 요소가 아니라 중국 그 자체인 것. 물론 이는 중국집이라는 말이 탄생할 즈음의 사람들이 가졌던 중국의 이미지일 테다. 요즘이라면 아마 중식집이라는 단어가 더 많은 선택을 받았을 것이다. 아니면 아주 간단히 생각해서 중식보다 중국의 발음이 더 간단해서가 아닐까. 실제로 발음해보면 중국집이 중식집보다 혀가 덜 수고롭다. 말은 간략한 데로 향하는 속성이 있다.
양식집은 이제 거의 사어가 된 느낌이다. (경양식도 마찬가지의 운명이 되었다.) 양식의 종류가 다양해진 때문이다. 그 다양함을 담기엔 양식이라는 그릇은 작다. 아니, 작아졌다. 빵집도 비슷한 경로를 걷지 않나 싶다. 물론 단팥빵, 소보루빵, 고로케, 만주, 식빵 등 다양한 빵을 만들어 파는 동네빵집이 건재하지만 카스테라나 크루아상, 스콘 등 단일 품목에 집중하는 곳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런 곳에는 빵집이라는 이름을 붙이기가 좀 꺼려진다. 정감은 덜하더라도 전문점의 어감이 다분한 명칭을 붙여주어야 할 듯하다. 아마 이런 것도 우리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인지도 모르겠다.
상대적인 크기로 보자면 집보다 방이 작지만 ㅇㅇ방과 ㅇㅇ집의 경우에는 다른 기준을 따른다. 아니 기준이 없다고 보는 게 맞겠다. 노래방이나 비디오방은 방방마다 각각의 칸막이와 문이 있어 명칭 그대로 방이지만 빨래방이나 피시방, 만화방은 칸막이가 없는 열린 공간임에도 방이라 한다. 빵집이나 술집보다 규모가 커도 방이라 한다. 인터넷이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기술이 아니고 가장 먼저 사용하지도 않았어서 분명 피시방보다 인터넷 카페라는 용어가 먼저 등장하고 사용되었을 터인데 어째서인지 피시방에 밀려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되었다. 다윈의 용어를 빌리자면 한국인의 언어사용이라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자연선택을 받지 못한 것이다. 한 가지 드는 생각은 굳이 커피를 팔지 않더라도 ㅇㅇ카페라는 상호가 여기저기 보이는 지금이라면 인터넷 카페라는 명칭도 나름의 선택을 받지 않았을까. 아니 카페에서는 라면 떡볶이 만두 등등을 먹는 게 딱히 어울리지 않아 보이니 역시 피시방이 유일한 선택이지 않을까 한다. 편한 자세로 아무거나 맘 편히 먹을 수 있는 데가 방 아닌가. 주방에 있는 식탁보다도 더.
곁가지로 얘기하자면 금은방, 시계방, 복권방, 복덕방 등의 명칭은 말 그대로 방 같이 협소하고 개인적인 공간에서, 또는 집의 어느 한 구석을 개조해서 개업한 경우가 많았기에 자연스레 방이 붙은 게 아닐까 하는 짐작. 지금은 자취를 감추었지만 을지로 시계 골목에 줄지어 있던 시계수리점을 떠올리자면 그렇다. 이제는 자료 사진으로나 볼 수 있는, 복덕방 간판을 이마에 붙이고 있는 곳들을 보아도 그렇다. 방인 것이다.
집에 대한 우리 한국인의 애착은 대단한 듯싶다. 아파트나 부동산 따위의 얘길 하자는 게 아니다. 어느 공간에나 집이나 방을 붙여야 친근하게 느끼는 우리의 언어 감수성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다. 유형의 물건이든, 무형의 기술이든 거래가 이루어지는 곳을 점店이 아니라 집이라 하는 것은, 또 방이라 하는 것은 가게라는 명칭에는 담을 수 없는 어떤 정서가 있기 때문이리라. 그 정서를 무엇이라 부르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