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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딸에 대하여'

여성혐오 범죄 규탄집회를 지나치며

by 바카롱

금요일 요란한 비에 이어, 활짝 개인 토요일 아침은 더욱 찬란하게 느껴졌다. 어머니댁으로 가는 게 일상인 주말이지만 다음 주 가족 모임이 예정되어 있어 전화만 드렸다. 좋은 날씨와 아쉬운 5월을 붙잡기 위해 딸 둘이 만나는 자리에 깜짝 등장할 생각으로 버스를 탔다. 먼저 맛본, 솥밥집을 찾아 안국역으로 갔다. 외국인 관광객이 너무 많아 글로벌 서울을 실감했다. 들은 바에 의하면 지난 4월 서울에 들어온 외국인 관광객수가 역대 최고점을 찍었다고 한다.


식구들이 좋아하는 광화문 일대의 도심지는 만날 시간과 장소를 정확히 하지 않아도 좋은,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지역이다. 아이들을 기다리며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여행객인양 사진도 찍어보았다. 딸들과 사위를 만나 제 취향대로 음식을 즐겼다. 식당에도 여러 테이블에 외국인들이 있어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며칠 전부터 세계 여기저기를 가늠하며 여행계획을 세우는 중이라 더 들뜨는 기분이었다.


광화문일대는 농산물 축제부스와 태권도 공연으로 소란하며 활기찼다. 발길 닿는 대로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층고가 매우 높은 카페에 들어서 한참을 쉬었다. 카페 안이 밖의 공연장만큼 사람들의 소리로 시끄러워 대화가 불편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표정은 너나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가득해 보여 좋았다. 세종문화회관 뒤편 M시어터 쪽으로 들어서니 훨씬 조용해 음료를 들고 나 앉을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피곤함이 몰려왔다. 생각보다 많은 승객들로 한참을 서 있어야 했다. 집으로 가는 길, 미아역을 지나치고 차가 신호에 정차했을 때였다. 확성기에 실린 여성의 목소리에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니 꽤 많은 여성들, 그리고 몇몇의 남성들이 도로에 앉아 시위집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여성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떨리고 있었다. "더 이상 여성혐오, 여성만을 타겟으로 하는 범죄를 눈감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흔들리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간절함과 분노가 섞여있어 내 마음이 심란했다. 저녁을 준비하며 어떤 내용의 집회였는지 궁금해하던 생각을 잊었다.


피곤함에 온몸이 가라앉아 앞으로 여행이 가능할까 의구심이 들었다.

하루 한나절, 걸은 것만으로 이렇게 지치다니! 윗분들의 하루가 다르다는 말이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에 영화나 한 편 보고 자려 했다. 얼마 전부터 눈여겨보던 영화, '딸에 대하여'를 선택했다.

원작이 김혜진 작가의 소설이라고 한다. '오늘의 작가상' 등 수상집들을 통해 그녀의 소설들을 이미 여러 편 읽었는데 기억이 없다. 엄마역을 맡은 오민애 배우가 최근 관심이 많이 가는 터라 선택했는데 여러모로 울림이 컸다.


최근의 소설 수상집들을 읽다 보면, 그중에 한두 편은 성정체성에 관한 것이기 쉽다. 얼마 전 연대에 지인의 결혼식에 갔다가 두 여대생의 인상적인 외양과 행동들을 보고 소설 속에 들어선 기분을 느낀 적이 있다. 과학자들의 말과 다큐를 통해 우리가 아는 기존의 남녀 외에 또 다른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상당히 존재함 모르지 않지만 아직도 낯선 것이 사실이다.


등장하는 인물이 많지도 않은, 서사가 복잡하지도 않은 이 영화! 정말 많은 것들을 말하고 있었다.


집 한 채 외엔 현금이 없어 노동을 통해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야 하는 60대 여자,

많이 배운 것 때문에 교수라 불리지만 불안정한 직업의 젊은 시간강사,

동성애자로서 사회의 인정뿐 아니라 가족에게 배척받아야 하는 딸들,

부모의 뒷돈 없인 독립하기 어려운 젊은 세대,

길어진 수명으로 우후죽순 늘어나는 요양보호시설,

이윤을 우선으로 하는 요양시설의 야박한 경영,

안온한 얼굴뒤에 금전적 이해만을 위한 다양한 재단 관계자들,

요양보호사로서의 고단한 노동과 여성 일자리에 대한 사회적 담합,

단순 노동시장에 불필요한 대학졸업증명서,

실제 이름대신 유희적이거 낭만적 이름을 선택하는 젊은이들,

무연고로 죽어가는 노인들,

치매노인을 대하는 요양보호시설의 차가운 현실 등등 말이다.


수많은 사회적 문제를 함축한 아주 인상적인 영화였다.

마음이 쉬이 내키지 않아도, 맞닥뜨려 현실을 받아들이는 인물들의 마지막 장면이 참 좋았다.

두 젊은 동성애자, 레인과 그린을 응원하거나 공감해서라기보다 같은 인간으로 서로의 힘이 되어주어야 하는 현실을 외면할 수가 없기때문이다.

더불어 우리가 가진 '가족'이란 이름의 개념과 의미가 바뀌어야 할 시간임을 느낀다.


다음 날 아침, 어제 날짜의 기사를 검색해 버스에서 엿보았던 집회가 무엇에 대해서였는지 알게 되었다. 영화'딸에 대하여'가 다시 떠 올랐다. 길 위의 시위는 강남역 여성 묻지마 살해와 미아역 주변 마트 살해사건등 '여성혐오범죄'에 대해 관련단체들이 모였다고 한다. 여성 혹은 딸이라는 공통점을 가져서만은 아니다. 영화 속 주인공의 딸은 자신과 같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대학으로부터 파면 당한 선배를 보고 시위대를 이끈다. 작은 규모 때문에 시위는 크게 주목을 끌지 못하며, 본질을 비껴선 기자의 질문에 항변을 해야한다. 진짜 이름을 두고 왜 그린이니, 레인이니 부르냐는 엄마의 말에 딸은 대답한다. 그것뿐이라고! 그것만이 자신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었다고. 생각지 못한 대사였다.


누군가는 맞서고 누군가는 이름을 바꾼 채 살아가고 있다. 또 어디에선 치매 노인을 돌보는 나이 든 요양보호사가 핏기 없는 얼굴로 힘겨운 하루를 부축하고 있을 것이다. 그 힘겨운 노동에 주인공 오민애처럼 한결같은 정성을 다하기란 쉽지 않다. 마이크에 실린 떨리는 항변의 목소리, 노인을 부축하는 주인공의 가녀린 어깨, 딸들의 지친 얼굴이 함께 떠올랐다. 영화속 여자들이나 길 위의 여자들 모두, 존엄한 삶과 죽음에 대한 기본적인 예우를 위해 항변하고 있다.


기도한다.

우리 모두가 (영화 마지막, 장례식장에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젊은이들과 같이) 서로에게 위로와 연대가 되어주기를! 그린과 레인을 받아들이자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체험하는 주인공! 함께 (무연고 노인)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얻게 된 희미한 미소가 유지되기를! 영화속 여자들처럼 시위에 참여한 모두가 조금씩 위로받고 기대하는 오늘이 되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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