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조카 두 번째 결혼식에 제 여자를 데리고 나타난 사내(단편소설)
아버지의 새로운 인연은 정여사다. 그녀의 존재를 알기 두어 달 전, 작년 봄초였다. 못 보던 핑크색 찬 통을 아버지 집에서 발견하고 물었다.
"이거 뭐예요? 못 보던 건데."
"어? 그거 빨리 돌려줘야 하는데."
내 질문에 아버지는 무심한 듯 친구의 안사람이 챙겨줬다고 말했다. 그냥 친구라 한 말을 내 멋대로 친구의 안사람이라 여겼던가? 처음엔 이웃의 정으로 나눠 먹는 반찬인 줄 알았다. 아버지는 일 년에 한두 번씩 갖는 대학동기들 문화 탐방과 직장 친구들과의 모임에, 동네 친구분들도 여럿 계시다. 낯선 찬 통은 아무런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지 못했다. 그런데 두달 뒤, 냉장고 찬 통의 개수가 세 개로 늘어나 있었다. 크기도 다른 여분의 빈 찬통 두 개가 씽크대 상부장 안쪽에 놓인 것을 보고 물었다.
"아니 뭐가 이렇게 많아요?"
"뭐? 어, 그거! 한 번에 가져다줘야지. 자꾸 받기만 해서 원." 아버지가 당황한 기색이 완연했다.
"몰아서 가져다주려고." 씽크대 문을 황급히 닫으려던 아버지에게 생소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 낯선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두 아이의 학원 기사일, 큰 애의 고등학교 입학준비, 남편의 감기까지 성급하게 봄을 보내고 말았다. 분홍색 찬 통들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 후 한 달여 만에 북어채 무침과 말린 봄나물 두 가지를 챙겼다. 아버지는 연세에 비해 치아가 좋은 편이고 내 반찬 솜씨가 엄마보다 낫다고 늘 말해 왔다. 뚜껑을 열며 좋아하실 아버지를 떠올리며 찬통을 꺼낼 때에야 잊고 있었던 분홍색 찬 통이 떠올랐다. 찬 통의 출처가 한꺼번에 의식되며 이런저런 의구심이 떠올랐다.
남편의 차대신 버스로 가자니 장가방이 제법 무거웠으나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그 거북함을 잊었다. 엄마가 떠난 후 좁아졌던 아버지와의 거리감이 다시 의식되었다.
아버지의 집 비밀번호를 다 누르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벌써 일 다 보셨어요?"라는 낯선 여자의 애교 섞인 말이 들렸다. 문이 열리며 달큰한 향수 냄새도 풍겨왔다.
"누구세요?" 내가 제일 먼저 정여사에게 한 말이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얼음이 된 채로 말이다.
그녀도 나만큼 놀라 정지된 채 서 있었다.
50여 센티미터를 거리로 마주한 우리는 아주 잠깐 막대기처럼 굳어 있었다.
잠시 뒤, 정여사가 미소를 함빡 지으며 먼저 말을 이었다.
"아고! 따님이시죠? 처음 봬요. 무겁겠어요."
내 얼굴에서 아버지의 이목구비를 찾는 그녀의 눈길을 느꼈다.
정여사가 내가 들고 있던 장가방을 끌어 받아 쥐려 했다.
"아, 아니요. 제가 할게요." 내가 듣기에도 매몰찬 말투였다.
분홍색 뚜껑의 반찬통이 떠오르며 상황이 파악되었다.
거실로 들어서는 내 등 뒤에서 그녀가 말을 이었다.
"아버지, 은행 가셨는데 조금 있으면 오실 거예요."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가져간 반찬들을 식탁에 꺼내놓고 냉장고를 여는 순간 나는 한 번 더 당황했다.
냉장고엔 분홍색 뚜껑을 가진 찬 통들이 빼곡하게 차 있었다. 제일 넓은 아래 칸엔 손질된 야채들이 투명한 플라스틱 통에 가지런하게 담겨있었다. 들고 있던 반찬통을 쥐고 망설이다 식탁에 도로 내려놓았다.
"제가 나중에 정리해 볼게요." 뒤에 서성이던 정여사가 식탁 위 반찬통들을 씽크대 한쪽으로 옮겨 놓았다.
"차 좀 끓일게요. 뭐, 커피가 좋으시려나?" 인스턴트 커피밖에 없던데. 어쩌죠?” 정여사가 혀를 차며 혼잣말을 했다.
나는 여전히 굳은 얼굴로 소파에 앉으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꺼진 티비 화면에 비친 내 얼굴이 낯설었다.
포트의 물 끓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아주머니께서 가져다주셨나 봐요.”라고 하자, 거실 쪽을 향한 정여사가 고개를 길게 빼고 수줍은 듯 손으로 입을 가리는 모습이 보였다. 빨간색 매니큐어가 눈에 들어왔다.
"네. 솜씨가 없는데도 좋아하셔요." 수줍게 말을 잇는 그녀에게서 아버지와 나눴을 한담들이 연상되었다. 정여사는 말을 이어가지 않는 나를 살피는 듯하더니 주방으로 몸을 돌렸다. 잠시 후 커피를 들고 거실로 옮겨오던 그녀가 웃으며 물었다.
"버스 타고 오셨어요?"
"네."
"저 무거운 걸 들고. 고생 많으셨네요."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말투였다.
“연락 주셨으면 제가 차로 나갔을 텐데. 다음엔 꼭 미리 말씀하세요. 제가 차로 모시러 갈 수도 있어요.” 그 말투에는 부담도, 과시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여사는 나에 대한 기본 정보들을 가진 듯했다. 내가 운전을 하지 않는 것도, 평일이라 버스를 타야 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버스를 갈아타는 데 걸린 시간을 묻더니, 평일 오전이라 배차 간격이 길지는 않았을 거란 얘기를 스스로 덧붙였다.
잠시 후 문을 여는 도어락 소리가 들렸다.
침묵이 버거웠던 그녀가 반갑게 일어섰고 나는 검은 티비 화면에 비친 내 얼굴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정 여사, 나 왔어요." 아버지의 목소리에 활기가 느껴졌다.
정 여사라! 어이가 없고 우습기도 해서 콧웃음이 났다. 생전 엄마를 부르는 소리와는 전혀 다른 정다움이 실려있었다.
"오는 길에 딸기 좀......" 아버지가 말끝을 흐렸다.
정여사가 눈짓을 했거나 내 신발을 보고 상황을 알아챘을 것이다. 중문 밖, 그들의 얼굴빛이 상상되었다.
말을 끝내지 않은 아버지가 군기침을 하며 들어섰다.
"전화도 없이 웬일이냐?"
"언젠, 전화하고 왔어요?" 싸늘하고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뒤에 선 정 여사가 얼굴을 굳히며 난처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딸기 좀 드시게 씻어 올게요." 아버지의 모자와 검은 비닐봉지를 받아 든 정 여사가 아버지와 나, 우리 둘을 빠르게 번갈아 보았다. 딸기를 씻어 내오는 동안 나는 눈 깜빡임도 하지 않았다. 대형 티비 화면에는 소파 끝에 걸터앉은 아버지와 나의 모습이 흐리게 비쳐있었다. 엄마를 산에 모시고 돌아온 첫날 저녁과 같은 장면이었다.
아버지는 잠시 후 주머니 속의 통장을 꺼내, 앞뒤로 젖혀가며 들여다보기를 반복했다. 언제 일어나야 할지, 정 여사가 있는 공간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잠시 뒤 정여사가 내온 빨간 딸기는 크고 탐스러웠다.
"생전 퇴근길에 자기 식구 먹을 거 하나 챙기는 적이 없지, 저 양반.” 엄마가 자주 하던 군소리가 떠올랐다.
아버지 아직 젊으시다, 비밀스러운 눈짓을 하며 내 귀를 당기던 작은 엄마가 떠올랐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첫 기제사에서였다.
"아유, 커피가 다 식었겠어요. 딸기 달아 보이는데 하나 드셔봐요." 정 여사가 재차 딸기를 권했다.
정 여사가 건넨 딸기를 외면하는 것을 곁눈질한 아버지는 통장을 주머니 속에 넣으며 쿰쿰 기침 소리를 냈다.
"할 말 없으면 그놈의 군기침 소리" 아버지 등 뒤에서 엄마가 달고 살던 혼잣말이다.
정 여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식어 프림이 허옇게 뜬 커피를 내려만 보다가 집을 나왔다. 아버지는 정 여사의 배웅을 내다보지도 않은 채 거실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버스를 바로 타지 않은 나는 큰 길가를 뒤로한 강가까지 한참을 걸었고 머릿속은 기억과 감정이 뒤섞여 분주했다. 서둘러 나오지 말고, 정 여사가 바로 차리겠다고 한 점심까지 먹으며 앞으로의 계획을 더 알아봤어야 했나 싶기도 했다. 왜 그렇게까지 여유가 없었을까 스스로 자책하는 마음도 들었다. 영락없이 사춘기 소녀처럼 삐죽이 입을 내민 내 처신이 싫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제 아버지의 남은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큰 기로에 섰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아버지가 자신의 음식을 좋아하신다며 웃던 정 여사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인상이 새초롬하고 고왔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그녀의 붉은 립스틱이었다. 시선을 사로잡고 자신감을 내비치기에 나무랄 데 없이 강렬한 색이었다.
"엄마, 이색 이쁘지? 이거 한 번 발라 봐." 립스틱을 내밀던 내 손을 뿌리친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생전 엄마는 치장이라곤 모르는 사람이었다. 성인이 된 후 화장을 시작했을 때에야 엄마의 얼굴이 늘 맨 얼굴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가족 행사가 있어 온 식구가 집을 나서는 순간에도 치장 없이 집에서 입는 옷과 다를 바 없는 겉옷을 걸칠 뿐이었다. 아버지는 얼굴을 굳힌 채 멀리 앞서 걸었다.
정 여사를 처음 본 날, 퇴근한 남편은 “아버님네 자주 가라. 그래야 이렇게 좀 먹지”라며 식탁 의자를 끌었다. 나는 팔짱을 끼며 한숨을 쉬었다.
"야, 그렇다고 뭔 한숨이야?" 남편은 여전히 웃으며 젓가락으로 북어채 무침부터 집어 들었다.
"아버지, 여자 있어." 남편은 북어채가 떨어지는 것도 놔둔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아버님이 그러시대?"
목소리를 높이며 흥미로운 듯이 몸을 앞으로 숙였다.
"보고 왔어. 오늘, 집에 들어와 있더라고."
"어? 지난번 다녀온 지 얼마 안 됐잖아? 그 사이에?" 남편이 날짜 계산을 하는지 눈을 치켜떴다.
"들어온 건 얼마 안 되고 이미 그전부터 만나고 계셨겠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아아!” 이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근데, 어디서 만나신 거래?" 이마에 심각한 주름을 만들며 남편이 물을 때까지 그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나 스스로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 그러게. 그건 모르겠네. 물어볼 새가 없었어. 바로 말을 바꾸었다.
"나이는 훨씬 젊어 보여." 나는 손가락으로 떨어진 북어채를 집어 입에 넣었다.
"얼마나?"
"글쎄, 한 육십몇이나 될까? 아버지보다 훨씬, 한 열 살은 젊어 보여.”
“그럼, 친구나 동기도 아니신 거고. 대체 어디서 만나신 거지? 정답은 음! 산악회?" 뭔가 짚인다는 듯이 클클거렸다. 남편의 실없는 말에 나는 미간을 좁혔다.
그녀와의 관계가 어디서 만들어진 건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 이물감 같은 불쾌한 감정은 궁금증에 밀려나고 말았다. 이런저런 추측에 머릿속이 분주해졌다.
남편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내 기억을 하나하나 되물어 정 여사를 그려가며 저녁을 먹었다. 나는 그녀의 붉은 립스틱을 떠올리며 입을 가리고 웃는 모습을 흉내 냈다.
”이제 아버님 밥걱정, 살림걱정 안 해도 되겠네." 남편은 실없이 웃었다.
"미국에도 알려야 하지않어?"
"전화해서 뭐라 그래? 여자친구 있다구? 생전 안부 전화 한 통 없는 인간한테?”
"뭐, 하기야. 당장 재혼도 아니고 아직 누구에게 알리고 말고 할 건 없지." 남편은 스스로 제 말을 정리하며 저녁을 마쳤다.
미국에 뿌리내린 지 이제 삼십여 년의 세월을 지나는 동안 오빠는 남들보다 멀게만 느껴졌다. 공부를 마친 오빠는 아예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처가의 도움을 받아 쉽게 미국 내 거쳐를 마련했고 엄마의 장례 이후엔 전화조차 뜸했다.
우리 집 냉장고를 열 때마다 정여사의 손길이 간 아버지의 정갈한 냉장고가 떠올랐다. 남편은 전화를 해서 더 알아보라고 했지만 말 섞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숙제를 떠안은 것처럼 답답하기만 했다. 혼자가 되신 지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주변의 "아직 아버지 젊으신데!"란 뒷말은 인사치레로 여겼다. 친구들과 어울려 여행도 즐기고 병원 진료도 모두 알아서 했기에 내게 아버지는 엄마가 계실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반년 이후, 아버지는 작정이나 한 듯 바쁘고 활기찬 노년을 살았다. 나는 그 어떤 생각도, 염려도 크게 하지 않았었다. 늘 자기 관리를 잘 해낸 아버지에게 반찬이 아니면 갈 일이 별로 없었다. 그마저도 해가 가며 뜸해지던 참이었다.
엄마의 위암을 아버지 탓이라고 여겼었다. 아무리 치장이 없고 단정치 않아도 조금 더 따뜻하게 대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늘 있었다. 엄마가 병상에 누워 있을 때 내가 가졌던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되살아났다. 정여사의 아스라한 원피스와 빨간 입술이 엄마의 고통스런 마지막 모습과 뒤섞이며 하루에도 몇 번씩 생채기를 들쑤셨다. 아버지의 냉정함으로 십여 년을 먼저 떠난 엄마가 부당한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했다. 내게 아버지의 여자는 목에 걸린 가시처럼 거북하고 답답했다.
다시 그 둘을 본 것은 늦여름 사촌 남동생의 결혼식장에서였다. 당사자인 사촌은 마흔여섯에, 두 번째 결혼이었다. 첫 아내와 이혼 후 3년이 채 안 된 재혼이었다. 전화를 건 사촌, 기정은 남자가 어떻게 혼자 늙어가겠느냐며 궁금하지도 않은 여러 말을 덧붙였다. 두 번째 결혼이라 가족들끼리 밥 한 끼 먹으려다 신부 되는 이가 처음 결혼이어서 그럴 수 없었다고 했다. 기정에게 아버지에게도 연락을 따로 했냐고 묻자 그제야 무언가 떠올랐는지, 기정이 아차차! 를 연발했다.
"내 정신 좀 봐. 기철이가 전화드렸대. 근데 이상한 말씀을 하셨다는데.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언니에게 좀 물어보래."
"뭐라셨는데?"
"친한 친구 한 명, 같이 갈 거라고. 고모부가 기철이 너 축하자리 좀 빌려야겠다고 했다지, 아마. 자리 빌리는 게 무슨 뜻이냐고?"
순간 정여사가 떠오르며 아버지의 의중이 짐작은 되었지만 나는 아는 체하지 않았다.
"글쎄, 무슨 말이지? 나도 모르겠네."
"알았어. 언니, 하여튼 그날 봐여." 기정은 아무 의심 없이 전화를 끊었다.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은 채 십 여분을 움직이지 않았다.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방향을 가늠할 수 없이 마음이 심란했다. 미국에 있는 오빠에게 기정이 보낸 기철의 모바일 청첩을 카톡으로 보냈을 뿐 아버지 얘기는 하지 않았다.
오빠에게서는 축의금을 대신 해달라는 답만 왔을 뿐 안부 인사조차 없었다.
결혼식을 앞둔 나흘 전, 아버지로부터 사촌의 결혼식에 정 여사와 같이 가겠다는 메세지가 왔다.
식장에서 친척들은 아버지에게 인사를 건네기 전이나 후에 내 옆으로 건너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턱을 떨구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정 여사의 존재 여부를 언제 알았느냐, 아버지의 의중은 뭐냐, 미국에 있는 네 오빠는 아느냐? 소리 죽여 물어왔다. 나는 전혀 모르는 척했다. 모두의 시선이 신랑 신부보다 정 여사에게 쏠렸다. 정 여사는 시선에 당당했으며 베이지색 투피스는 아름답고 우아했다. 남편은 아버지와 정 여사 앞으로 가 인사를 하고 슬며시 웃음을 띠고 돌아왔다. 자신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고우시다, 말하고 내 살기 어린 눈빛을 받았다.
정 여사는 마흔을 넘겨 신부가 된 주인공보다 더 많은 시선을 받았다. 아버지는 너털웃음을 흘리며 좋은 티를 감추지 않았다. 아버지를 둘러싼 남자들은 간격을 두고 호기로운 웃음소리를 터트려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들 사이 정 여사가 빨간 손톱을 내보이며 입을 가리고 웃었다. 친척들은 신부대기실보다 아버지 주변에 더 오래 서성이고 귀를 세웠다. 혼주인 큰삼촌과 외숙모는 못마땅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흘끗거렸다. 기정은 "어머머! 언니, 그 말이 이거였네. 몰랐었어? 이제 고모부 재혼하시는 거야?"라며 호들갑스럽게 떠들었다. 기숙언니는 두 차례나 슬며시 다가와 얼굴 펴라는 언질을 주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미모가 상당하시네” 기숙언니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고모부가 재혼 얘기엔 손사래를 치시네" 하며 아버지 의중을 묻고 내게 넘어온 기혁 오빠는 대놓고 재미있어했다. 아이들은 새 할머니가 생기는 거냐며 눈치 없이 묻다 내 눈초리에 쭈뼛거렸다. 멀찍이 떨어져 앉은 아버지가 무심한 척해도 내 쪽에 신경을 두고 있는 게 느껴졌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에 신랑신부에게 눈길이 가지 않았다. 사진을 찍으라는 성화에도 모른 척했다. 피로연 뷔페로 일찍 옮겨가 앉았다. 입이 짧은 작은 애가 아이스크림을 들고 장난질을 할 때 나는 일어설 채비를 했다. 아이들의 겉옷을 집어들 때 정 여사가 우리 가족 곁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얼마 안 되지만 맛있는 거 사 먹어요. 할머니가 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네" 정여사가 오만 원짜리 지폐 한 장씩을 아이들 손에 쥐어주었다. 정여사가 허리를 펼 때 은은한 향수냄새가 피어올랐다. 아이들은 좋아서 웃음을 참고 씰룩거렸다. 아버지는 멀찍이 서서 우리 내외를 쳐다보았다.
돌아오는 길, 평소 말이 없던 큰 애는 동생에게 장난을 걸며 모처럼 입을 열었다.
식이 끝난 당일 저녁부터 다음 날 내내 친척들의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기숙언니도 식장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 시간이 넘도록 한 말을 되풀이하며 귀를 달궜다. 정여사가 재력이 돼 보인다는 말도 나왔다. 재혼이란 문제는 결국 재산문제가 관건이라며 정여사의 배경을 알아보라 언질들을 주었다. 그래도 결국엔 집이니 연금이 정 여사에게 넘어갈 거라는 섣부른 장담도 했다. 연금도 못 써보고 간 엄마의 인생에는 혀를 찼다. 사실 말이야! 를 덧붙인 외가의 식구들이 한 말들은 나의 며칠을 마비시켰다. 혼자되신 지 수년이 되어가는 외숙모에게 생활비를 보내야 하는 기숙언니는 재정적으로 도움이 필요 없는 아버지의 처지를 다행으로 여기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삼촌들은 내가 아버지에게 더 신경 써야 하겠다는 별 의미 없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친척들 중 몇은 아버지가 외로우신 건 미국에 뿌리내리기로 한 오빠 탓이라고 했다. 오빠와 올케는 이미 남이나 다름없는 타지사람이니 내가 잘해야 한다는 말들도 했다.
"니 오빠는 뭐래?"
"오빠는 아직 아무것도 몰라요."
"아무리 그래도 장남이 몰라서야 되겠냐?"
"상황 봐서 연락하려구요. 아직 저도 아는 게 없는데요."
"아버지가 가타부타 아무 말이 없다는 게 사실이냐?"
"네, 저도 이번에 처음 뵌 거예요."
점차 나는 대꾸 없이 그냥 듣기만 했다.
"아버지가 회춘하셨더라."
"고모부 안색이 아주 다르시던데. 보기 좋더라."
"어쩌겠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여기 사는 건 너 하나니!"
"거봐. 내가 뭐래? 아버지 아직 젊다니까!"
“그 여자랑 서 있으니 아버지 더 젊어 보이더다.”
"죽은 네 엄마하고는 영 딴판이더라."
외가 사촌들을 동창으로 둔 고향의 친가 쪽에서도 소문을 들었다며 확인 전화를 걸어왔다. 제일 먼저 전화를 한 사람은 작은 어머니였다. 치장을 좋아하는 작은 어머니는 제일 먼저 정여사의 생김새를 묻고 확인하는 말을 했다.
"아니, 아버지는 어디서 그런 인물을 만나신 거니? 청주 명숙이보다도 인물이 더 좋다고 하던데!"
귀가 뜨거워 수화기를 멀리 떼면 엄마가 생각났다. 따뜻한 안방바닥에 누워 엄마와 친척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엿듣던 시간이 제일 좋았다.
마누라 바람에 내연남을 때려 불구로 만들고 감옥에 다녀온 문혜리 작은 집 처조카,
큰돈을 벌어 일대의 땅을 모두 사들인 대위리 안 씨,
서울서 구청직원이 되고 처녀장가를 새로 가서 ‘도둑놈’으로 불린 현리 삼촌,
짜다짜다 제 자식에게도 한 푼 안 써 ‘좁쌀 사분의 일’로 불린 양씨네 큰 아들
결혼 반대에 목을 맨 스물아홉 청년의 상여 이야기,
밭일이 심해 일흔도 안돼 이빨이 모두 빠진 정씨네 첫 부인,
술에 절어 두 딸 모두에게 외면당한 강씨네 둘째 아들,
청도여관에서 죽은 허 씨와 남은 유산을 동창에게 다 넘긴 그의 아내
유산을 가로채 통닭집을 차린 뒷 마을 강씨네 내외
그들 모두가 다 소환되었다.
아버지는 이제 처조카 두 번째 결혼식에 제 여자를 데리고 나타난 사내가 된 것이다.
정 여사와의 인연은 어디였을까? 정 여사를 보고 나온 날부터 아버지 주변 사람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구성원들의 이모저모를 가늠해 보았다. 결혼식 날 막내 삼촌은 아버지께 가까이 다가가 술을 권하고 두 분이 어디서 만났는지 물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대답 대신 술잔을 들며 삼촌의 질문을 묵살했다고 막내 외숙모는 전했다. 어디서도 정확한 추정은 불가능했다. 큰삼촌은 정 여사의 배경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맹추 짓이라고 까지 말했다. 무엇보다 우리 내외가 제일 신경 쓸 건 정 여사의 가족 상황이라고 그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외삼촌들에게서 아버지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묻어 나왔다.
겨울이 지나도록 아버지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외가에선 뜸하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의 재혼에 대해 새로운 뉴스를 찾았다.
"직접 전화해서 물어보세요.” 그날의 기분에 따라 나는 퉁명스럽게도, 의뭉스럽게도 대답했다.
"글쎄요. 아버지 좋으실 대로 사셔야죠, 뭐."
나와는 상관없다는 듯 말하기도 했다.
구정이 임박한 어느 날 아버지가 우리 내외를 불렀다. 나도 남편도 이제 뭔가 어른 노릇을 하게 될 거란 막연한 짐작이 들었다.
집에 들어선 남편이 거실을 둘러보며 정 여사를 찾는지 기웃거렸다.
"독일에 사는 딸네 갔는데 2주 후에나 들어올 거네." 아버지가 벽에 걸린 달력을 쳐다보며 묻지도 않는 남편에게 말했다.
"아, 딸이 독일에 살아요?" 남편은 궁금증이 풀려 시원한 듯 반갑게 물었다.
"독일 사람이야. 박사공부한대."남편은 보이지 않았지만 턱이 빠져라 놀랬을 것이다. 나도 냉장고를 열다 닫아버렸다. '독일사람?'
"아 아, 외국 사람이랑 결혼하셨었던 거예요?" 남편이 입으론 질문을 하며 나를 찾아 목을 빼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입꼬리를 올렸다. 본인이 나서서 알아보겠다고 한 차 안에서의 말이 떠올랐다.
"나이는 마흔이라는데 아직 결혼 생각이 없다고 한다네. 공부 때문인지."
"그리고......" 아버지가 잠시 망설였다.
나는 냉장고를 다시 열어보았다. 흥분되는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전과 달리 흐트러진 내부를 들여다보며 주방에 서있었지만 귀는 거실로 향해 있었다.
"친딸은 아니고 오래 알고 지낸 사이로 이십 년이나 됐다고 하네."
"그럼 다른 자식들은요?"남편이 고삐를 잡은 느낌이 들었다.
"그 양반 결혼한 적이 없고 혼자야."나도 모르게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정 여사의 가족 관계를 알아보라고 한 친척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아버님, 그럼” 남편이 말을 꺼내다 말았다. 궁금해서 식탁을 등지고 거실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만나셨는지......" 남편이 말을 하다 말고 멋쩍은 듯 말꼬리를 잘랐다.
"재작년에 싱가폴 여행갔을 때 그 두 모녀를 다 봤지."
"왜, 그 내 친구 중에 영어 좀 하는 녀석이 있어. 외국인이라고 영어로 말 건네다 그 딸이 우리말로 대답하는 바람에 말을 섞었지.”
체구가 크고 호탕한 권 선생은 아버지 대학 동창이셨다. 영어에 능숙하여 아버지의 여행 모임에 늘 앞장선다고 했다. 엄마에게도 친절한 그의 인품을 나도 좋아했고 잘 따랐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 중학교만 겨우 마친 엄마에게 권 선생은 우러러볼 만한 여러 외면을 가지고 계셨다. 인품도 넉넉하신 데다 엄마에게 언제나 친절하게 대하셨으며 위트가 넘쳤다.
나는 이미 거실에 나와 서 있었다. 대략의 그림이 그려졌는지 남편은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사람이 좋고 서로 의지도 되니 남은 시간 함께 했으면 하네." 나는 이제부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한 마디 한마디에 힘을 주며 전에 없이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작정하고 연습까지 한 사람 같았다.
남편의 대꾸가 들리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보니 말없이 고개를 얕게 주억거리고 있었다. 그제야 티비가 켜져 있는 것을 알았다. 티비 화면에는 음소거에 갇힌 남자 트로트 가수가 열창을 하고 있었다. 음소거를 되돌릴 생각을 못한 아버지도 부동자세였다. 둘은 정적 속에서 가수의 열창을 훔쳐보고 있었다. 나는 긴장했던 숨을 몰아쉬며 씽크대쪽으로 돌아섰다. 내가 어떤 대꾸를 해야 좋을지 생각하며 빨다 만 행주를 박박 문질렀다. 있는 힘껏 행주의 물기를 짜내고 몸을 돌렸다. 물기에 잘 벗겨지지 않는 고무장갑을 당기며 말했다.
"아버지 마음대로 하세요. 뭐, 우리가 하지 마시라고 말 것도 아니고." 나는 역정인지 다행인지 알 수 없는 마음을 드러냈다. 남편은 팔짱을 끼고 선 채 대꾸하는 내게 조심하라는 눈짓을 했다.
"아니 뭐, 틀린 얘기 아니잖아." 목소리가 올라가자 남편이 일어나 나의 팔을 끌어 앉혔다.
"네, 아버님. 그럼 형님께도 연락드려보고, 돌아오시는 대로 자리 한 번 마련하겠습니다."
"아버지가 다 알아서 하시겠지. 자기가 뭘 마련해?" 남편을 향해 목소리가 더 커졌다.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은 하나도 없다는 게 내 판단이었다. 정여사의 이모저모가 예상과는 많이 달랐지만 마음이 여전히 편치 않았다.
"그만해. 좀." 남편이 어금니를 꽉 다물며 낮은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부라린 눈으로 역정을 더 내려는데 아버지가 일어났다. 그만 가라는 손짓의 시늉을 하며 말했다. 아버지가 고개를 돌려 킁킁, 잔기침 소리를 냈다.
"정서방, 그럼, 그렇게 한 번 해보도록 하지."
남편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네네를 연발했고 아버지는 안방으로 건너가 문을 닫았다. 무음의 티비에는 노래점수 100과 빵빠레와 폭죽이 요란하게 터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느 때와 달리 싱거운 말 한마디 없이 운전만 했다. 장인과의 약속을 위해 어떻게 자리를 만들지 곰곰이 생각에 빠진 듯했다.
"형님께 전화해야겠지."유일한 한 마디, 혼잣말이었다.
이후로도 여러 날 정여사를 부르던 아버지의 다정한 목소리가 반복적으로 떠올랐다. 엄마는 살아생전 아버지를 의뭉스러운 사람이라며 생각하고 살았다. 살갑지 않은 아버지가 방으로 향하며 잔기침으로 킁킁거리는 것을 늘 못마땅해했다. 아버지에게 등을 돌릴 때마다 ”어이구, 세상 답답한 니 아버지“를 후렴구로 넣으며 가슴을 치기도 했다. 고향 집안 어른들의 중신으로 40년! 그들은 긴 세월을 견뎌야 했다. 전생의 웬수로 칭한 남자를 두고 엄마는 죽음으로 결혼을 정리했다.
아버지는 유독 엄마 앞에서만 말이 적었다. 그들은 말이 통하지 않았다. 물과 기름처럼 겉돌다 헤어졌다. 나는 두 내외가 살아가는 모습만 본다면 누구도 결혼을 꿈꿀 수 없다고 남편에게 말한 적이 있다.
엄마는 누구에게도 살가운 사람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과묵함보다 사실 엄마의 무정함이 더 컸지만 본인만 몰랐다.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도 무심한 엄마를 두고 외숙모들과 친가 집안 여자들은 눈을 흘길 때가 많았다. 평생 내게 사랑에 야박했던 엄마의 마지막은 그 설움과 아쉬움으로 한없이 먹먹했다. 영안실에서 곱게 단장한 엄마의 얼굴에 손을 뻗어 쓰다듬은 것도 내 생애 처음이었다. 엄마의 전부라고 일컬어진 오빠는 아랫입술을 물고 벌겋게 부푼 눈을 훔치며 내 등 뒤에 서, 한 마디 말이 없었다. 나를 가게 일과 부엌일을 돌보는 가정부 취급만 한 엄마를 오랫동안 원망했었다. 엄마가 가고 나서야 미움은 사라지고 먹먹함과 애틋함이 더 커졌다. 평생 남편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인생과 치장이라곤 모르고 가게 일에만 매달린 엄마를 기억했다. 산에 다녀온 날이면 나는 술을 마시곤 했다. 술상 앞의 남편은 덩달아 흥이 올랐지만 나는 한 번도 취한 적이 없었다.
자신의 전부인 아들에게서 외면받았던 엄마는 고작 60을 넘기며 세상과 이별했다. 집안 어른들의 결정으로 만나고 살았던 아버지와는 평생 한 번도 살갑게 사랑을 나누지 못했다. 외가에서 댄 서울 집값이 아니었으면 대학졸업장을 가진 아버지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을 엄마였다. 그들이 부부로서 살아낼 수 있었던 이유는 박사 아들을 두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벌이와 지체 높은 사돈 앞에서의 처세 때문이었다.
대학입학을 막 하고 난 오래 전 전 4월이었다.
"얘, 고모 화장 좀 하시라고 해." 기혁오빠의 결혼식장에서 기숙언니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집을 나설 때부터 우려하던 일이었다. 나는 대꾸 없이 눈을 내리깔았다. 철 지나 무거운 가지색의 블라우스에 남색 치마를 입은 엄마의 노오란 맨 얼굴이 싫어 시선을 피하려던 참이었다. 가족사진에 찍힌 엄마의 얼굴색은 친가나 양가 모두에 두고두고 이야깃거리였다. 엄마는 외양에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그건 살림이 궁해서가 아니라 엄마의 타고난 성정 때문이었다. 가까운 이웃이나 친지들의 지적이 숱했지만 조금의 이해도, 관심도 없었다. 그런 엄마를 대놓고 싫어한 친가 사람들은 엄마가 듣거나 말거나 돌아서는 자리마다 험담을 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킁킁 소리를 내며 인상을 썼다. 그런 날이면 엄마와 멀찍이 뚝 떨어져 걷는 아버지의 마음도 짐작되었다. 결국 우리 식구는 가족행사마다 뚝 뚝 떨어져 걷는 게 보통이었다. 그 결혼식 며칠 뒤 엄마에게 분홍색 립스틱을 사 권했다.
"뭣하게 이런 거에 돈을 쓰냐? 오빠 학비 대기도 빠듯한데" 쳐다도 보지 않는 립스틱을 쥐고 파를 다듬는 엄마의 푸석한 머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냥! 좀 써봐요." 립스틱을 던져두고 집을 나와 한참을 걸었었다.
그 후 나는 열심히 화장술을 익혔다. 엄마는 나의 화장과 옷, 어디에도 관심이 없었다. 학교를 마치고 가게로 나가 엄마를 도와 셔터를 내릴 즈음이면 화장은 이미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관심이 없다 보니 알아채지 못했고 힘에 부쳐 내 얼굴을 살필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평생에 걸쳐 마음을 나눈 기억 없이 엄마와 작별했다. 나는 스스로 여자가 되어야 했다.
대학교 2학년 초여름, 오빠의 유학준비로 온 식구가 매달릴 때였다.
"얼굴 칠에 신경 쓰면 공부는 언제 하냐?" 내 얼굴을 빤히 보던 엄마가 차갑게 말했을 때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엄마가 내 얼굴에 머문 시선은 1초를 지나지 않은 듯했다. 미국으로 부쳐야 하는 짐을 부리며 내 얼굴을 여러 번 마주하고 나서야 내 눈의 짙은 아이새도우와 붉은 입술을 보았던 것이다.
"내 얼굴도 보이셔? 보이긴 하나 보네."
"싱거운 소리 말고 여기나 잡어." 엄마는 가방을 누르며 힘을 쏟았다.
오빠를 향한 엄마의 일편단심은 죽음 직전까지 지속되었다. 엄마의 입술이 퍼렇게 되어가는 순간까지 오빠는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지 않았다. 그는 여느 조문객들과 같이 이튿날 밤이 돼서야 장례식장에 허둥거리며 들어섰다. 장례식장은 너무나 고요했다. 외가 식구들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처음에 나는 많이 울지 않았다. 그러나 영정사진을 보자마자 오빠의 결혼식날 아침이 기억났다. 혼주화장을 위해 의자에 앉으려던 엄마가 메이크업아티스트에게 말했다.
"입술 단장은 이걸로 해줘요."
그리고 턱짓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딸이 사준 거예요." 생각지 못한 말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었다.
엄마의 기일을 사흘 남긴 주말, 금요일이었다. 납골당에서 마주할 아버지를 떠올리는 중에 메시지가 왔다.
‘나는 알아서 갈 테니 너희는 너희 차로 와라. 거기서 만나자’ 이어, 시간이 적혀있었다. 늘 하던 대로 아침 일찍 들렀다가 주변을 돌아 막국수와 메밀 전을 점심으로 하겠거니 했다.
"아버지는 알아서 가신대."
"가는 내내 차 안이 불편할까 그러시나?" 자기 말에 스스로 고개를 끄덕인 남편이 말했다. 내 생각은 달랐다. 정여사가 한국으로 돌아왔을 시간이니 말이다.
당일 아버지네 동네를 지나칠 때 남편이 말했다.
"정 여사, 혹시 함께 오시는 것 아닐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고 남편도 더는 말이 없었다.
공원묘지는 산을 병풍으로 너른 광장과 방문객을 위한 편의 시설이 좋아 휴식하러 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작은 아이가 꽃다발을 들고 모둠 뛰기를 하며 앞서 걸었다.
"그렇게 뛰면 꽃이 다 떨어지지." 아이에게 시선을 주며 잔소리를 했다. 고개를 들었을 때 멀리 휴게실건물 중앙에서 나오는 아버지와 정여사를 마주했다. 햇빛을 정면으로 선 두 사람이 흰색과 크림색 옷을 입고 있어 눈이 부셨다.
아들이 달려가 그들에게 인사를 하자 정여사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못 본 새 또 훌쩍 컸네."정여사가 아이의 눈높이에 키를 맞추며 말했다.
남편도 빠른 걸음을 걸으며 인사를 했다. 덕담을 나누는 장면은 모두가 하나의 가족 같았다.
"어서들 다녀와요. 우리는 벌써 인사드렸어요. 예상보다 삼십 분이나 일찍 왔거든요." 정여사가 묻지 않은 설명을 했다. 아버지는 계속 나를 살피고 있었다. 당당한 정 여사의 얼굴을 가까이 마주했을 때 그녀의 옅은 핑크색 입술이 보였다.
"잘 있었어요?" 내 손을 잡으려 손을 뻗었을 때 그녀의 빨간 손톱 매니큐어가 보이지 않았다. 정갈한 여자의 손이 내 두 손을 잡았다. 엉겁결에 잡힌 내 손을 보며 나의 입꼬리가 씰룩대는 것을 느꼈다.
"살이 조금 빠지신 것 같아요. 이젠 너무 말라도 안되는데....."정여사가 주저하더니 말을 이었다.
"저 때문이 아니길 바래요." 안쓰럽게 눈을 맞추며 웃는 그녀에게 내 손은 그대로 잡혀 있었다.
아버지가 군기침 소리를 냈다.
그들을 뒤로하고 우리 셋은 어머니의 묘로 향했다. 언덕을 올라 수많은 봉분들을 지나치자 어머니의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앞에는 분홍색 장미가 하나 가득 담긴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눈으로는 처음 보는 크기였다.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게 묻고 있었다.
"할머니가 꽃 사 왔나 봐. 엄마!"아이가 지칭한 ‘할머니’에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런 것 같다고 짧게 말했다.
"야 상당하네. 이 정도면 가격이 얼마나 될까?" 남편은 추모에는 관심도 없이 장미꽃 바구니를 이리저리 눈여겨보며 말했다. 인사를 마치고 방문객 휴게소로 향하는 아이와 남편이 들떠 보였다.
때와 장소를 가려 입술 색을 바꾼 정여사의 정갈한 손과 차분한 염려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저 때문이 아니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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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진작가, 박영숙 - 응시의 시작전-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