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네 할머니야
얼마 전, 매사에 심드렁하다고 투덜거리며 '나, 여기 있어요!'에 얽힌 초등학교 입학식 이야기를 써서 올렸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손녀딸을 보았고 할머니가 되었다. 얼마나 좋던지 길을 걷다가도 웃음이 새어 나왔고 길에서 아이랑 눈이 마주치면 '나도 할머니야!'라고 말한다. 아이가 세상에 나오던 날 가슴 졸인 잠깐이 지나고 전송받은 아기 사진에 눈물이 글썽여지며 감격의 기분을 맛보았다.
그 뒤로는 종일, 수시로 아기 사진을 보며 '아가야, 내가 네 할머니야.'를 혼잣말한다.
가만히 생각하니 살면서 얻게 되는 다양한 이름이 새삼스럽고 그 수도 참 많다. 속으로 짚어보았다.
본명 이름 세 글자, 선희라는 예명, 영어를 배운답시고 만든 닉네임, 소피아
해외 사이트 예약 시 전해오는 답장이나 확인서의 자동번역이름, 공원부인
그리고 직업이나 직책으로 불린 이름들에 브런치 작가명, 바카롱
딸들에게는 엄마, 나의 엄마에겐 딸, 혹은 우리 이쁜 딸, 시누나 올케 그리고 동서나 사돈으로 불린 이름까지! 내 아이들덕에 얻은 '쌍둥이 엄마'라는 이름도 있다. 오랜 냉담으로 기억도 가물가물한 천주교 세례명도 있었다. 루시아! 루시아자매님.
사는 게 이름을 얻어가며 그 이름에 걸맞게 살아내는 것이 다인가보다! 싶은 생각이 든다. 오늘 이른 아침 '물가에 앉은 마음'작가의 손녀 보기의 고단함을 쓴 글- 애 볼래, 땅 팔래?-를 재미있게 읽다가 동서양의 비슷한 속담을 찾아보았다. 부모되기가 힘든 건 동서가 다를 리 없다. 자식걱정은 죽어 무덤에 들어가야나 끝난다고 한다. 그런 내용을 정리하여 티스토리 한 편 쓰고 나니 창밖이 훤하다. 창밖 단지내 단풍을 내다보며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더 이상 심드렁하지 않다. 역시 그동안 수고할 일이 너무 적어 그랬던 모양이다. 너무 편했던 모양이다.
산후도우미의 방문이 끝나는 대로 내가 얼마간 바통을 이어 받아야할 상황이다.
사랑이 담긴 수고가 만만치 않을 걸 알고는 있지만 더이상 심드렁하지 않다. 크게 기지개를 켜고 커피잔의 남은 한 모금을 마신 후 아침 준비에 팔을 걷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