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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자 Nov 21. 2024

그녀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거울을 본다. 화장기 없는 마른 얼굴, 광대뼈가 유난히 튀어나와 더 말라 보인다. 모자 속으로 휑한 머리카락을 손가락빗으로 잘 쓸어 넣고 외출 준비를 한다.




저만치서 그녀가 온다. 근사한 머플러가 찬바람에 휘날리고 날렵한 구두의 또각또각 소리가 들린다. 그녀는 여전히 풍성하고 긴 생머리에 멋있는 트렌치코트를 입고 붉은 입술은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다. 우리는 손을 잡고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간다. 그녀의 손은 티 한점 없이 매끈하며 뼈가 느껴질 정도로 가냘프다.






각양각색의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듯 좌우로 즐비하게 늘어선 카페들, 어느 외국의 피자가게처럼 예쁘게 펜스를 쳐놓은 곳, 올망졸망 귀여운 화분의 예쁜 꽃들로 사람들의 시선을 유혹하는 곳, 화려한 조명이 자연등처럼 은은하게 곳곳마다 눈을 사로잡는 카페를 보며 말없이 느릿느릿 걸었다. 저벅저벅 낙엽 밟는 소리, 몸에 감기는 바람이 느껴졌다. 기온은 서늘하지만 그녀의 온기가 손을 통해 내 몸에 전해져 나를 통해 햇살이 쏟아지는 듯 태양이 쏘아대는 빛을 눈을 감고 온몸으로 받아냈다. 이런 아릿하고 황홀한 기분은 실로 오래간만이다.

.

특이한 보도블록을 장난치듯 통통 밟고 들어간 카페, 편안한 소파를 찾아 앉았다. 그윽한 커피 향이 콧속으로 흘러 내 몸의 리듬을 색다르게 해 주었다. 진한 커피 향이 우리의 시간을 더욱 충만하게 만들어 주었다.



pixabay






그녀는,

친구 중에 마지막에 남은 사람. 내 몸이 말하는 것을 잘 알아듣는 사람. 나의 눈이 슬픈지 기쁜지 그저 그런지 느끼는 사람, 나의 건강을 걱정하는 사람. 같이 울어주는 사람. 바보 같을 땐 바보 같다고 말해주고 잘했을 땐 칭찬해 주는 사람. 나를 제일 잘 알면서 제일 모르는 사람이다.


우리는 서로 말이 없다. 그냥 마음으로 전한다. 나의 늙어가는 모습과 달리 그녀는 젊어 보이지만 그래도 나와 비슷한 구석이 많다. 그녀는 젊게, 긍정 마인드로 애쓰며 살아간다.


그녀는 나보다 사랑이 많다. 나는 마음이 건조한 편이고 늘 무덤덤해서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좋은 것도 싫은 것도 딱히 없다. 하지만 그녀는 마음이 늘 촉촉하다. 그래서 건들면 바로 눈물이 쏟아진다. 사랑이 많아 마음 상할 때도 많고 계산이 없어 늘 손해를 본다. 그냥 다 퍼준다. 그래서 난 속 터질 때가 많다.


그녀는 아주 어릴 때부터 나를 봐왔고 지금도 지켜보고 있다. 아주 옛날의 나는 그녀를 미워했다. 그래서 가버리라고 했다. 더 이상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했다. 너무 미워서, 바보 같고 미련해서. 거의 매일 싸웠다.


어느 날, 그녀는 나보고 참 강하다고 말해줬다. 대단하다고. 그녀는 '너의 마음을 백번 이해해, 정말 잘 참고 견뎠어. 정말 대단해' 라고 말해주었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그렇다고 자꾸 말해주니까 진짜 내가 그런가? 그런 생각까지 해보기도 했다. 그래서 나도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그녀가 아주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와 나는 공동운명체가 되었다. 내가 주저앉을 때마다 일으켜주고 그녀가 의기소침할 때면 나는 힘내라고 응원해 줬다.




pixabay




어쨌든 오늘은 행복한 하루다. 그녀와 오붓하게 둘이 있기는 드문 일이다. 그녀와 나의 미소가 통했고 그 미소로 묵었던 감정의 찌꺼기가 가시는 듯하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싸울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서로 사랑하는 중이다.


우리는 들리는 음악에 고개를 까딱거리고 흥이 나면 활짝 웃기도 했다. 쪽지를 써보기도 하고 멍하니 밖의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지루해서 못 견딜 때까지 소파 깊이 앉아있다가 어스름 질 무렵 밖으로 나왔다.


하늘에 물든 주홍빛 노을을 그녀와 숨죽여 감상했다. 감성 터지는 풍경에 서로 할 말을 잃었다. 하늘이 우리의 마음까지 곱게 물들여놓았다.


© DalJa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신발을 벗고 바로 보이는 커다란 거울을 들여다봤다. 밖에서 하루 종일 지냈던 탓에 얼굴에 주름이 더 늘어났다. 모자를 벗고 나의 눈동자를 똑바로 봤다. 그리고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 .. .. 후후.. 희미한 진동.

'오늘 즐거웠어. 다음에 또 봐.' 

붉은 입술을 귀 밑까지 끌어올린 거울 속의 그녀가 환하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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