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자 Nov 25. 2024

아픈 너에게

▶죽고 싶다는 말, 쉽게 하지 마

새벽에 이상한 일이 있었어. 

분명히 나는 여기에 있는데 저기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내가 또 있는 거야. 그리고 그 옆에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은 사람들이 나란히 누워있어. 그곳의 내가 누군가를 막 찾고 있는 거야. 늘 같이 있던 친구가 없어졌나 봐. 그 빈자리를 누군가 차지하려고 덤비니까 그곳의 나는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부렸어. 보고 있는 내가 너무 안타까웠지. 그런데 찾는 사람이 누군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나한테도 아주 중요한 사람인 게 마음으로 느껴졌어. 내 마음이 너무 아팠거든.


나는 그 중요한 사람이 정확히 누군지도 모르면서 애타게 찾으려고 안간힘을 써. 그런데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어. 난 갑자기 막연하게 죽음을 생각했지. 이제 그 친구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는 공포가 온몸으로 끼쳐오는 거야. 소름 돋고 무서웠어.


그래, 저곳의 내가, 찾는 친구는 죽은 거였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는 게 막연하게 느껴졌어. 더 이상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고, 만지고 싶어도 만질 수 없어. 슬픔이 온몸을 휘감았어. 그곳의 나는 그 사실을 모르는지 안타깝게 계속 두리번거렸지. 그곳의 나는 친구가 있던 자리에 아무도 못 오게 온몸으로 막아서고 있어. 들고 있던 이불로 막 쳐내면서 말이야.

그런데 그 주변 사람들은 다 잠들었는지 꼼짝도 안 하고 있어. 아무도 안 도와주는 거야. 난 내 목소리가 들리도록 마구 소리를 질렀어. 그곳은 어디였을까? 누워있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이었을까?


내 몸이 말해준 것처럼 그 빈자리의 친구는 분명 나한테 소중한 사람이었을 텐데 정확하게 누군지는 알 수 없었어. 그냥 내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게 마음으로 느껴졌지. 그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생각을 하니까 막 슬퍼지더라.  그 빈자리의 여운이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정처 없이 맴돌았어.



그 순간 어두웠던 새벽 공기가 아침의 서늘한 공기로 바뀌고 흐릿하게 이른 아침노을이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지. 늘 찾아오는 두 마리의 비둘기가 베란다 창틀에 앉아  '구구 구구' 소리를 지르며 날갯짓을 하는 소리가 들렸어.  식은땀이 흐르고 베개 위로 굵은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어. 난 그제야 꿈이란 걸 알았지. 휴우. 안도의 숨을 쉬었어.

하지만 꿈에서 느꼈던 고통스러운 슬픔이 내 몸을 감싸고 있는 듯해서 한참이나 몸을 일으키지 못했어. 눈물을 훔치고 겨우 일어났지. 정말 이상한 꿈이었어!





난 어릴 때부터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 엄마의 잔소리는 내가 아주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걸 느끼게 했거든. 쓸모없는 내가 살아서 뭐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며 성장을 했지. 난 엉덩이가 무거운 탓에 늘 책상에 앉아 망상을 하며 살았던 거야. 죽음에 대한 망상.

가끔 지금도 그런 망상을 해.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을 때, 내가 없어져야 일이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누군가 너무 싫어질 때. 그런 감정이 더이상 생기지 않도록 사라져 버리고 싶은 충동을 많이 느꼈지. 그냥 피하고 싶어서 말이야.


이제는 당신도 힘들었을 그 잔소리들을 난 천 번 만 번 이해해. 엄마를 이해했다기보다 한 인간으로서 엄마를 바라보게 됐어. 엄마는 나를 잘 키워야 한다는 책임 때문에 온 힘을 다해 지키려고 그랬던 거야. 엄마는 사는 동안 나를 분신처럼 생각했어. 엄마는 나에게 자신을 대입했어. 조금이라도 못마땅하면 혹독하게 대했지. 그게 난 너무 싫었고. 엄마의 눈에는 내가 한참 모자랐던 거야. 당신의 삶보다 딸은 더 잘 살기를 바랐던 그 심정을 난 이제야 이해했어.  


엄마에게 그동안 내가 느꼈던 감정을 말하지는 못했어. 엄마를 이해시킬 자신이 없기 때문이야. 엄마 앞에 서면 눈물부터 나오니까. 엄마가 다시 무서운 눈으로 나를 볼 것만 같아서. 지금도 가끔 그때의 나로 돌아가기도 해. 


많이 아프고 약해진 엄마를 보면 그때의 건강했던 엄마가 그리울 때도 있어. 내가 너무 힘들어서 어쩌지 못할 때 엄마는 어떻게 했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해.  지금의 나를 이끌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 참 우습지? 엄마의 가혹한 잔소리가 너무 싫었는데 엄마의 곁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 드니 말이야. 난 엄마를 싫어하면서도 엄마를 많이 의지했나 봐. 지금의 엄마는 나를 가장 보고 싶어 해. 엄마는 가난한 게 너무 싫었고 가게에 멋있게 차려입고 오는 손님처럼 친구들 앞에서 자식들 자랑하면서 살고 싶으셨나 봐. 그런데 자식들은 생각처럼 잘 되지 못했지. 시시한 삶을 벗어나려고 악착같이 살아간 엄마에게 남은 건 병든 몸이야. 그리고 후회스러운 삶이지. 난 그런 엄마에게 매일 같이 문자를 해. '옛날 일은 다 잊어버려. 건강해야 해. 사랑해, 엄마'.. 사랑이 뭔지 잘 모르지만 그렇게 말하면 엄마가 나로 인해 보상받지 못한 아쉬움을 조금은 채울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야. 사랑한다고 계속 말하면 정말 진심으로 사랑하게 될지도 몰라서.


사실은 엄마 때문에 살기도 해. 엄마 때문에 죽고 싶었는데 이제는 엄마 때문에 살아. 굽은 엄마의 조그마한 몸이 너무 안쓰러워서 안아주고 싶고 엄마의 헛헛한 인생을 위로해 주고 싶어서. 

이제는 예전의 엄마가 나에게 했던 말들이 뭐였는지 연기처럼 다 사라졌어.  그때 느꼈던 감정만 어두운 회색빛 재처럼 내 맘에 남아있어. 후~ 하고 불면 내 얼굴로 쏟아지는 것처럼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아. 이상하지? 그 가벼운 재들은 군데군데 내 몸에 붙어있다가 점처럼 번져서 나를 못살게 굴었나 봐. 


나는 왜 몹쓸 생각과 엄마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을까? 엄마는 엄마고 나는 나인데 말이야. 

나는 엄마의 잔소리를 피하려면 죽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거야. 내가 죽음을 너무 가볍게 생각한 탓이지. 난 너무 어렸으니까. 당연히 내가 없어지면 엄마는 더 편해질 거라는 생각도 했어. 차라리 내 삶을 죽음에 미루려 한 거지. 죽는 건 나만의 문제가 아닌데 말이야.


신은 나에게 계시를 주려 했나 봐. 소중한 사람을 잃은 기분이 어떤지 아파보라고 말이야. 늘 함께 있던 사람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너무 무서웠어. 내가 쉽게 말하는 죽음이라는 단어는 절대 쉽게 말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어. 내가 정말 죽는다면, 날 소중히 여긴 사람에게 커다란 아픔을 유산으로 남기는 거야.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유산이지.


꿈을 통해 소중한 사람을 잃은 아픔을 간접적으로 체험한 기분이야. 날 위해 아파할 사람이 적어도 한 명은 있을 텐데 말이야. 이제 그런 악몽은, 그런 아픈 꿈은 더 이상 꾸고 싶지 않아. 아직도 그때 느꼈던 슬픔이 안개처럼 날 감싸고 있는 것 같아.






죽음을 계속 생각하다 보면 나를 그 구렁텅이 속에 깊이 몰아넣으려는 속성이 있어. 그 속성에서 얼른 벗어나야 해. 밑바닥까지 나를 몰아붙이고 나를 밟고 일어서는 내 속의 못된 인격을 더 이상 가만두면 안 돼.


새 날이 밝으면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게 얼마나 귀한 행복인지, 엄마가 그렇게 지키려고 했던 것을 나는 다른 방법으로 잘 지켜나갈 거라고 다짐했어. 너도 혹시 죽음을 한 번이라도 생각하고 있다면 꼭 삶을 선택하길 바라. ♡





*글 속의 모든 이미지 출처는 Pixabay 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그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