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자 Nov 04. 2024

일상 이야기

▶생명들에 귀 기울이다.

버스가 지나갔는지 오지 않는다. 그냥 걸을까? 버스가 많은 곳으로 가려면 15분 정도 걸어야 한다. 그래 걷자.

해 질 녘의 바람은 서늘하지만 한낮의 햇살은 뜨겁다. 가을과 초겨울의 중간 어디쯤에 나는 살아가고 있다.   


길을 따라가면 오른쪽으로 덤불들이 쭈욱 펼쳐져 있다. 그 덤불들을 따라 수도 없이 걸었었다. 그 덤불을 헤집어 놓고 싶을 정도로 엉켜있어서 과연 그 속에는 어떤 생명체가 숨어있을지 궁금해한 적이 있다. 걷는 김에 그 덤불들을 자세히 볼 참이다. 그 덤불 속에는 아주 작은 것들이 있다. 너무 작아서 도대체 살아있는 건가 싶은 게 많았다. 울창한 초록색이던 나뭇잎들이 지푸라기처럼 색깔이 죽어있다. 그 속에서 "내가 아직 살아있다고요!!" 외치는 듯한 아주 작은 꽃송이들, 먼지처럼 바쁘게 이리저리 움직이는 작은 벌레들, 그곳을 지탱하는 야트막한 건물마다 담쟁이덩굴이 덮여있다. 담쟁이 사이사이로 작은 꽃송이들이 얼굴을 내밀고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이 작은 생명체가 모여서 나에게 신선한 공기를 만들어주는구나. 그래, 고맙다. 고마워.

이 작은 꽃송이들은 이렇게 고운 색깔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자연의 색깔이 너무 고혹스러워 황홀할 지경이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이 꽃들을 제발 아무도 짓밟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뭇잎은 아직 가을로 물드는 중이다. 완전한 가을빛이 되기도 전에 곧 다가올 겨울에 몸서리치겠지. 불어오는 바람이 나뭇잎 사이사이로 겨울 준비하라고 알려주는 듯하다. 이제 오늘의 바람을 만나려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추운 바람이 덮치면 너희들도 잘 숨으렴.

 

작은 꽃들 / ©달자





호수의 보석처럼 빛나는 윤슬이 내 마음에 따사로이 내려앉았다. 잔잔한 호수에 내 마음을 바람과 함께 실어 보낸다. "바람아, 손톱만큼 작은 꽃송이들도 살겠다고 피어나는데.. 나도 나를 열심히 사랑하게 해 다오. 소중한 내 몸, 욕심과 미움이 가득한 내 마음. 오늘 그 마음을 싹 버릴 거야. 악마가 밤새 다시 옮겨놓더라도 매일 버리고 또 버릴 거야. 그래서 마음에 사랑과 용서가 가득할 때까지 살아내야지. 누가 이기나 보자." 내 말이 들리는 듯, 나를 따라오라는 듯 천천히 오리가 쉼 없이 흘러간다. 나도 따라 흘러가고 싶다. 그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난 내가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지 정말 절실하게 깨닫기를 원한다. 


오리가 만드는 잔물결 ©달자



하얀 왜가리가 홀로 호숫가에 앉아 먹이가 다가올 때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 왜가리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이 세상이 정지되어 있는 것처럼 나도 꼼짝없이 멈춰 서게 된다. 지나가는 물고기를 낚아채는 그 순간 기다란 목이 춤을 추듯 너울거린다. 한 생명이 죽고 한 생명이 목숨을 부지한다. 이 자연의 섭리를 물끄러미 지켜보며 내 마음속을 다독였다. 

그래. 단순하게 살자. 뭐가 그리 심각해. 그냥 꽃이 피는 데로, 바람이 부는 데로,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놔둬.


왜가리 / ©달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벤치 위의 작은 생명이 나 좀 보라는 듯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예쁘기도 하지.

벤치 위의 작은 잎 / ©달자





내가 챙겨주지 않으면 꼼짝도 하지 않으실 아버님의 주전부리와 빵 몇 가지를 사서 들어갔다. 불도 켜지 않은 채 TV를 응시하고 계신 아버님을 보니 측은함이 밀려왔다. 이럴 때 어떤 말을 건네야 할까? 

90세 아버님은 인생의 의미를 온전히 깨달으셨을까? 그 답은 침묵이라고 얼굴이 말하고 있다.


사랑의 다른 이름은 아픔이라고 했던가? 그 아픔까지도 끌어안을 수 있는 내가 되어야지.

오늘도 곱디고운 작은 생명들에게 한 수 배우고 왔다. "강해져라. 네가 강해져야 모두가 살아."

작가의 이전글 그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