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자 Nov 12. 2024

책 이야기

▶길을 찾는 사람. 그리고 희망.


책표지


여행 중 호텔 장식장에 놓여있는 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얼굴은 동상에 걸리기를 반복하여 빨간 건지 거무스름한 건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그을린 얼굴과 미소에 숨은 주름살, 고뇌가 담겨있는 흰 머리카락, 등산 모자를 쓴 그의 얼굴은 네팔에 사는 사람이라 해도 믿을 만큼 현지인스러운 산 사나이 엄홍길 님이다. 엄홍길 대장이라는 호칭이 더 찰떡같은 그의 산문집이자 평생 산만 바라보고 산 그의 일대기 '오직 희망만을 말하라'이다.

조용한 새벽이라 엄숙한 마음으로 한자씩 곱씹으며 읽어 내려갔다.



엄. 홍. 길.. 이름에 있듯이 '길'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산을 오르며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그의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인생은 험한 산과 같다. 그러나 오르는 사람에 따라 8,000미터보다 높을 수도 낮을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공기처럼 인생의 기회도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한다. 험한 인생의 산에 오르는 더딘 한 걸음이 우리를 꿈의 정상에 좀 더 가까이 데려다준다. 도전, 희망, 용기로 세상은 밝아진다. 그것은 살아남은 자의 숨과 같은 것이다.

- 오직 희망만을 말하라 中 -



히말라야 8,000미터의 산봉우리를 오르내리며 동료의 죽음을 보고 너무 슬퍼서 깊은 심연으로 빠져 우울증을 앓은 적도 있고 산을 정복했다는 자만심에 빠진 적도 있었다고 한다. 절벽을 오르며 발목이 180도로 돌아가 큰 수술도 하였다. 그 험난한 과정을 겪으며 얼마나 치열하게 자신과의 싸움을 했을까? 


고산지대인 네팔 현지인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산을 오르는 외국인들을 도우며 짐을 운반하고 가이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셰르파라고 부른다. 그들은 생명을 잃을 수 있는데도 수익이 괜찮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그 일을 선택한다. 하지만 많은 셰르파가 목숨을 잃고 남은 가족들은 슬픔 속에 살아간다고 하니 얼마나 생이 고달플까? 하지만 그들은 항상 웃는다. 더 이상의 욕심도 부리지 않고 그만큼의 행복을 꾸려나가고 있다. 옆에서 수없이 봐온 셰르파의 죽음을 보면서 엄홍길 대장은 험준한 산을 오르면서 가졌던 희망을 그들과 함께 나누기로 다짐한다.


엄홍길 대장은 8,000미터 고산에 오르며 바람의 냄새를 맡고 비가 언제쯤 그칠지 짐작할 수 있으며 자연의 정령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엄홍길대장님



1프로의 희망이 99프로의 절망을 이겨낸다. 모든 것은 1프로가 해내는 것이다. 길 밖의 길로 향하는 길이 끝나는 곳에 늘 새로운 길이 시작되고 있다.
나는 오직 희망만을 생각했다. 100프로 나의 꿈을 이룰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단 한 번도 안 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미터 16개 봉우리를 오른 단 한 가지 이유는 오직 희망만을 가졌기 때문이다. 절망이 아닌 희망만을 말하라. 산을 닮은 산악인들의 밝고 긍정적인 면을 가져라. 대자연인 산의 기운이 그렇다. 예스와 노를 분명히 말한다. 때로는 단순함이 힘이 될 때가 많다. 세상은 도전하는 자의 것이다. 절망은 희망으로 가는 과정이다. 절망 없이 희망은 없다. 그러나 어렵다. 힘들다. 괴롭다. 안된다는 말은 하지 마라. 된다. 된다. 한다. 한다. 오직 희망만을 말하며 탱크처럼 돌진하라.

- 오직 희망만을 말하라 中 -





엄홍길 대장은 어릴 적 산속에 살면서 왜 산속에 집터를 잡았는지 원망을 많이 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환경이 사람을 변화시켰는지 이제는 산에 있어야 숨을 쉴 수가 있다고 한다. 산악인의 길로 간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심하게 반대하셨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산악인을 자식으로 둔 부모님께는 불효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내 몸뚱이는 나만의 것이라고 생각했고 고산을 오르며 죽음과 살을 에이는 추위와 사투를 벌이는 동안 어머니는 자식과 함께 험한 산에 오르고 함께 추위를 느끼며 시린 마음을 히말라야에 두고 노심초사하셨을 것이고 그림자처럼 등 뒤에서 자식을 쫓으며 24시간 자식의 길을 밝혀주고 계셨음을 늦게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의 품 같은 산을 오르며 기적처럼 자신을 받아준 산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산악인 아버지를 둔 두 아들은 같이 있을 시간이 없어 아내가 두 아들을 데리고 산을 오른다고 하니 참 아이러니하다. 산악인으로서의 인간 엄홍길은 대단하지만 자식으로서,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깨달으며 그 부족함을 다른 곳에 헌신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인생은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 힘이 들어 숨이 차고 아프고 고통스럽기까지 한 것들을 이기고 밟아 가며 오르는 것이다. 그래도 살자. 너무 외로워도, 힘들어도, 자꾸 눈물이 나도, 우울해도 살자. 그 모든 것들을 이겨내고 그것들이 결국 자양분이 되어 아주 아름다운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저절로 떨어질 때까지 살자.
나는 지금 대자연 속에서 나와 사람 속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히말라야 8,000미터를 38번이나 오르고도 그곳을 향하는 나는 산에서 사람과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삶을 보았다.
길을 찾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 자신이 길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나와 함께 길을 가는 사람들의 희망이 되고 싶다. 그렇게 나는 자연으로 남고 싶다.
산은 내가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산이 나를 받아주는 것이다.

- 오직 희망만을 말하라 中 -





아주 오래전 히말라야는 바다였다고 한다. 그런데 지각변동으로 거대한 대륙판들끼리 충돌하여 바다가 솟구쳐 올라 높은 히말라야가 된 것이다. 그래서 바다에만 있는 산호석이 히말라야에 많다고 한다. 아주 깊은 바다가 제일 높은 산이 되었다니 참 신기할 따름이다.


엄홍길 대장은 수중폭파대 U.D.T 해군을 제대했다고 한다.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 오래 잠수하다 보면 때로 높은 산에 올라갔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고요함, 적막함, 물의 압력과 호흡곤란... 그렇듯 산과 바다는 자연이라는 거대함 속에 서로 맞닿아 있다.






이 책을 접하고 막연하게 느꼈던 엄홍길 님의 이력과 그의 철학이 마음에 전해져 깊은 존경심이 우러나왔다. 산이 받아주었기에 오를 수 있었다는 그의 겸손함과 대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지금까지 코끼리와 거북이처럼 느린 걸음으로 살아온 것 같다. 때로는 산에서 눈보라가 몰아쳐 정상을 눈앞에 두고 돌아서 내려오기도 했고, 베이스캠프에서 산악 장비를 하나하나 점검하며 모두의 생명과 연결된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기도 했다.
내게 느림은 평안함과 온화함, 그리고 겸손함을 일깨워 준다. 가만히 서서 내 등 뒤를 돌아보게 해 주고 내가 아닌 남의 눈도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 그 속에서 나는 사랑이 생겨나는 것 같다. 그 대상이 자연이든 동물이든 사람이든 모두 하나같이 가장 높은 곳을 향한 삶을 지향하지만 결국 가장 낮은 곳의 겸손함을 잃어버린 후에는 모든 것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는 것 같다.
앞으로 나의 인생도 느린 걸음으로 한 발짝씩 다시 인생의 에베레스트를 세우며 걸어가야겠다고 다짐한다. 사람들의 마음에 베이스캠프를 친 나의 등정이 반드시 많은 희망 에너지를 전달하는 그날까지 코끼리와 거북이의 장수하는 생을 좀 빌려와서라도 오래오래 희망을 전하고 싶다.

- 오직 희망만을 말하라 中 -





사람과 인연을 중시하는 엄홍길 님의 글을 읽다 보니 마음이 숙연해지고 그동안 욕심에 눈멀었던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졌다.  며칠 후 다시 욕심덩어리로 돌아오겠지만 책을 읽는 동안 가졌던 마음은 잊지 못할 것이다. 내가 산을 오르지는 못하지만 히말라야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에 올라 힘차게 깃발을 흔들었을 엄홍길 님께 아주 잠깐 빙의가 되어보았다.

내가 못다 이룬 꿈을 마치 다 이룬 듯 만세를 외치고 활짝 웃는 나의 모습과 엄홍길 님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왠지 모를 벅차오름을 느꼈다. 살면서 힘들 때마다  이 모습을 상상하면서 살아야겠다.

내가 그토록 원하는 게 뭔지, 행복이 뭔지, 수없이 굴리고 굴렸던 막연한 생각들을 하나씩 뚜렷하게 정리해야 되겠다. 욕심과 정체 모를 분노로 마음이 가득했던 순간들이 참으로 부질없음을 깨달았다.


하늘과 제일 가까운 정상에서 깨달은 것은 무소유와 사랑이다. 온몸으로 느꼈을 대자연 앞에 무엇이 필요하랴. 온통 하얀빛으로 자신을 감싸주었을 웅대한 사랑이 내 마음에도 가득 차는 느낌이다.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 삶이라는 단어를 풀어놓으면 어느 순간 사랑으로 바뀔 때가 있다. 그런 것처럼 베풀 수 있는 용기와 사랑이 철저히 삶의 편에 설 수 있는 우리의 자세라는 것을 마음에 새겨 넣었다.

작가의 이전글 초보 사색가의 인간탐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