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늙어가는 시간
그녀는 정확하게 눈을 뜬다. 어제를 복사하고 오늘에 붙여넣기 하겠지만 식사는 어제와 달라야 한다. 그것이 그녀의 철칙이다.
어제 끓여놓은 노릇한 멸치육수에 조림하고 남은 오징어를 넣고 칼칼하게 국을 끓인다. 무는 투명해질 때까지 미리 끓여놓는다. 호호 불며 살캉하게 씹히는 무맛은 텁텁한 입맛을 부드럽게 적셔준다. 야들야들 하얗게 부푼 오징어는 촘촘하게 칼집을 넣은 사이로 양념이 배어있어 그 맛도 일품이다. 고춧가루 살짝 풀어 칼칼한 국물을 호로록 입 안에 넣는 순간 시원한 맛이 목을 타고 내려가 답답한 속이 확 뚫리는 기분이다. 태양의 열기를 고스란히 받은 매운 고춧가루 탓에 비염에 고생하는 식구는 재채기를 유발하지만 어쩔 수 없다. 잘게 다져진 입 속의 음식들이 재채기 한 방에 전방 얼마까지 분사된다고 조심하라고 하지만 식구니까 그러려니 한다. 그래서 가족이다.
불경기에 삼시세끼 다 챙겨 먹는 그녀의 가족들. 연로한 아버님 빼고 다 백수다. 이런 날이 올 줄이야. 불경기 탓으로 돌리기엔 너무 젊은 청춘들이 집에서 베짱이처럼 여유 부리며 지내고 있다. 옛날의 그녀라면 속이 타서 어디라도 이력서를 디밀고 악착을 떨 텐데. 그녀의 자식들에게 개미 같은 유전자는 아무리 찾아봐도 찾아볼 수 없다.
배운 건 많은 데 써먹을 데가 없으니 자원낭비, 인재낭비다. 젊은 이는 놀고 늙은 이는 열심히 일한다.
늙은 이들은 늙었다는 이유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있고 젊은 이들은 기왕 취직할 바엔 괜찮은 데 가고 싶다는 열망이 있다. 월급 잘 나오고 칼퇴근이 중요한 데 그런 곳은 하늘의 별따기다. 젊은 혈기를 어디에 써야 할까? 열정과 의지로 성실하게 일했던 옛날과 다르게 아무리 열정이 있어도 열정을 받아줄 곳이 없으면 아까운 혈기가 쓸데없는 곳에 뿌려질 뿐이다. 청춘의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간다.
어쨌든 논다고 굶길 수는 없으니 삼식이들을 위해 그녀는 일용할 양식을 무엇으로 할지 머리를 하루종일 가동한다. 식단을 짜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 어제 먹었던 건 제외하더라도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이용해야 하니 약간의 제한이 있다. 냉장고에는 무언가 가득 차있건만 막상 만들려고 하면 해먹을 거리가 없다. 희한한 일이다. 옷장에 빽빽하게 걸린 옷들이 수두룩 한데 입을 옷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다고 매일 장을 볼 수는 없으니 어찌어찌해서 한 끼 때우면 금세 다음 끼니를 준비할 시간이 온다. 밥 먹는 게 뭐 그리 중요하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아파본 사람은 안다. 먹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사실을.
영양제 백날 먹어봐야 소용없으니 건강한 재료로 맛있게 집밥을 해 먹으라는 의사의 말을 허투루 흘려버릴 수는 없는 나이가 되었다. 젊은 사람은 모를, 늙고 아파본 사람만이 깨닫는 진리 중의 진리다.
몸도 오래 쓰다 보면 닳기 마련이고 마음도 너무 혹사시키면 무기력해진다. 육신도 적당히 써먹고 정신도 오늘 일은 훌훌 털어버려야 건강한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 오늘 배운 것은 내일 꼭 찾아서 실천해 보고 오늘 배운 좋은 말도 내일 말해보는 습관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상대를 이해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일이 건강한 노후의 지름길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버님의 손이 떨리는 증상은?. 이렇게 오래 살 줄 몰랐다는 아버님은 아마 당신의 몸을 아낌없이 마음대로 부려먹은 걸 후회하실지도 모르겠다. 진작 아끼며 살걸. 하나뿐인 몸인데. 후회해 봐야 소용없지만 그래도 안타깝다. 이 좋은 세상에.
그녀는 친정에서 가져온 엄마의 환한 미소가 담긴 사진을 본 후 그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주름하나 없이 매끈했던 예쁜 엄마, 언제 그렇게 늙어서 꼬부랑 할머니가 되셨을까? 설거지 담당이었던 그녀에게 물기하나 또르르 있다고 마구 잔소리를 퍼붓던 엄마, 한참 장꾸력 발동한 남동생에게 나가라고 소리치던 엄마, 아빠와 싸우고 한 달간 입에 지퍼 채우고 밥도 안 해줬던 엄마, 연탄가스 마시고 한동안 생사를 오갔던 엄마, 악착같이 장사하며 돈을 모았던 그녀의 엄마. 어릴 땐 그런 엄마가 제일 밉더니 이제는 그런 엄마가 제일 보고 싶다. 잔소리하며 온몸으로 그녀를 혼내는 건강했던 엄마가 이제는 한 걸음 떼기도 벅찬 나이가 되었다. 그녀가 엄마를 한 인간으로 본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엄마는 엄마일 뿐 그녀에게는 그저 미운 사람이었다.
그녀의 엄마는 "좋은 일 없니?" 이 말이 입에 붙었다. 좋은 일? 나에게 좋은 일은 자식들이 잘 되는 것이고 그녀의 엄마에게 좋은 일은 그녀가 잘 되는 것이다.
해맑게 웃고 있는 옛날 사진의 엄마처럼 그녀는 다시 환하게 웃을 엄마를 더는 못 볼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녀의 엄마는 아프고 살아갈 날이 걱정스럽다. 늙은 몸과 정신을 자신이 통제할 수 없을 때, 그것조차 알지 못한 채 숨만 쉬는 그날이 올까 초조하다. 누워서 죽음만 기다리는 시간은 자신에게도 자식에게도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그런 시간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오래 살기보다 건강하게 죽기 위해 억지로 운동을 한다.
그녀도 마찬가지다. 몸 아까운지 모르고 막 부려먹었다. 이러다 죽을지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하지만 운명은 그녀에게 더 살라고, 다른 사람도 살리면서 오래오래 살라고 아버님까지 그녀에게 보내주셨다. 식구들 허기를 채우려면 억지로 몸을 일으켜야 하는 강제성을 부여해 주셨다. 감사하게도.
삶은 맘먹기 달렸다. 자신이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거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불행한 거다. 그녀에게 오는 불행을 무덤덤한 그녀의 성격이 아무것도 아닌 척, 모르는 척하며 세월에 맡겨두었다. 그랬더니 그녀도 모르는 사이 멀쩡하게 살아 지금까지 밥 짓는 여자로 살아가고 있다.
그녀는 늙은 시아버님과 친정 엄마를 보며 미래의 자신을 그려본다. 당신들은 젊은 날 고생한 시간들을 떠올리며 회한에 젖고 틀어진 인간관계로 절망하며 살아간다. 그 소용없는 기억들을 이토록 아까운 시간에 재생하며 소비한다. 그녀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분노의 시간, 미운 사람이 영영 그녀의 마음속에서 사라지기를 간절히 원하고 원한다.
그래서 쓴다. 잊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예 영구 삭제하려고 쓰면서 새기고 마음을 비운다.
그리고 읽는다. 책 속의 또 다른 자신을 만나고 부둥켜안고 울다가 깔깔거리고 훌훌 털어낸다. 그럴 수 있어서 그녀는 행복하다.
무심결에 찾아오는 과거의 영상과 미래의 걱정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리고 가족들의 상태가 어제나 오늘이나 새로운 변화가 없어도 별 탈 없이 건강하게 하루하루 지나가면 그걸로 됐다고 위로한다.
그녀가 늙어가는 시간은 홀로 서는 시간, 철드는 시간, 그리움의 시간, 기다리는 시간이다. 그리고 징하게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밥 짓는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