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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자 Nov 19. 2024

그녀

▶ 버스를 타고

그녀는 버스를 타고 흔들흔들 작은 여행을 좋아한다. 그녀가 가끔씩 하는 시내버스 트립. 그녀는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버스를 타고 끝까지 가보는 취향이 있다. 도로변에 살았던 그녀는 버스가 아주 친숙하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버스정류장은 그녀가 서러울 때마다 찾아가는 작고 소중한 공간이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하얀 눈을 그대로 맞으며 그녀의 서러운 마음을 다 토해내고 한참 멍하니 앉아있다 집에 돌아가곤 했다. 어른이 돼서는 그럴 일이 없겠거니 했는데 더 많이 찾아 가게 되었다. 그녀는 가끔 버스가 어디론가 멀리 데려가 줬으면 하고 바랬던 적도 있다. 그렇게 버스정류장은 어린 소녀의 마음을 달래주곤 했다.




일 년에 한두 번 있을 혼자만의 시간. 집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에 대충 옷을 차려입고 버스를 기다린다. 시골이나 마찬가지인 동네는 한참 기다려야 버스가 온다. 온몸을 들썩들썩 고르지 않은 길을 달리는 버스 안, 그래도 그녀는 버스 안에서 느끼는 봄의 따사로움, 여름의 냉기, 가을의 적당한 온도, 겨울의 온기가 좋다. 

그녀의 눈동자는 창밖의 현실이 아니라 창 너머 어딘가 닿을 수 없는 먼 곳을 아련하게 바라본다. 


pixabay



그녀는 자유를 늘 꿈꿔왔다. 어릴 때는 집에서 탈출하고 싶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결혼이라는 울타리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탈출하고 싶은 이유는 모두 사람 탓이지만 무작정 자신의 몸만 나오면 될 수 없는 이유가 뻔하게 있었다.

그녀에게 안락을 보장해 줄 결혼은 허상에 불과했고 어디에도 그녀의 편은 없었다. 결혼이 결국은 구속이 되고 감옥이 되었을 때 그녀는 자유를 찾아 몸부림치는 날이 많아졌다. 그녀에게 높다랗게 처진 벽은 올라갈수록 그녀를 처참하게 내리꽂으며 온몸에 상처를 안겨주었다. 그 번뇌를 탈출하기 위해 끝을 기다리며 살았다. 어느 날은 차라리 고독이 좋았고 어느 날은 고독이 사무치게 외로워 변덕스러운 마음의 술렁임으로 그녀의 삶은 성난 파도와 같았다. 고여있지 않은 시간 탓에 마음이 다 뭉개질 때까지 참고 참으며 지금까지 살다 보니 이제는 그런 마음이 있었는지조차 모두 잊어버렸다.


그녀가 그토록 바라는 완전한 자유는 어떤 상태를 말하는 걸까? 

그녀가 자유를 원한다는 것은 현실이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 현실의 벽을 넘기에 불충분한 그녀가 체념하게 된 것은 그녀를 낳아준 부모와 그녀가 세상에 내보낸 아이 때문이다. 그녀의 엄마가 몸소 보여준 무거운 책임감을 그녀의 몸이 그대로 물려받아 하늘이 무너져도 가정을 지켜야 하는 규칙을 깨부술 수 없었다. 또 다른 현실적인 이유는 그녀의 가난이다.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 마음을 누르고 지금까지 살아왔더니 인내의 대가로 아주 조금씩 자유가 찾아오기도 한다. 그 자유가 그녀 앞으로 딱 떨어졌을 때 막상 자유로운 몸을 어떻게 처신할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줄에 매달려 살던 강아지가 막상 줄이 풀어졌을 때 오도 가도 못하는 것처럼 한동안 그녀도 그 한계를 넘지 못했다.


그녀는 그때 더 치열하게 살지 않은 자신을 후회할 때가 있다. 좀 더 악착같이 덤벼서 세상 끝까지 가볼 걸 하는 후회. 한 세상 치열함 끝에 찾아오는 희열을 맛보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울 때가 많다. 늘 부족했던 의지의 잔재가 지금도 여전히 그녀의 몸속에 남아있다. 커다란 벽에 부딪혔을 때 악착같이 올라가 그 벽을 뛰어넘었더라면 지금쯤 더 멋있게 살지 않았을까라는 막연한 아쉬움이 가슴 한켠에 있다. 다 부질없는 생각이다.


pixabay


지금의 그녀는 자유로움에 좀 더 가까워졌을까? 

그녀가 원하는 자유에는 인간과의 적당한 거리가 있다. 타인의 생각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거리. 그 거리가 있어야 숨을 쉴 수가 있다. 그녀가 그토록 힘들고 아팠던 이유는 타인의 생각까지 관장하려는 인간들의 속박이었다. 


그녀가 자신을 혹독하게 내몰아 몸을 조였던 사슬은 이제  닳고 닳아 다 떨어졌다. 그녀는 이제 육신의 자유가 아니라 정신적 자유를 누려야 한다. 좁아터진 머릿속에 빽빽하게 들어선 인간들의 형상과 생각의 고리를 정리해야 한다.   





버스의 종착역 끝에는 낯선 동네가 기다리고 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주택, 온기가 있는 조그만 상점들, 길거리를 지나가는 이름 모를 얼굴들을 마주 보며 작은 떨림을 느낀다. 그 떨림은 처음이라는 것과 적응하려는 심리가 작용한다. 

눈에 보이는 것은 평온한 인간의 삶이지만 그 속에 들어가면 치열하게 사는 삶이 숨어있다. 그녀는 자신보다 높은 곳을 보며 마음의 불안을 느끼고 그녀의 것이 아닌 것을 탐낼 때가 많다. 자신이 가진 것이 없을수록 생기는 탐욕이 그녀를 힘들게 한다.


그녀는 근처를 돌아다니며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가끔 언젠가 와봤던 것 같은 데자뷔가 느껴져 신기할 때도 있어 그 기억을 잡아보려고 정신을 집중해 봐도 정확히 끄집어낼 수는 없다. 어느 한 지점 가만히 서서 그녀가 서 있었을 곳에 멈춰 잊힌 그날의 느낌을 꺼내본다. 그녀를 감싸고도는 서늘한 바람, 이 바람에 실려가도 좋을, 실려가고 싶은 그날의 느낌.


아마 어릴 때 살았던 장소일지도 모르고 친구와 밤새 놀다가 버스가 끊겨 헤매고 다녔을 장소였는지도 모르고 수없이 이사 다녔던 그녀의 발자국이 여기저기 흔적을 남겼는지도 모른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버스정류장에 다다랐다. 시간이 언제 이렇게 흘러갔을까? 오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버스 타려고 숨차게 뛰어오는 소리,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의 눈동자, 그녀와 상관없는 그네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갈까?


그녀가 이렇게 살아있는 것은 운명이다. 그녀의 곁에 머무는 사람들도 운명이고 전에 일어났던 일도 앞으로 일어날 일들도 모두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순리대로 돌아간다. 수없이 겪은 절망과 희망이 그렇다고 말해준다. 현실은 정확하다. 그녀가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더 절실하게 살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은 이렇게 되려고 그렇게 아팠는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찾는 자유로움에서 이루고 싶은 꿈은 뭐였을까? 꿈의 실체를 제대로 세우지도 않고 무작정 자유만 쫓아다닌 지금 버스 안에서 따사로운 햇살에 녹아 작디작은 소박한 자유를 누리다 시간을 정해놓은 인형처럼 자신이 가야 할 곳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 평범한 소박함 속에 한낱 인간인 그녀의 마음속에는 푸른 하늘만큼 원대한 희망을 꿈꾸며 천천히 벽 안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 dal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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