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아봤거나, 자아성찰의 차원에서 스스로에게 물어봤던 경험을 가져본 사람이 더러 있을 수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잘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는데, 취업시즌에 이력서를 쓸 때 빼놓지 않고 나오는 단골 항목에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입니까?’가 있어서 시간을 들여 본 적 있다. 면접에 가서는 한 번도 그것과 관련된 질문을 받아본 적 없어 도대체 무엇을 묻고 싶어서 존재하는 항목인지는 아직까지 의문이지만 쓸 때마다 다른 질문 못지않게 고민하게 되고 매번 다르게 적어보며 모험을 하는 항목이기도 했다.
과거와 현재, 국내ㆍ외를 아우르는 엄청난 위인들이 역사 속에 존재하고,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그들과 관련된 일화들이 떠오르는 게 나뿐만이 아닐 텐데 솔직히 한 명을 선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또 주변에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역사 속 인물과는 별개로 아버지를 존경하는 인물로 적는 친구들도 꽤 많았다. 아버지를 적지 않는다고 해서 존경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닐 테지만 어떤 거대한 이유가 있는 건지 당사자에게 더욱 깊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는 아쉽게도 없었다. 사람마다 와닿는 의미와 그 의미를 스토리로 풀어내는 데에 있어서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런데 존경하는 인물에 대한 고민을 할 때마다 사실 나의 내면의 대답은 하나였다. 이력서에는 길게 쓸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한 명을 택할 수밖에 없었지만 내가 존경하는 인물의 특징에 대해 정확이 설명하자면, 인생의 어느 한순간의 영감으로 자신의 운명자체를 바꿔버린 국적과 시대를 막론한 모든 지구인들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 TV에서 어느 날 뉴스를 보다가 빙하가 녹아 극지방 동물들이 고통받는 장면을 보고 머리가 땡! 해지는 경험을 하고 나서 그날 이후부터 환경운동에 뛰어들어 흔들림 없이 자신의 활동을 지켜가고 있는 사람.
- 어린 시절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름 모를 가수의 노래 하나를 듣고, 음악에 심취하여 엄청난 예술가적 기질로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
- 학창 시절에 공부와는 담을 쌓고 있다가 좋아하는 여학생이 공부 잘하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미친 듯이 공부해서 학업으로 엄청난 성취를 이룬 사람.
기타 등등.
평범한 사람들은 일시적인 자극으로 마무리되어 버릴 그런 깨달음의 순간을 인생을 바꿀정도의 추진력으로 변환하여 거침없는 레이스를 통한 성과로 승화시키는 모든 사람들. 존경스럽고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미생에 불과한 질투심 많은 생명인지라 때로는 그런 비범인(非凡人)들이 범인(凡人)만큼이나 주위에 많다는 걸 느끼며 나 자신을 자책할 때가 있다.
자기 합리화. 자기반성. 다시 자기 합리화. 다시 자기반성. 지겹도록 반복되는 일련의 쳇바퀴는 불필요한 시간낭비 인가? 아니면 그렇게라도 하고자 하는 굳은 의지의 산물인가. MBTI 중 사고형의 T 성향이라면 불필요한 시간낭비라고 치부하며 좀 더 강력한 정신력을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고, 공감능력이 좋은 F 성향이라면 일단 뭐라도 하는 게 좋은 거 아니냐며 진심(眞心)인지 가심(假心)인지 구분 안 가는 응원의 멘트라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않고, 중요한 것은 ‘중꺾마’라는 것을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삼일도 채 안되어 흐지부지 해진다는 당신과 나! 삼일이나 했다며 억지로 오버하며 자신을 칭찬할 필요는 없지만 아직 꺾이지 않았고, 앞으로도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신념 하나만은 진심으로 밀고 나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