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시간, 자주 듣는 노래 중에 Still Fighting It 이란 곡이 있다. 드라마 ‘이태원클라쓰’ OST로도 유명한 곡인데 들으면서 복받칠 때가 많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하는 형식의 노래인데, 어린 아들에게 아빠는 다정하게 말하고 있지만 끊임없이 싸워나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이 인생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가사의 끝에는 자기를 너무도 닮은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한다.
아직까지 초보 아빠인 나에게 무너지는 감정을 몇 번이고 느끼게 해주는 노래이다.
이 노래는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와 너무도 일치한다. 끊임없이 싸우면서 나아가야 한다는 게 인생이라는 아주 옹졸하고 비좁은 생각. 너그럽지 못한 이 생각에 피곤한 존재가 나뿐이었으면 하는데 내 아이들에게까지 고스란히 인생의 고단함을 주입시키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 깊은 고민에 빠진다.
처음 아이들이 태어났을 땐 누구라도 그러하겠지만 온 세상에 그 아이만 보인다. 오직 하나뿐인 유일하고 소중한 내 아이에게 아름답고 희망적인 인생을 선물하리라. 부모로서 그 의무를 다할 것이며 왠지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충만함으로 아이를 보살핀다. 그러나 정확히 어느 시점이라고 기록해두지는 않았지만 아이가 개인으로써 지구의 구성원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부터 내 인생관을 나도 모르게 투영시키고 있는 것 같은 죄책감 아닌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주름 없는 인생을 선물하리라 마음먹었지만... 어느새 결국 삶이란, 치열함의 연속이고 너도 곧 그 삶을 온몸으로 받아낼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충고. 행동들. 훈육들.
아들에게 너무 가혹한 정신력을 강요하는 건 아닌지, 분명 내가 살아온 시대와 다르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인생 또한 다를 텐데 너무 과거론적인 인생관을 전이시키는 것은 아닌지. 혼란스럽게 고민에 빠지는 날이 있다.
더 나아가 내 그런 의도를 아는지 모르는지, 고개를 끄덕이거나 뭔가를 되뇌는 듯한 아들의 반응에 나는 다시 한번 가슴이 저리다.
몇 번이고 긍정적이고 밝은 시야를 갖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게 마음처럼 잘 안 된다. 대를 물려온 유전적인 영향과 지금까지 겪어온 환경적인 요인들로 단단히 무장된 이 인생을 대하는 태도는 변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런 이유로 나와 상당히 다른 시야를 가진 내 아내는 가끔 핀잔을 준다. 왜 그렇게 자신을 몰아세우고 스트레스받으면서 살아가냐고. 그래서 때때로 그 스트레스를 남한테까지 전파시키냐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쯤 되니 아내도 이해하는 눈치다.
억지로 명랑한척하고, 알아서 잘 될 거라는 습관적이고 무책임한 주문을 입에 달고 사는 것보다 예민하고 모난 것처럼 보이는 이 녀석을 평생 데리고 살 거란 것을 이제 알게 된 것 같다.
대단히 거대한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나는 이 태도를 가지고 계속 걸어 나가야 하기 때문에 나름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보았다.
이 녀석은 나 자신을 좀 더 깊게 관찰하고, 되돌아보게 해주는 거울 같은 역할을 자처한다. 그래서 나에게 좀 더 솔직할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을 가지고 착각하는 법이 없으며, 때론 포기해야 하는 것까지 정확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온전히 내 선택의 몫이 된다.
비록 비관론적인 인생관이 내면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해서 피도 눈물도 없고, 의욕까지 없는 패배자와 같은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나는 누구보다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있고, 내 삶을 가라앉히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 치고 있으며, 고단하고 힘에 부침을 느끼는 순간을 무엇인가 나아져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며 나만 느낄 수 있는 조그마한 미소를 항상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것만큼은 내 아이도 닮기를 바라는 모습 중에 하나이다.
오늘도, 나는! 그리고 우리 모두는! 하루를 살아감과 동시에, 긴 인생 중 하루를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