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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도사린 나르시시스트

뮤지컬 <데스노트> 후기

내가 데스노트를 처음 접한 건 고등학생 때, 만화로였다. 당시 동네에는 만화책 대여점들이 하나쯤 있었고, 나는 각종 소설과 만화책으로 긴 야자시간을 채우던 학생이었다.

판타지 소설과 소년 만화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청소년이 20년 후 온라인에 상사 욕을 연재하는, 현실에 찌든 직장인이 될 줄은 미처 몰랐더랬다.


바쁜 일상에 치여 문화실조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었으나 올해부터는 문화생활을 좀 해보고자 뮤지컬을 보기 시작했다. 뮤지컬은 작고 소중한 내 월급에는 퍽 부담스러운 지출이나 그래도 노래와 춤, 연기를 모두 볼 수 있는 종합예술이라 한번 보고 나면 만족감이 크다.


<데스노트>는 머글인 나도 알만큼 유명한 작품에 이름난 캐스팅인지라 예매를 하게 되었다. 물론 매크로와 플미업자가 판 치는 피켓팅 속에서 머글이 좋은 좌석을 예매하기란 불가능했고, 무한 클릭과 취소표 줍기에 도전하여 겨우 2층 6열 중블을 구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극장이 샤롯데씨어터인지라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았고, 데스노트는 무대 벽, 천장, 바닥까지 모두 LED 화면으로 구성되어 대부분 장면이 영상으로 연출되었기에 2층에서 무대 전체를 바라보는 시야도 나쁘지 않았다.


한때 만화 데스노트를 참 열심히 보았기에 등장인물과 스토리의 상당수가 아직 기억에 남아 있었는데, 나의 기억 속 주인공 야가미 라이토는 천재지만 상당히 중2병스러운 인물이었다. 범죄자를 죽이는 것이 정의라고 믿는, 악인을 다 죽이면 세상이 바뀔 것이라 생각하는 순진함을 가진 인물이고, 자신만의 정의를 이루기 위해 행하던 심판이 L로 대표되는 세상의 정의에 부딪히며 주객이 전도되어 결국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악으로 전락하고 끝내 비참한 최후를 맞는 캐릭터로 기억하고 있었다.

오늘의 캐스팅

그러나 다시 만난 데스노트 속 야가미 라이토는 보면 볼수록 ’어라? 저거 완전 나르시스트네?‘하는 생각이 들 만큼 자기애성 성격장애에 상당히 부합하는 면모를 보여주었다.

마침 요즘 나르시시스트 상사에 대해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지라 데스노트를 보며 느낀 점 중 관련된 내용만 서술하고자 한다.




1. 자신의 중요성에 대해 지나치게 과장된 자신감이 있다. 


라이토는 원래도 전국 1등을 할 정도로 뛰어난 머리로, 자신의 능력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있었지만 데스노트를 사용하여 키라가 된 뒤로는 자신을 ‘신’이라 말할 정도로 자신의 존재를 대단하게 여긴다. 범죄자를 심판하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신이 되겠다는 발상 자체가 데스노트 하나만으로 꿈꾸기에는 지나친 자기 맹신이며, 사회의 합의나 법의 판단보다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과도한 우월감이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대단함에 대해 인정받지 못하고, L에게 질 수 있다고 느끼는 순간 급발진하며 상대를 적대시하고 공격적인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행동을 비난하는 L의 말을 들었을 때, 그의 말에 대해 고민해 보거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 없이 즉각 반응하여 L의 대역을 죽인다.

FBI가 자신을 쫓을 때에도 단순히 잡힐 것에 대한 우려였다면 노트를 없애거나 다른 방법을 강구할 수도 있었을 텐데, 라이토는 L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FBI도 모두 없애버린다.


2. 끝없는 성공, 권력, 탁월성, 아름다움, 이상적인 사랑에 대한 공상에 빠진다.


신이 되어 세상을 바꾼다는 발상은 전국 1등의 높은 지능으로 하기에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고 망상에 가까운 발상이다. 제아무리 데스노트가 있어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능력만으로 전지전능한 신이 될 수는 없다. 마음대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건 그냥 살인마일 뿐이다. 그러나 라이토는 데스노트와 자신의 비상한 머리가 합쳐지면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신이 될 거라고 확신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꿈을 꾼다.


3. 과도한 찬사를 바란다.


라이토는 키라라는 정체를 드러낼 수 없기에 공개적으로 자기 자랑을 하거나 인정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온라인 등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찬양하는 것을 무척 기꺼워한다. 아마 드러낼 수 있었다면 사이비 교주 못지않게 자신을 숭배하는 것을 독려하고 세력을 확장하려 했을 것이다.


4. 대인관계가 착취적이다.


라이토는 목적을 위해 사람을 이용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자신에게 지극히 헌신적인 아마네 미사를 보면서도 이용할 궁리를 하느라 여념이 없고, 이용가치가 떨어진 후에 버리는 데에도 가차 없다.

자신을 사랑하고 도와주는 것에 대해서 고마운 마음이나 버리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드는 게 인간의 당연한 마음을 터인데, 라이토에게는 온통 미사를 이용할 마음뿐이다.


5.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자신을 사랑하는 미사의 마음도, 미사를 아끼는 렘의 마음도 라이토에게는 하등 의미가 없다. 자신 때문에 힘들어하는 가족들의 마음도 라이토에게는 그다지 고려대상이 아니다. 미사나 렘은 그렇다 쳐도 사이가 나쁘지 않은 가족들에 대해서도 라이토는 그들의 감정을 살피고 배려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에게 중요한 건 자신의 감정과 욕구뿐이다.



L도 높은 자기애와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 공감능력의 결여, 목적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점 등 상당히 라이토와 비슷한 면모가 많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L은 라이토처럼 타인의 인정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L은 사건의 해결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지만 라이토처럼 자신을 과시하고 찬양을 받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라이토가 정말 정의라는 목적만으로 움직였다면 L처럼 정체를 최대한 감춘 채 좀 더 은밀한 방식으로 움직였을 것이다. 그러나 라이토는 세상에 자신에 존재를 드러내고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애쓴다.

라이토의 진짜 목적은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의로운 세상의 신이 되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들은 때로 매우 매력적이며 유능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잘못된 우월감과 타인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 위험한 사고방식이 가득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나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존재들이다.


어릴 적엔 라이토의 사고에도 어느 정도 공감 가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르시시스트에게 시달리고 나서 보니 라이토는 상종 못할 악인이었다. 오늘부터 라이토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캐릭터다.

기분 전환을 하러 간 곳에서 뜻밖의 나르시시스트를 만나다니… 정말 나르시시스트들은 다양한 얼굴로 우리 주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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