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전-나의 은혜에 감사하라
D에게는 자신의 노고는 하해와 같이 대단하게 여기고, 타인의 노고는 모래알처럼 하찮게 여기는 습성이 있다.
D는 매사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힘든 일인지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자신의 일에 비하면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은 다 별 거 아닌 일이라 깎아내린다.
나르시시스트들의 만족감은 홀로는 채워지지 못한다. 타인의 인정을 받아야 하고, 타인과의 격차에서 만족감을 얻기 때문에 자기 자랑과 타인 비하를 숨 쉬듯 해댄다.
얼핏 보기에는 지나친 자기애만큼 높은 자존감을 가진 것 같지만 실상은 타인에게 의존해야만 유지할 수 있고, 작은 비난에도 허무하게 무너지는 빈약한 자존감 뿐이다.
D는 적은 돈이라도 타인을 위해 쓸 때는 반드시 그 사실을 모두에게 떠벌린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격언 같은 건 D의 삶에서는 없는 일이다. D는 왼발 새끼발톱이 한 일도 전 세계가 알만큼 자랑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직원들에게 간식을 살 때면, 단돈 몇 만 원어치 떡볶이를 사면서도 자신이 낸다는 것을 수십 번 이야기하고 감사나 박수를 바란다. 그리고 이전에 냈던 것도 모두 소환해서 다시 상기시키며 구체적인 액수까지 거론하고,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인품을 갖고 있는지 자랑한다. 그것도 모자라 마지막에는 내가 이렇게 베풀었으니 다음에는 너희들이 돌아가면서 쏠 것을 요구한다.
조용히 베풀면 당연하게 들 고마움을 꾹꾹 짓밟고 뿌리까지 말려버린다.
우리 회사는 일 년에 두 번 명절 상여금으로 20여만 원을 주는 것 외에는 수당이나 성과급이 거의 없다. 연봉도 코로나 사태 이후 쭉 동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는 박봉에도 열심히 일 해주는 직원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기보다는, 실현되지 않은 거창한 미래를 약속하며 미리 생색을 낸다. 참 어리석은 일이다.
적은 월급과 성격장애 상사에도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는 건 이 일에 사명감을 갖고 있고 보람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라는 건 나의 수고에 대한 인정뿐이다.
그 쉬운 일이, 내가 아닌 타인의 능력과 노력에 대해 인정하고 칭찬하는 일이 나르시시스트들에게는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보다. D는 그 쉬운 걸 못해서 우직하게 헌신하는 직원들을 매번 떠나가게 한다.
리더로서 D의 역량을 평가한다면 바닥을 찍다 못해 마이너스라 할 수 있겠다.
모름지기 리더라 함은 아랫사람들의 공로를 적절히 치하하고 격려하여 계속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해야할텐데 우습게도 D는 번번히 자신 밑의 직원들과 성과를 다툰다. 성과급이 있는 것도 아니고 승진을 위한 것도 아닌데, 왜 홀로 무의미한 경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D는 고령인지라 컴퓨터를 활용하는 일에 능숙하지 않음에도 회사 홈페이지 운영이나 홍보 PPT 작성도 모두 자신의 공이라고 말한다. 본인이 슈퍼비전을 제공했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실제로 홈페이지를 꾸미고 PPT를 만든 담당자의 고생은, 별 거 아니라고 말한다.
모든 일의 성과는 자신의 공이고, 잘못된 일은 다른 사람들의 탓으로 돌리는 게 나르시시스트들의 특성이다.
또한 D는 남들이 내는 돈은 자신이 받아 마땅한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면서, 자기가 내는 돈은 적은 돈도 크게 감사받기를 바란다.
남들이 돈을 낼 땐 ‘당연히 내야지‘라고 말하며, 액수가 성에 안 차면 더 내라고도 요구하면서 자신이 내는 돈은 십원 한 장도 그렇게 귀할 수가 없다.
지난 금요일 D는 별다른 명분 없이 갑자기 일부 직원들에게 상여금을 20만 원씩 주었다. 몇 년째 동결된 연봉에 대한 보상이었지만 D는 연봉에 불만을 표하지 않은 직원들에 대한 감사 표현 대신 자신이 이 상여금을 주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으며, 그동안에도 자신이 회사를 위해 쓴 돈이 많음을 생색내고, 어디에도 이런 대표는 없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상여금을 받은 직원들에게, 받지 못한 다른 직원들을 위해 간식이라도 쏘라고 했다. 줬다 뺏는 것도 아니고, 생색은 본인이 다 내고 왜 우리에게 또 쏘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생각지 않게 생긴 돈이니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월요일 아침, 첫 직원회의부터 D는 본색을 드러냈다. 요지는, 상여금을 받고도 자신에게 특별한 감사의 뜻을 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받은 날 받은 그 자리에서 감사를 말한 걸로는 조금도 D의 성에 차지 않았다.
굳이 따로 찾아오라는 게 아니라 눈이 마주쳤을 때라도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게 예의라는 주장이었는데, 금요일 오후에 받고 월요일 아침까지 눈을 마주칠 시간조차 없었으니 그냥 자신이 베푼 것에 대해 성에 찰 만큼의 찬사를 받지 못한 울분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주말 내 중간관리자들에게 별 중요하지도 않은 용건으로 전화를 걸었다는데, 아무래도 그게 감사를 기대하며 보낸 신호였나 보다. 굳이 귀한 주말에 전화까지 걸어 신호를 보냈음에도 원하는 응답을 받지 못한 D는 폭발했다.
솔직히 만족할 만큼 감사를 못 들어 서운하다는 말 대신 인간의 도리를 운운하고, 기혼의 여직원들에게는 너희가 이 정도 인성으로 시부모에게는 어떻게 대접하고 사는지 모르겠다며 도를 넘는 폭언을 퍼부었다.
어려운 회사 사정에도 20만 원이나마 챙겨준 것에 대해 조금은 고마웠던 마음이 ‘꼴랑 20만 원 받고서 내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하는 반발심으로 바뀌었다.
나르시시스트들의 충족되지 않는 욕구는 악순환을 부른다. D가 하도 먼저 잘난 척을 하고 생색을 내니 주변 사람들은 정도 이상의 감사나 찬사를 보내지 않는다. 받으면서도 또 얼마나 생색 내려고 저러나 싶은 마음이 먼저 드니 절로 고마움이 사그라드는 것이다.
그러면 D는 자신의 생각만큼 돌아오지 않는 반응에 격노하고 먼저 자화자찬을 늘어놓는다. 그 결과 주변 사람들은 남아있던 약간의 마음마저 깨끗하게 날아가버린다.
D는 항상 인생을 어떻게 살고, 어떻게 늙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반면교사가 된다.
호의를 베풀 땐 대가에 대한 기대 없이 기꺼이 베풀고, 인정을 받고 싶다면 고생에 대한 자랑 없이 묵묵히 역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오늘도 D를 보며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