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내가 여기를 왜 왔다고?
"너 정신과 입원할래?"
입원을 하겠냐는 엄마의 질문 하나가 나에겐 커다란 돌덩이가 되어 내 마음의 호수에 물결을 일으켰다. 나는 고개를 내젓지 못하고 내 손에 들린 닭강정 봉지만 만지작 거릴 뿐, 그 어떠한 답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내 상태가 정상이라곤 생각하지 않았을지언정, 입원을 해야 할 정도라곤 생각하지 못했기에.
아마 그때부터였다. 엄마와 내가, 아빠와 내가, 나와 내가 다투기 시작한 게.
나는 틈만 나면 내 몸에 칼을 대기 바빴고, 스스로를 까내려가며 살아갈 이유를 배제하고 죽어야 할 이유를 찾기에 급급했다. 그 이유의 결론은 늘 나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고, 간혹 가다 드는 삶에 대한 얄팍한 기대감은 이미 갈기갈기 찢어져 비에 푹 젖어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엄마와 참 많이 다투고 태어나 처음으로 소리치며 싸웠더란다. 그러나 싸움의 승자는 없었다. 그 싸움의 종점엔 늘 눈물만이 맺혀 있었기에.
그럴 때면 나는 늘 입원에 대해 다시금 생각했으나, 결론은 늘 '아니요'였다. 멀리 찾아간 대학병원에서도 입원을 권했지만, 그 의사는 얼굴을 보기도 전에 입원이란 단어를 꺼내고 홀연히 사라졌기에 신뢰라곤 쌓을 수 없었다.
때문에 내 대답은 늘 '아니요'였다.
약물치료
약물을 쓰며 경과를 지켜보겠단 의사의 말을 끝으로 나는 진료실을 나왔다. 곧이어 엄마가 들어갔고, 약들이 적힌 진단서를 받아 약국으로 향했다. 약사도, 의사도, 간호사도 나에게 친절하고 퍽 다정히 굴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나에게도 다정하지 못했다. 약물치료를 하는 나 스스로를 '정신병자'라고 몰아가며 내던졌고, 병원에 다니는 나를 '미친년'취급하며 등한시 여겼더란다. 그러나 나를 이렇게 여긴 건 나 하나뿐이었다.
결론적으로 처음의 나는 약물에 적응하지 못했다. 약에 못 이겨 잠을 잤고,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했다. 맞는 약을 찾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렸기에, 과거의 미지수는 약에 살고 약에 죽는 아이였다. (이에 대한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있는데 그 에피소드들은 다음에 보여드릴 특별 편에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미지수는 약물 부적응자였다. 약물에 적응하지 못한 게 아니라 '약을 먹는 나 자신'에게 적응하지 못한 사람. 그게 바로 열셋, 열넷의 미지수였다.
현재
과거의 미지수를 닫아놓고 잠깐 현재의 미지수를 꺼내오자면, 현재의 미지수는 꽤나 잘 적응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정신과 약을 먹는다고 정신병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정신과에 다닌다고 미친년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때의 미지수는 너무 아프고 너무 여려서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의 미지수는 다르다. 나는 그저 아팠을 뿐이고, 아프고 있을 뿐이다. 정신과에 다니면 '환자'는 될 수 있을지언정, '병신'이라거나 '미친년'이라거나 '정신병자'가 될 수는 없다.
누구나 크고 작은 아픔이 있다. 나 역시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아픔을 견뎌내는 중이기에. 그렇기에 오늘의 미지수는 오늘의 약을 삼킨다. 이제는 눈물이 묻지 않은 엄마의 눈가를 마주하며.
그럼 '엄마, 내가 거기를 왜 가?'편은 3편에서 마치도록 하겠다. 다음엔 특별 편으로 찾아뵙길 소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