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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샵레터 Jun 29. 2023

깊이 듣기, 그리고 단단해지기

40호 VIEW



                                       글 ∙ 김경화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 전임연구원





명상시대

© Unsplash

여러분은 마음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시나요?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유명 가수가 싱잉볼을 들고나와 그 울림과 함께 명상으로 빠져드는 장면이 대중에게 노출된 적이 있습니다. 또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장이 약해 배앓이를 한다는 출연자의 배 위에 싱잉볼을 올려놓고 소리 진동이 치유 효과가 있어 장을 편안하게 할 거라며 신기해하는 장면도 전파를 탔고요. 그런가 하면 어느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는 무대를 앞두고 긴장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싱잉볼 명상을 시도하는 출연자도 등장했습니다. 이렇게 유명 스타들이 출연하는 예능프로그램에서 명상 행위와 도구들이 자주 노출되면서 명상, 힐링 취미는 대중의 일상으로 빠르게 퍼져갑니다.


언제부턴가 명상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마음챙김’ (mindfulness), ‘힐링’, ‘치유’ 등의 키워드를 내건 명상 콘텐츠들은 인터넷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고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상에서 쉽게 명상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다양한 명상 애플리케이션 수요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명상, 수면, 멘탈 관리는 이제 현대인의 건강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며 하나의 소비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마음챙김 혁명


명상이라는 키워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순전히 제 일상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매일 같이 처리해야 할 업무를 붙들고 늦은 밤까지 책상 앞에 앉아 있기를 반복하다 보니 언제부턴가 수면 장애와 피로에 시달리게 되었어요. 내일을 위해, 뭐라도 좀 들으며 잠을 청해보자는 생각으로 유튜브를 이리저리 검색하다 보니 ‘최상의 숙면을 경험하세요’, ‘오래 잔 듯 충전돼요’, ‘10분 안에 잠드는 수면 명상’ 등과 같은 매혹적인 제목의 콘텐츠들이 눈에 띄더군요. 수면 단계별 뇌파에 동조화하는 수면 사운드, 주파수 듣기, 백색소음, 명상음악, 힐링 음악, 앰비언트, ASMR… 닥치는 대로 들어봤습니다. 그래서 잠은 좀 잤냐고요? 음… 글쎄요, 마음만은 한결 편해졌습니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 우리는 저마다의 방법을 찾습니다. 명상은 그중 하나의 실천 방법일 수 있고요. 아시다시피 명상은 원래 종교적 수행의 한 형태였습니다. 기독교의 묵상기도, 불교의 마음챙김, 인도 힌두교의 요가 명상 등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종교적 의미와는 별개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실천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 TIME (Peter Hapak)


2014년 미국의 주간지 『타임』에서 “마음챙김 혁명”(The Mindful Revolution)이라는 주제로 표지 기사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현대인들의 건강과 행복의 비결로 마음챙김 명상이 떠오르고 있으며 대중의 집착적 관심의 한가운데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실리콘밸리의 기업가, 포춘 500이 선정한 기업의 대표들, 펜타곤의 수장들도 사용하는 명상법으로 소개되며 주의가 산만해진 시대, 매일 계속되는 업무로 멈추고 재충전할 시간이 부족해 항불안제에 의존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누적된 스트레스에 대처할 획기적인 방법으로 그 효용성을 제시했습니다. 요점은 ‘마음챙김’이 21세기의 생존과 성공을 위한 필수적 기술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성과주의, 피로사회, 소진된 인간

불교의 종교적 명상에서 유래한 마음챙김은 잠시 멈추고 그대로의 나를 돌아보는 것, 나의 감정과 생각을 알아차리고 지금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에 주의를 기울여 보는 것을 말합니다. 미국에서는 초등학교에서 주기적으로 마음챙김을 가르친다고 하니 이미 생활화되었다 볼 수 있겠지요. 그러나 요즘의 명상은 본래의 의미가 다소 희석된 채 변용되는 것 같아 보입니다. 때로는 상업주의와 결탁하여 먹거리 다이어트 수준의 힐링에 집착하거나 명상적 실천보다는 오히려 자신에게 지나치게 몰두하여 개인주의적 자아를 강화하고 확장시키는 경향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들립니다. 일상에서 손쉽게 소비되는 명상은 역설적이게도 하루하루를 버티기 위해 약을 털어 넣듯, 내일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또 다른 인스턴트식의 수단으로 전락한 건 아닌지 모릅니다.

© getty


명상이 일상의 주요 화두로 부상하게 된 현상의 이면에는 성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지친 자아가 자리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무한 경쟁 속에서 자신을 돌아볼 겨를 없이, 끊임없이 성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넣는 현대인들의 병든 마음을 비추는 것은 아닐까 싶어요. 철학자 한병철은 21세기 사회를 ‘피로사회’라고 진단합니다. 자신의 능력과 성과를 통해 주체로서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날마다 자신을 입증하도록 요구되는 성과사회에서는 자발적 자기 착취가 일어난다는 것인데요. 누군가의 통제와 규율이 아닌 스스로가 설정한 목표를 뛰어넘어 또 다른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자신을 착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피로와 탈진에 이르게 되고, 스스로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좌절감은 우울증을 낳는 사회적 병리 현상이 만연하게 된다는 진단이었습니다. 성과사회, 피로사회의 인간은 ‘할 수 있다’는 무한 긍정성으로 스스로가 완전히 망가질 때까지 자신을 자발적으로 착취하고, 결국 다 타서 꺼져버린 소진된 인간1)만이 남게 된다는 경고 섞인 분석이 묵직하게 들립니다. 우리 사회의 단면을 비추는 것 같았습니다. 저 자신도 그 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느꼈고요. 그러니 이 사회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는 쉼 없이 정진하며 마음의 불안과 불면을 떨쳐낼 방도를 찾아야 하겠지요. 명상은 이 시대의 지친 영혼을 회복하는 힘이 될 수 있을까요?


1) 들뢰즈는 베케트의 텔레비전 단편극에 관한 에세이에 ‘소진된 인간’이란 제목을 달았습니다.





명상이란 무엇인가

© iStock


‘명상’, ‘마음챙김’의 본연의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명상은 멈추고 들여다보는 행위입니다. 자기 자신을 살펴볼 기회를 갖는 것이지요. 그 순간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이나 감정, 자극이나 감각에 휩쓸리거나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조금 떨어져 관찰하고, 알아차리는 것(awareness), 내면에 주의를 기울여 보는(attention)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잡념, 불안, 긴장, 염려, 분노, 고통, 충동, 유혹 같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자극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그대로 두고 관조하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절제와 자기 수용을 훈련하고 마음을 돌보는 훈련입니다. 그렇다고 외부 세계를 차단한 채 자기 안에 깊이 매몰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겠지요. 어쩌면 세계와 건강하게 연결되기 위해 내면을 단단히 하는 훈련일 수 있습니다. 그 훈련을 통해 마음의 평화와 치유의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이 지친 영혼을 어루만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리 명상


© Unsplash

명상에 치유의 힘이 있다면 소리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일 겁니다. 수많은 명상 앱이 소리를 동반하는 것처럼요. 미국의 작곡가 폴린 올리베로스(Pauline Oliveros)는 소리 명상(sonic meditation)을 처음 시도하고 대중의 실천으로 연결한 바 있습니다. 올리베로스가 제안한 소리 명상법은 ‘깊이 듣는 것’(deep listening)인데요. 내 몸과 마음에서 오는 소리에 귀 기울여 알아차리는 것, 나를 둘러싼 세상의 소리에 귀를 열어 적극적으로 들어보는 것을 말합니다. 명상의 초점을 소리로 이동하여 소리를 통해 나를 들여다보는 수행을 시도한 셈이지요. 오롯이 소리에 집중하여 소리가 들려주는 여정을 따라가며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 사사로운 생각과 자극에 사로잡히지 않고 환경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받아들여 내가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 무엇보다 소리가 주는 치유의 힘, 회복의 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명상이 마음의 힘을 길러내는 것이라면, 듣기는요? 올리베로스가 제안한 소리 명상은 소리의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며 변화와 치유를 맛보는 청각의 힘을 길러내는 것 아닐까요?









40호_VIEW 2023.06.29.
글 ∙ 김경화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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