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여느 연인들처럼 카페에 많이 간다. 연인이 시간을 보내기에 카페만큼 적당한 곳은 없다. 커피 두 잔 혹은 커피 두 잔에 디저트 하나를 두고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앉아 있을 수 있다. 여러 번의 데이트를 거치며 카페를 정하는 기준이 생겼는데 먼저 자리가 편해야 한다. 요즘 감성 카페들은 정말 말 그대로 '감성'에 집중해 자리가 불편한 경우가 있다. 딱딱한 의자에 낮은 책상. 그런 곳은 사진은 잘 나올지 몰라도 오래 앉아 있기에는 역부족이다. 수혁이의 사진 실력을 일찍이 파악한 나는 사진보다는 같이 보내는 순간에 집중하기로 했기에 배경은 딱히 중요하지 않다. 두 번째는 카페가 크면 클수록 좋다. 우리는 카페에 한번 가면 진득하게 앉아 있다가 나오는 타입이라 너무 협소한 카페는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 답답하게 느껴진다. 탁 트인 곳에서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시 정적이 찾아와도 다른 이들의 소음에 묻혀 그 정적이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마주 보고 앉는 것이 아닌 서로 붙어 앉아 있을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이게 제일 중요하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대화를 나누기에는 붙어 앉는 것보다 마주 보고 앉는 게 더 편하다는 걸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니다. 그냥…. 그러고 싶다. 붙어 있고 싶다.
이런저런 조건을 다 따지다 보면 결국 우리는 예쁘고 아기자기한 감성 카페보다는 넓고 쾌적한 프렌차이즈 카페를 더 많이 찾게 된다. 그곳에는 우리가 원하는 편하고 푹신한 좌석과 넓은 공간과 붙어있을 수 있는 자리가 모두 마련되어 있다. 무엇보다 오랜 시간 앉아 있어도 눈치가 보이지 않는다. 감성 카페의 '감성'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모르겠으나 그 뜻이 사전에서 정의하는 '자극이나 자극의 변화를 느끼는 성질'이라면 나는 프렌차이즈 카페에서도 감성 카페를 즐길 수 있다. 수혁이와 함께 있으면 그 어떤 때보다 자극의 변화를 크게 느끼기 때문이다.
수혁이와 카페에 앉아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나눈다. 개인적인 에피소드부터 앞으로의 미래, 종교, 정치 이야기까지 아주 작은 이야기부터 큰 이야기까지 나눈다. 나의 말을 경청하는 상대 앞에서는 무슨 이야기든 떠들고 싶어지는 게 사람인가 보다. 오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는 자주 웃고 자주 운다. 아무래도 자극의 변화가 너무 잘 느껴지는 탓일 테다. 그렇게 울고 웃다 보면 '우리 사이에는 오해가 있다'에 나오는 남궁인 작가님의 한 문장이 떠오른다. "두려움과 두려움을 이길 힘을 동시에 주는 당신." 연인을 이처럼 탁월하게 표현한 문장이 있을까. 수혁이는 나에게 두려움과 두려움을 이길 힘을 동시에 주는 존재다. 두려움을 줬다가 다시 뺏기도 하니 결국 0에 수렴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건 플러스마이너스와는 조금 다른 개념인데 누군가를 내 삶의 일부로 만들어버린 것에 대한 두려움과, 그 두려움을 뛰어넘어 함께할 때 오는 안온함과 용기가 세상 모든 두려움을 다 물리치게 만든다.
나의 일부라고 느끼기에 자꾸 붙어있고 싶은걸까. 아니면 우리는 언제나 누군가와 붙어있기를 바라지만 합법적으로 붙어 있을 수 있는 존재가 연인밖에 없기에 함께 있을 때 최대한 붙어 있으려 하는 걸까. 손을 잡고, 몸을 부대끼고, 두 팔 벌려 서로를 꽉 안고, 입을 맞추고.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을 세상에서 단 한 사람과만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유일하기에 두렵고 유일하기에 더 특별하다. 만나는 모든 사람과 붙어 있을 수 있다면 세상에는 연인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컷 떠들고서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다.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 자리로 돌아가는 그 순간을 좋아한다. 저 멀리서부터 수혁이의 뒷모습이 보인다. 잠시 멈춰 서서 그 뒷모습을 보기로 한다. 평소에는 잘 보지 못하는 뒤통수와 등과 어깨를 보고 있자면 사랑과 연민과 기쁨과 두려움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리고 이내 옆에 앉는다. 그럼 수혁이는 나에게 다시 두려움을 이길 힘을 준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힘과 두려움을 주고받았을까. 서로가 아니라면 울지 않았어도 되는 순간과 서로가 아니라면 웃지 못했을 순간이 얼마나 많을까. 헤아릴 수 없는 너의 두려움을 헤아려 본다. 다시 수혁이와 카페에 앉아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는 날에 그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