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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어 May 13. 2024

만약 우리 사는 동안 슬픔이 없다면

스쳐가는 80년이 의미가 있을까

  거실에서 들려오는 흥겨운 뽕짝 소리에 잠에서 깬다. 어제는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었고 오늘은 블랙핑크의 '뚜두뚜두'이다. 거실로 나가면 엄마가 두 팔을 쭉쭉 벌리며 에어로빅을 하고 있다. 표정은 프로 그 자체인데 두 팔과 다리가 그 표정을 따라주지 않는다. 엄마는 나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여전히 텔레비전 화면에 집중한 채로 나를 맞이 한다. "어~ 예진이 깼어? 엄마 운동 중~ 아침 알아서 차려 먹어라~" 나는 세수를 하고 엄마 옆에 멀뚱멀뚱 서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엄마의 팔다리를 구경한다. 옆으로 갔다가 위로 갔다가 하는 팔. 접었다가 폈다가 하는 팔. 도통 스텝을 따라가지 못하는 다리. 팔다리가 어디에 있든 언제나 진지한 표정. 이 삼박자가 어우러진 엄마의 에어로빅은 정말이지… 웃기다. 웃겨서 눈을 땔 수가 없다. 음악 소리가 나를 잠에서 깨게 했다면 이 광경은 정신마저 깨게 만든다. 여기서 더 경이로운 점은 엄마는 내가 옆에서 구경하던, 웃고 있던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나의 비웃음 따위는 엄마를 멈출 수 없다. 마치 이 세상에 에어로빅 강사님과 엄마 둘뿐인 것처럼 느껴진다.


  엄마의 에어로빅을 뒤로 하고 출근한다. 주말에는 내가 오픈이라 제일 먼저 출근해서 가게의 문을 열고, 불을 켜야 한다. 우리 매장은 창문이 없기에 불을 켜지 않으면 밤이든 낮이든 매우 깜깜해서 서둘러 불을 켠다. 그런데 오늘은 다르다. 얼마 전부터 함께 일하게 된 아직 잘 모르는 친구가 나보다 먼저 와서 문을 열고, 불을 켜 놓은 것이다. 반갑고도 미안한 마음에 매장에 들어가자마자 잘 모르는 친구에게 인사를 한다. "먼저 왔네!! 매장 불 켜져 있으니까 너무 좋다...ㅎㅎ" 매장에 혼자 있으면 괜히 사람을 기다리게 되는데 그 마음을 알기에 더 크고 반갑게 인사 한다. 잘 모르는 친구와 나는 출근 카드를 찍고, 오늘의 예약을 확인한 뒤 청소기를 돌린다. 청소기를 돌리고는 오늘 듣고 싶은 플레이리스트를 찾아서 튼다. 이 매장에서 우리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 중에 하나인 플레이리스트 고르기는 오늘의 기분과, 함께 일하는 사람의 취향을 반영해서 고른다. 잔잔한 음악을 좋아하는 세복이와 일할 때는 재즈나 지브리 OST를 자주 틀고, 나와 취향이 비슷한 듯 다른 하라무와 일할 때는 인디음악 또는 힙합을 틀고, 크고 예쁜 눈을 가진 해리 언니와 일할 때는 케이팝을 자주 튼다. 각자의 모습만큼이나 다양한 음악 취향은 알면 알수록 꼭 자기와 닮아있다.


  그렇게 잘 모르는 친구와 카운터를 지키고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알다가도 모르겠는 친구가 출근한다. 이 친구와는 함께 일한지 가장 오래된 친구인데 함께 일한 만큼 잘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끔 모르겠는 친구이다. 알다가도 모르겠는 친구는 꽤 힘든 일주일을 보냈다고 말한다. 나는 그저 묵묵히 듣는다. 그리고 나 또한 힘든 일주일을 보냈다고 말한다. 슬픈 사람 앞에서는 내 슬픔도 내보일 수 있다. 유독 지치고 힘든 일주일이었다고. 그런데 뭐 어쩌겠냐고.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겠지~하는 뻔한 소리를 하며 서로의 슬픔을 흘려보낸다. 두 개의 슬픔은 이것도 두 개라고 조금 덜 외롭게 느껴진다. 1인분의 슬픔은 또 다른 1인분의 슬픔을 위로할 수 있는 이상한 힘을 갖고 있다. 가끔은 뻔뻔할 정도로 사람에게 영향을 받지 않는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친구가 사람 때문에 힘들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역시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잘 모르는 친구와 알다가도 모르겠는 친구와 나란히 앉아 플레이리스트를 고른다. 플레이리스트 속 노래가 생각보다 너무 좋아서 우리는 기분이 조금 상기된다.


  알다가도 모르겠는 친구가 노래 가사를 찾아서 보여준다. '만약 우리 사는 동안 슬픔이 없다면 스쳐가는 80년이 의미가 있을까....' 나는 가사를 보지 못하고 가사 밑의 광고 문장에 시선을 뺏긴다. "정육점…. 할인? 이게 뭐야?" 내 말을 들은 두 친구는 너털웃음을 짓는다. 그게 아니라고 다시 잘 보라고 말하는 알다가도 모르겠는 친구의 표정은 아까보단 조금 덜 슬퍼 보인다. 그럼 나도 덜 슬퍼진다. 슬픔은 같이 울게 하고 같이 웃게 하는 힘이 있다. 우리는 슬픔을 느낄 새도 없이 노래를 듣고 손님을 맞이하고 일을 한다. 아직 너무 어린 우리는 작은 슬픔에도 쉽게 넘어지고 작은 장난에도 쉽게 웃게 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의 에어로빅이 자꾸 떠오른다. 처음에는 그저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래 보고 있으면 나름의 절도와 규칙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일정한 간격으로 치켜드는 팔, 오른쪽 왼쪽으로 왔다 갔다 하는 다리, 여전히 정직하고 웃긴 그 표정. 빨리 내일 아침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는 동안 슬픔이 없다면 스쳐 가는 80년도 의미가 없을뿐더러 엄마의 에어로빅도 이토록 웃기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 모습을 오래오래 보고 있을 일도 없을 것이다. 쉽게 포기하지 않고 멈추지 않는 엄마의 에어로빅에서 슬픔의 의미를 본다. 아직 잘 모르는 친구와 알다가도 모르겠는 친구와 나. 이렇게 셋이 나란히 서서 에어로빅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럼 조금 살고 싶어진다. 너무 웃기기 때문이다. 맞이하고 기다리며 스쳐 가는 80년 중 의미 있는 하루가 지나간다.



#찰리빈웍스 #우리사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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