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를 시작한 후로는 매일 아침 계란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계란후라이, 토마토 계란 볶음, 간장계란밥…. 자취생에게 계란만큼 건강한 동시에 싼 음식은 없다. 만들 수 있는 요리의 종류도 얼마나 다양한지 질리지 않고 매일 먹을 수 있다. 나와 승의 아침 풍경은 보통 이러하다. 냉장고에 얼려둔 식빵을 꺼내서 에어프라이어에 돌린다. 식빵이 바싹하게 익는 동안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계란 하나를 톡-하고 깬다. 흐물흐물한 날계란이 적당히 맛있게 익은 프라이가 되는 동안 식빵을 꺼내서 위에 치즈를 올린다. 치즈는 반드시 바로 올려야 한다. 그래야 따끈한 식빵 위에서 스르륵 녹는다. 그 위에 계란후라이를 올리면 간단한 토스트 완성이다. 토스트를 책상 겸 식탁에 올려두고 빠르게 냉동고에서 블루베리를 꺼내 플라스틱 그릇에 붙는다. 그리고 초대형 콘푸로스트 봉지를 열어 한주먹 담는다. 얼마나 크냐면 마치 작은 쌀 포대를 보는 듯하다. 봉지째 붓지 않고 직접 손으로 담는 이유도 그 봉지가 너무너무 커서이다. 살면서 그렇게 큰 콘푸로스트 봉지를 본 적이 없다. 그 봉지를 열 때마다 상상 이상으로 거대해서 헛웃음을 짓게 된다. 시리얼과 블루베리가 적정한 배율로 들어있는 그릇 위로 요거트를 부으면 두 번째 메뉴까지 모두 완성이다.
나와 승은 책상에 마주 앉아 각자 아이패드를 켠다. 승은 연애의 발견을 보고 나는 대탈출 혹은 멜로가 체질을 보며 아침을 먹는다. 땅콩잼과 딸기잼 모두 토스트에 발라먹는 호사를 누린다. 나와 승은 하루 중 그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그리고 매번 아쉬워한다. 아침에 먹는 토스트와 요거트는 매번 맛있고, 맛있고 좋은 시간은 매번 너무 빨리 끝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우리의 홈 스윗 홈에 작고 귀엽지 않은 벌레가 베란다에서 떼로 발견 되어 집이 발칵 뒤집힌 사건이 있었다. 너무 작아서 잘 안 보이는데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면 베란다 환풍기 위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이다. 덕분에 생전 처음으로 나와 승은 크고 징그러운 벌레가 한 마리 있는 게 나은지 작고 눈에 잘 띄지 않는 벌레가 여러 마리 있는 게 나은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냥 둘 다 별로라는 결론이 지어졌지만, 승은 바퀴벌레보다는 낫다며 일단은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야 이 집에서 계속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집과의 계약은 2년이고 서울 한 복판에서 우리가 편하게 먹고 잘 수 있는 곳은 이곳뿐이기에 벌레 따위에 이 집을 포기할 수는 없다. 나와 승은 슬퍼지기보다는 강해지기로 한다. 베란다를 싹 청소하고 온 집을 뒤집어 쓸고 닦는다. 두 손에 쓰레기 봉지를 하나씩 들고 계단을 내려가며 이 와중에 둘이어서 얼마나 다행이냐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혼자였다면 엄두도 못 냈을 대청소를 우리는 벌레는 발견하자마자 몇 시간 만에 다 끝내버렸다. 올해 중 가장 부지런한 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합은 가히 10년은 맞춰온 청소 파트너 같았다. 우리는 매일 아침 베란다의 벌레를 향해 살충제를 뿌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여전히 아침에는 계란 토스트를 먹으며 학교를 가고 알바를 가고 학원을 간다. 집에 벌레가 생겼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다. 벌레는 잠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지만 날마다 불행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벌레에만 신경을 쏟기에는 우린 너무 바쁘다. 공부도 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며 꿈도 찾아야 하고 사랑도 해야 하며 우정도 지켜야 한다.
벌레를 보면 언제나 꺄앜~ 하고 놀라는 공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그런 공주와는 점점 멀어지는 나를 직감한다. 자취하는 동안 나와 승은 점점 더 강해져 버릴 것이다. 원하지 않아도 그렇게 될 것이다. 승이 더 이상 소리 지르지 않고 모기를 잡는 모습을 상상한다. 만약 그런 미래가 도래한다면 조금은 슬프고 많이 웃길 것 같다. 모기 정도에만 담담해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더 징글징글한 벌레를 보고도 담담한 사람이 된다면…. 그 정도로 강한 나는 아직 상상이 안 된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라는 유명한 찬양이 있다. 교회에 한 번도 가지 않은 사람도 멜로디를 들으면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도 교만도 아니 하네. 사랑을 조금 바꿔 사람은 언제나 오래참고 라고 말하고 싶다. 행복도 사랑도 오래 참은 사람에게만 오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긴긴밤을 지나야 아침이 오고 그래야 계란 토스트를 먹을 수 있고 그러고 나면 또 긴긴 하루를 보내고. 벌레를 참고 크고 작은 실망을 참고 가난한 젊음을 참고 가난해 보이고 싶지 않은 미운 마음을 참고.
승과 빨래를 널며 지금보다 조금 더 어른이 되면 꼭 벌레가 나오지 않는 집에서 살자고 다짐한다.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로 좋은 미래이다. 그 미래에서도 우리는 아침을 계란으로 시작할지 궁금하다. 적당히 튀겨진 계란 후라이는 어떤 아침이든 맛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