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특히 저음 성악가)이 부르는 <G. 말러 뤼케르트 가곡>은 당연하게도 여성이 노래하는 감성과 완연히 다르며 보다 깊고 육중한 슬픔이 가슴 시린 울림을 준다. 이는 남성성에 기인한 진하게 응축된 감성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홀의 공간적 울림을 통해 장중하게 울리는 저음의 음성은 말러의 자의식을 통렬히 꿰뚫는 동질감을 경험하게 한다. 이는 남성의 목소리가 선사하는 독보적 묘미일 것이다.
사무엘 윤의 노래는 덤덤하면서도 격한 감정의 회오리를 담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심플하고 담백한 오케스트라 반주가 그의 목소리와 오묘하게 조합을 이루지 않았나 싶다. 어쩌면 오늘의 연주는 우리가 이 가곡을 통해 다다를 수 있는 이상적 세계에 잠시 동안이나마 근접할 수 있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사실, 많은 이가 오늘 <뤼케르트 가곡> 연주에 대한 깊은 아쉬움을 토로하긴 했지만 후반부 교향곡 때문에 필연적이었을 리허설 부족과 사무엘 윤과 오케스트라 사이의 밸런스 문제가 나로선 그리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한 남성적 감성이 더 크게 와닿았던 것 같다. 마지막 곡 '나는 세상에서 잊어지고'는 기대만큼 가슴을 적시진 못했지만 담담했기에 뜨겁게 다가온 아픔이 내 마음을 더욱 세차게 흔들었던 게 아닐까 한다.
G. Mahler Symphony No.7
G. 말러 교향곡 7번
<말러 교향곡 7번>은 가장 실연으로 만나기 어려운 말러 작품 중 하나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구조적으로 까다롭고 난해하며 복합적 악상을 지닌 교향곡이고 연주자는 물론, 감상자에게도 대단히 부담스럽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성 악단들도 무대에 올리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잘해야 본전 찾기도 힘든' 것이 그 이유인 것이다. 그토록 난감한 곡을 패기 넘치는 젊은 음악인들이 모여 이 무모한 시도를 감행하려 한다. 이는 분명 '양날의 검'이고 일부 수석 주자를 제외하면 이 작품을 연주한 경험이 전무한 음악인들이 저돌적인 객기로 이 무대를 준비한 것이다.
올해로 일곱 번째인 '말러리안 시리즈'를 맞아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교향곡 7번>을 올린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뿐이었다. 그야말로 우려 반, 기대 반 심정인 건 모든 이들에게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난 우려보다는 기대가 훨씬 컸다. 그동안 "말러리안 시리즈"를 지켜보면서 이 작품이 가장 큰 고비이자 최대치의 성장을 이룰 기회라는 강한 확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번 교향곡을 준비하면서 좌절감보다는 자신감을 가질 것이란 분명한 이유를 이미 지난 말러리안 시리즈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똑똑히 증명해 왔음을 상기해 보면 당연한 예상이 아닐 텐가.
진솔 지휘자가 무대에 들어서 포디엄 위에 서니 이제야 눈앞에 '말러리안의 말러'가 현실이 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잠시 숨을 고르고 1악장 도입부가 시작되자 나의 모든 걱정과 우려는 기우였다는 것을 또렷이 직감하게 된다. 정작 그들에겐 어떤 두려움도 없었는데 나만 괜한 걱정을 했나 하는 허탈함도 있었다. 이것은 대단히 기분 좋은 자괴감이었다. 자신감 충만한 현의 힘찬 보잉과 금관의 포효는 내가 이전에 이미 알고 있던 진솔과 말러리안 오케스트라의 꽉 찬 충만함에 미소가 번졌다. 게다가 1악장은 시작부터 끝까지 오늘 가장 훌륭한 앙상블을 보여준 순간이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호흡과 적확한 비팅으로 가슴 충만한 감동을 선사했다. 이런 시작이라면 그야말로 괜한 걱정이었다는 게 이미 증명된 탓이다.
전반적으로 대단히 진취적이고 강려크(!)하며 흥미로운 흐름을 보여준 해석이었다. 때론 디테일하게 달리다가 간혹 무자비한 진군(특히 3악장)을 시전 하기도 했다. 세부의 음색을 그토록 집요하게 강조하면서 일부 성부들은 신나게 뭉개고 지나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신선했고 젊은 연주자다웠다. 꼭 긍정적으로 봐서가 아니라 그들만의 거침없는 가치관과 바라보는 시각의 사실적인 표출이었기 때문이다. 2악장 '밤의 노래 I'은 1악장과 대비되는 느린 템포로 완서악장의 진정한 묘미를 보여줬는가 하면 3악장 '스케르초'는 다시 시작된 열혈 말러리안의 성향을 가감 없이 발휘한 순간이었다. 4악장 '밤의 노래 II'는 만돌린과 기타의 조화를 내세우며 '밤의 세레나데'가 주는 사랑스러움을 부각한 해석이었다. 5악장 '론도-피날레'는 뜨거웠다. 약 70분 여의 시간 동안 큰 고비 없이 일관된 수준의 앙상블과 탁월한 감각이 빛나는 안정적 해석으로 기대했던 것 이상의 연주력을 과시한 그들의 탁월한 능력과 노고에 진심 어린 경의를 표하고 싶다. 이 극악의 난곡을 연주하면서 테크닉적인 면이나 음정적, 음향적인 측면에서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는 크거나 사소한 실수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는 불가항력의 현상이라 생각하고 싶다. 가히 한여름 폭염을 방불케 했던 오늘의 미친 태양볕을 그대로 닮았던 말러리안의 연주는 기대를 내려놨던 나를 뼈저리게 반성하게 했고 역대 가장 어린 연령의 단원들과 이토록 난해한 교향곡을 연주해 여러모로 우려가 많았었다던 진솔 지휘자의 고백이 무색할 만큼 나는 오늘의 연주에 진심을 다해 극찬을 보내고 싶다. 그들의 최선을 다한 이번 연주회는 역대 "말러리안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큰 감동을 안겨줬다는 점에서 그들에게 격한 박수갈채를 보낸다.
"말러리안 시리즈 8"에서는 어느 교향곡을 올릴지 문의해 보니 '지금은 아무것도 정해진 바 없으며, 생각할 단계도 아니'라는 말러리안 관계자의 답변이 지닌 의미를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노심초사 공연을 준비해 온 말러리안의 모든 관계자에게 깊은 위로와 경의를 보낸다. 더불어 시종일관 안정적이고 감각적인 연주력을 선보여 인상 깊었던 오보에 수석과 1악장 도입부터 탁월한 테크닉을 보여준 테너호른 연주자, 특별히 5악장에서 감동적인 열연을 들려준 호른 및 트럼펫, 트롬본 수석 등 모든 금관 주자들, 잉글리시 호른, 그리고 통렬한 타격으로 화끈한 통쾌함을 안겨준 팀파니 수석 등의 모든 말러리안 단원들에게, 무엇보다 지치지 않는 열정의 화신으로 가냘픈 몸에서 신들린 지휘를 펼쳐낸 진솔 지휘자의 노고에 온 마음을 다하여 뜨거운 감사와 지지를 전한다. 그들의 발걸음이 여기서 멈춰지지 않고 끝까지 이어지기를,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 간절한 기대를 모두 담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