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백수 일기
비록 육체는 나도 놀랄 육십을 바라보게 되었고, 약해진 기억력 때문에 정신마저 예전같지 않다.
이제 여유 자금도 떨어졌고 내년부터는 대출을 받아 버터야 하는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여기서 뭔가를 더 채우겠다고 하다가는 마지막까지 부족한 인생이 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어쩌면 생각과 말.. 그 한 끗 차이로 행복과 불행의 갈림길에 서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면, 오래전 어느 날 아내가 콧 노랠 흥얼거리며 싱크대에 서있던 뒷모습을
바라보던 순간이다. 방에서 나오다 그 모습을 보며 그 당시 힘겨웠던 불안들이 사라지고, 내가 잘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나에게도 큰 행복감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인지 나는 무덤덤한 시간을 아내와 보내고 있을 때도, 입버릇처럼 지금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일거라고 말하곤 했다.
오늘도 브런치를 먹으며 나는 요즘 내 인생 최고의 가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고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잠시 후에 아내의 얼굴을 보았는데, 아내의 눈시울이 벌겋게 붉어지고 있었다. 못 본 척 했지만, 아내도
내가 행복한 모습을 보이면 나보다 더 행복해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행복하다고 말해야 한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당신과 있는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란 사실을 굳이 알려줘야 한다.
행복은 전염성이 너무 강해,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은 가족과 사회를 위한 내 의무인지도 모른다.
마치 행복한 사람이 웃는 것이 아니고, 웃는 사람이 행복해진다는 말과 같다.
행복해서 행복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 행복하다고 말하며 주변을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이 행복해
지는 것이다. 행복은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라 믿는다.
자신의 행복을 쫒는 본능과 싸워, 승리한 자들만 통과하는 좁은 문이기도 하다.
오늘도 실없이 행복하다고 되뇌며,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을 살고 있다고 떠벌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