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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형제와 세 자매

중년백수 일기

by 일로

추석 준비는 와이프가 다했는데 덩달아 여유가 없어 오랜만에 글을 쓴다.

작년부터 추석과 설날은 우리 집에서 처갓집 식구들이 모인다. 올해는 추석 전날 어머님이 왔다 가시고,

당일은 처갓집 식구들이 왔다. 아내는 세 자매 셋째 딸이고, 나는 삼 형제 중 막내이다.

양쪽 집안 모두 어머님들만 계시다 보니, 딸들만 있는 집안과 아들 형제만 있는 어머님들의 노후가

극명하게 비교됐다. 모계사회로 가고 있는 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장모님은 막내딸 집에서 딸들과 사위, 손주들과 즐거운 시간을 하루 종일 보냈고, 우리 어머님은 전날 혼자

잠깐 오셔서 식사만 하고 가셨다. 우리 형제들은 각자 어머님 집에 인사를 가고 형편상 모이질 못한다.

어머님과 삼 형제만 모여 식사를 했을 뿐이다. 장모님은 처형들이챙겨드려 옷과 얼굴이 화사하셨고,

우리 어머님은 그렇지 못했다. 딸들은 받은 사랑과 재산이 없어도 갈수록 엄마를 더 신경쓰고,

아들들은 많은 사랑과 재산을 줬어도 며느리들까지 고마움을 모르는 것 같다.


집안 대청소도 하고 가락시장에 가서 장을 봤다. 야채 손질은 내가 다하고 아이들과 아내가 전을 부쳤다.

쉽게 집어 먹던 동그랑땡이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 줄 몰랐다. 아내가 분주하게 준비한 것 같았는데, 이번에도 차려놓으니 집어 먹을 게 없어 보였다. 전날 어머님을 모시고 송편과 토란국 한솥을 가져왔는데, 토란국은 추석날 아침에 쏟아 버려야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냄비 뚜껑을 닫아 놓아 밤새 쉬었다.

허둥지둥 다시 끓였지만 그 맛이 나질 않았고, 구순 다된 노모의 정성을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


우리 삼 형제 가정사를 다 말할 순 없다. 그나마 형제 사이는 나쁘지 않은데, 다 같이 어머님 집엔 모일

수가 없다. 그래도 몇 해가 남아 있을지 모를 어머님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시간들이다.

이제 거동도 불편하시고 마음도 많이 약해지셨다. 그런 어머님께 든든한 아들들이 되어드리지 못하고

아직도 심려를 끼치는 모습들이 죄송스럽다. 일평생 아들들에게 다 내어 주고도, 못난 아들들 탓에

며느리들에게 당당하지 못한 어머님이 안쓰럽게 느껴진 추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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