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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Jun 09. 2023

이제 달리기를 시작해 보려 합니다. (3)



3     


걸어 가면서 핸드폰 음악도 다시 나오게 하고, 숨도 고르고 나니 더 이상 핑계거리를 찾을 것이 없었다. 그러자 이내 머리가 한마디 한다.      


“그러니 준비를 충분히 하고 달리기를 시작하자고 했잖아.”     


난 뭐라고 대꾸할 말도 그리고 벌써부터 대꾸할 힘도 없어서 그냥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솔직히 지금 표현은 달리다고 표현하고는 있지만, 아마 달린다는 표현이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은 확실할 것 같다. -하지만 아까도 언급했듯이 난 세상 어떤 마라토너 보다도 더 열심히 달리고 있는 심.정.이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게 달리고 있는데, 이제는 다리의 다른 불만이 터져나왔다. 신발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 신발이 걷기는 구름 위를 걷는 듯해서 좋았는데, 막상 달리기 시작하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새신발이라 왼쪽 뒷꿈치가 벌써 불편하기 시작했다. 10km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아무 거나 신고 뛰면 된다고 생각한 나에 대한 불만이 여기저기, 특히 다리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그렇다...

그건 이미 살면서 수차례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또 잊고 있었던 사실이 있는데, 그건 초보자 일수록 좋은 장비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뽐내기 위한 고가의 장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초보자는 장비를 케어하면서 운동할만한 능력이 안된다. 그래서 초보자라고 하는 것이다. 자전거도 초보자라고 해서 안좋은 것을 타면 정말 후회한다. 등산장비도 마찬가지이고, 전문가는 솔직히 운동화를 신고 가도 되나, 초보자일수록 기능이 좋은 등산화를 신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끄러지거나 발목이 접질려서 크게 다칠 수 있다. 이건 무슨 운동의 장비든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난 아무리 달리기를 안했어도 지금의 상태가 중급자 이상은 된다고 착각을 했다. -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중급자였던 적도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거만한 생각을 하고 워킹화를 신고 지금 뛰고 있는 것이다. 아... 몸들아 정말 미안하다. 응? 뱃살 넌 빼고...   

  

드디어 내리막이었다. 그런데 전혀 변화가 없었다. 이론적으로도 조금은 덜 힘들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주 똑같이 힘들고 속도도 똑같았다. 솔직히 비참했다. 내리막이 구별이 안될만큼의 몸을 가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 비참해졌다. 그러면서 도로를 벗어나 해안도로로 접어들게 되었다.    

  

지금까지 솔직히 주변을 하나도 못봤다. 그렇다고 해안도로로 들어와서는 주변을 봤느냐? 한다면 오히려 묻고 싶다. 봤겠냐고? 당연히 못봤다. 지금도 뭐가 있었는지 기억이 나는 건 하나도 없다. 다만 아우성대는 내 몸에 대해서 불쌍하다고 느끼고 있는 중이었으며, 마주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혀 힘들지 않다는 표정을 지어보일려고 애쓰는 것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행위였다. (아마 마주온 사람들이 내 얼굴을 봤으면 가관이었을 것이다. 온갖 찌푸린 얼굴에 호흡은 죽을 거 같이 거친데... 눈과 입은 평온한 척하고 있다. 음... 좀 섬뜩한데...)     


아무튼 그렇게 한걸음 한 걸음을 움직이고 있는데, 맞은 편에서 나이가 제법 드신 걸로 보여지는 어르신 한 분이 걸어오시고 계셨다. 그런데 뇌경색(중풍)이 왔었는지 몸을 많이 불편하게 움직이시는 게 아닌가? 아... 저분도 살기 위해 저렇게 운동하는데, 난 뭐했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저 분도 건강할 때는 운동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살았을 수도 있다. 우리가 보통 그렇지 않나? 건강할 때 그런 걸 챙기는 사람을 난 별로 보지는 못했다.      


가끔 건강서적을 쓰는 분들 중에서 아프고 나서 회복한 후에 글을 쓰는 분들이 많은데, 그 분들 말씀 중에 안 아플때 알았으면 건강을 지켰을 것 같다는 말을 난 통상적으로 믿지 않는다. 아니 절대 믿지 않는 편이다. 과연 그럴까? 본인이 안 아픈 상태에서, 운동도 안하고 육식, 튀김, 술 즐기던 사람이 주변의 누군가가 이야기 해준다고 또는 어디에선가 그런 거 봤다고 생활이 180도 바뀐다? 글쎄... 난 그 말에 신빙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건강해지는 법을 아프기 전에는 진짜 몰랐을까? 아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건강해지는 법은 안다. 다만, 실천을 안할 뿐이지...     


아무튼 그 모습을 보면서 지금이라고 이렇게 헉헉 대면서 뛰고 있는 것이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은 내가 살고 싶어서 이렇게 하는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고, 호흡이 거칠어질수록 내가 살아볼려고 발버둥을 치는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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