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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May 09. 2023

날개 없는 잠자리 - 2


‘아..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 칼이라도 하나 사둘걸.’      


갑자기 그런 후회가 밀려왔다. 집에는 아무것도 없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다. 드넓은 광야에 아무것도 필요 없는 그러한 자연스러움이 아니라, 학생들이 없는-학생들이 먼저 없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그러한 공허한 폐허의 학교처럼 집에는 집을 나타낼 수 있는 물건들이 거의 없다. 단순히 물건만 없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그 무엇인가도 없는 느낌이다. 그냥 공허한 공간이다. 어쩌면 지금 칠흑 같은 어둠이 너무나도 잘 어울려서 마치 원래 그런 곳인 양 무(無)의 공간이다.    

  

그래도 난 이 공간을 좋아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아파트를 좋아한다. 내가 지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아.파.트.라는 단어가 너무 마음에 든다. 어쩌면 내가 이 공간을 선택한 이유도 아파트라는 단어 때문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내가 사는 집을 말할 때 아파트에서 산다고 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마치 내가 그러한 명칭을 쓸 수 있는 곳에서 살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처음 여길 봤을 때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나에게 미적지근한 눈빛으로 나를 훑어보던 중계인도 여기를 소개하면서 그냥 나온 물건이니까 보여준다는 식이었고, 내가 여길 들어갈꺼라곤 기대조차 안 한다는 눈빛이었다.     


‘아...맞다. 그 새끼 정말 재수없었는데...’     

갑자기 역겨웠던 중계인이 떠올랐다. 



2     


방을 구하기 위해서 이곳저곳을 방황하고 싶은 생각도, 여력도 그렇다고 의지도 없는 상태에서 그냥 처음 보이는 곳, 오래되고 보수라고는 한 적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크지 않는, 아니 매우 작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2층짜리 가건물에(건물을 얼마나 쪼개서 세를 놨던지 그 조그마한 2층 건물에 보이는 간판만 5개나 되었다. 아마 건물주는-이걸 건물이라고 표현하기도 그렇지만- 돈에 미쳐 환장한 사람일 것이다. 진짜 그럴 것이다.) 한쪽 귀퉁이를 낡은 간판에 ‘부동산’이라고 적힌 곳을 들어갔다. 그런 곳이라면 내가 원하는 곳을 찾아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들었다. 물론 그 예상이 틀리진 않았다. 과정이 좀 더러웠을 뿐이지만, 아니 드.러.웠.을. 뿐이지만...     


들어서자 마자, 아니 들어가지도 못하고 입구 문에 계속 서 있을 수 밖에 없는 그 좁은 사무실-사무실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하지만...-에 온갖 것들이 다 있었다. 앞에 보이는 곳에 낡디 낡은 책상, 그 맞은 편에는 겨우 닫겨 있다고 보여질만큼 우그러진 문이 불룩하게 튀어나온 낡은 케비넷이 있었고, 아마 서류를 보관한다고 서 있었겠지만, 이후 만난 중계사의 모습을 생각하면 아마 그곳에 세상의 온갖 더러운 물건을 자신의 보물인 양 보관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아마 맞을 것이다. 케비넷 자신은 의지가 없어 뱉어내지도 못하지만 토하고 싶은 모습이 아닐까 생각되니 케비넷에 대한 마음이 측은해진다.  

   

‘더러운 중계사 새끼’          


그 앞으로 사람이 앉을 수나 있을까 싶은 커다란 낡은 원탁 탁자가 있었다. 이 비좁은 사무실에 저렇게 큰 원탁 테이블이라니...그 원탁 테이블은 마치 사람이 앉는 것을 허락하지도 않을 꺼라는 듯이 양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중계인은 그 원탁 의자에 못 앉을 것 같은데...지나갈 수는 있나? 도대체 이 사무실에서는 사무실과 어울리는 가구가 하나도 없었다. 절대 샀을 꺼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법한 물건들, 아마 소개시켜주기 위해서 돌아다니면서 버려진 쓰레기들을 주어왔을 것이 분명한 것이라. 원탁 위에는 귀퉁이가 찢어진 지도가 때 타 처음의 새깔이 녹색인지 조차 알아보기 힘든 부직포 위에 있었고 그 옆에는 도대체 언제부터 죽어 있었는지도 모를만한 바싹 마른 난초(난초인지는 모를 정도이지만, 아마 화분을 보니 난초였었던 거 같다.)와 먹으면 이제까지 먹은 것을 확인이 가능할 것 같은 더러운 커피포트와 잔, 일회용 커피(분명 유통기한이 한참을 지났을 꺼다.)가 놓여져 있었고, 그 곳이 마치 자기의 원래 자리인 양 앉아있는 파리가 있었다. 그런데 책상 옆에 여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골프채 한자루가 서 있었다. 골프채? 여기에?   

   

나의 문소리에 반응을 하듯 책상에 앉아있는 고개를 숙이고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던 중계사가 서서히 일어섰다. 중개사는 키가 작고 사십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상체의 모든 것이 하체를 뒤덮기를 결심하고 서서히 잠식하려는 듯 그의 배와 그 주변의 지방이 셔츠와 함께 허리띠를 덮어 허리띠가 있는지 조차 알 수 없었고, 입은 이가 벌써 몇 개는 없는지 아래턱이 앞으로 나와 얼굴자체를 찌푸리게 만들었으며 턱이 두 개도 모자라 목 주위까지 살이 덮어져 있었다. 사십대 후반으로 보인다고는 했지만, 그가 만약 자신이 사십대부터 육십대까지. 그 중에 하나를 골라 말해도 그녀는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등은 살 때문이지 원래 그런지 모르게 굽어 있었으며, 머리는 얼굴에 비해 턱없이 작아 전혀 비율이 맞지 않는데다가 벌써 거의 다 벗겨져 있었다. 그런데도 몇 가닥으로 전체를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한 건지 귀 옆으로 겨우 매달려 있는 머리카락을 최대한 옆으로 돌려서 머리 전체를 가리고 있었다. 마치 미둥산에 풀 몇 포기로 산 전체에 그늘이라도 만들 양. 그 마치 소설 속에서 영웅이 괴물을 해치우기 위해서 동굴에 들어섰을 때 인간을 먹으며 똥을 싸고 있는 돼지 괴물이 영웅을 보며 서서히 일어나는 것처럼, 그가 뒤돌아서며 일어났다. 그리고 그의 점원으로 생각되는 파리도 손님을 응대하듯이 잔에서 잠시 날았다가 다시 앉았다. 저런 몸으로 골프채를 휘두른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상상이 안된다.     


“뭔 일로 왔나?”     

대뜸 반말이다.      


“방을 보러왔는데요.”     


“얼마짜리?”     


씨발...반말에 바로 돈 이야기다. 뭐 저런 새끼가 있나 싶다. 당장 나가고 싶었지만, 지금은 난 너무 지쳐 어떠한 의지도 힘도 없거니와 여기서 나간다고 해서 가진 돈으로는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 대접을 받을 것이 뻔했기에 신물이 역류하는 것을 간신히 다시 삼키면서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돈은 얼마 없어서 싼 방을 구하고 싶어요.”     


중계인은 돋보기 너머로 그 쭉 찢어지고 작은 눈으로 날 훑어보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입고 있는 옷을 모두 벗겨버리고 내 알몸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음미하면서 감상하듯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날 위아래로 훑터보면서 말을 한다.     


“혼자 살건가?”    

 

“예. 지금은 혼자인데, 조만간 남자친구도 올 수도 있어요.” 

    

“두 명이 사는 곳은 이런 하찮은 동네라도 싼 곳은 없어.”   

  

“일단은 저 혼자 살 곳이라도 보여주세요. 나중에 남자친구와 상의할께요.”   

  

남자친구 없다. 다만, 저 역겨운 눈초리가 내 몸을 혓바닥으로 훑는 것을 그만 멈추게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남자친구가 있다고 해야 나중에 이상한 경우도 안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순간 들어 그렇게 대답했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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