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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Jun 03. 2023

이제 달리기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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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가야 하는 시간이 왔다. 


막상 시간이 오니 아... 싫다. 진짜 싫다. 왜 그런 생각을 해서 갑자기 이런 일을 벌리는지 내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머리는 왜 안하던 짓을 하느냐는 엄청난 항의를 했다. 그래도 하기로 했으니 한 번만 해보자고 타일러봤다. 그래도 장난감 가게 앞에서 어떠한 말로도 설득되지 않고 떼쓰는 어린아이 마냥 내 머리는 계속 외치고 있었다. 그러한 외침을 잠시 못 들은 척하는 듯 난 잠시 눈을 감고 한숨을 크게 한 번 쉰 뒤, 다시 달리기를 하러 나가기 위해서 준비를 시작했다. 갤럭시 워치의 줄을 바꾸고, 달리고 나서 어머니 집에서 씻기 위해서 갈아입을 속옷과 바지, 면티를 가방에 주섬주섬 넣었다.    

 

이제는 머리에서 막무가내로 외치는 것으로는 통하지 않은 것을 알았는지 갑자기 좋은 말로 유혹을 시작했다. 그냥 어머니 집에 가서 맛있는 거 먹든지, 운동이 필요하면 어머니랑 좋은 곳에 가서 구경하면서 하던지 하면 되지 왜 지금 이 시간에 그리고 비도 올려고 하는 이 시간에 굳이 달리려고 하느냐고 말하기 시작했다.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해도 실제적으로 몸의 준비가 안되어 있으니 바로 하면 많이 아플 것이다. 뛸 때도 아플 것이고 뛰고 나서 휴유증도 심할 것이다라는 엄청난 유혹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가? 그냥 어머니 집으로 가서 좋은 곳에 놀러나 가자고 할까? 순간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이내 머리를 저었다. 이번에는 내가 달리고 싶었던 거니 한 번만 달려보자고 생각했다. 갑자기 머리가 삐진 듯 아무 말도 하지 않기 시작했다. 불안했다. 장난치는 어린아이에게 오히려 해볼만큼 해봐라고 놔두는 어른의 모습처럼 더 이상 날 보호해줄 생각이 없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에 조금 불안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접고 운동화를 신고 문을 열고 나갔다. 차까지 걸어가면서 나름대로 생각을 했다. ‘아니 내가 이제까지 달린 거리가 얼만데, 무슨 초짜도 아니고 달린 후의 휴유증까지 생각하냐’ 라는 생각이 들어서 순간적으로 우쭐해졌다. 그렇다. 난 오랫동안 타의에 의해서 많이 달렸고, 나름대로 달리기에는 자신도 있었다. 10km정도는 가볍게 뛸 자신도 있었다. 한창 뛸 때는 마라톤 하프를 어렵지 않게 나름대로 좋은 기록으로 뛰기도 했다.(아... 아니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엄청 힘들고 괴롭게 달렸다.) 그렇게 거만한 생각이 하면서 차에 시동을 걸었다.      


솔직히 지금와서 돌이켜보니 달리기 준비라고 표현하기가 부끄럽다고 생각할 정도로 대충 생각하고 우습게 봤던 것이 사실이다. 신발도 그냥 새로 사놓은 워킹화를 그대로 신고 나왔다. 그래도 정말 처음 뛰는거니 기존에 신발로 뛰고 싶지는 않았다. 신발 종류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새로 산 신발을 신고 싶었던 것이다. 반바지와 기능성 반팔티도 새걸로 입었다. 그러고 싶었다.     


아무튼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차를 출발하여 뛰기로 생각한 코스 옆의 주차장까지 차를 몰고 가서 주차를 했다. 그리고 짐은 차에 두고 내리는데, 아... 차키가 말썽이다. 차키를 호주머니에 넣고 뛰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핸드폰과 이어버드까지는 생각해서 핸드폰은 손에 들고, 이어버드는 케이스는 차에 두고 귀에 꼽고 뛴다고 생각을 해뒀는데, 차키를 생각을 못했다. 오늘 따라 차키가 매우 크고 뭔가 주렁주렁 달린 것처럼 보였다. 이것도 오늘 달리기를 방해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아... 가방 배송 오고 나서 다시 뛸까?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으나 바로 생각을 지웠다. 안그대로 머리 속에서는 뛰지 말자고 계속 애원했는데, 이 사실을 알고 나면 더더욱 고집을 피울 것이 분명해서 불편하다는 생각을 이내 지웠다. 호주머니에 넣고 뛰면 된다고 생각을 바꿨다. 다행히 호주머니가 깊어서 뛰면서 잃어버릴 염려는 없어 보였다.      


차에서 내려 내가 출발할려고 하는 장소까지 슬슬 걸어갔다. 딱히 준비운동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에이... 뭐 10km 정도인데 뭐... 그냥 걸으면서 슬슬 몸 풀고, 처음에 천천히 뛰면서 몸 풀지 뭐... 라는 생각이 당연스럽게 들었다. 그렇다. 난 많이 달려본 사람이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드디어 출발지점까지 왔다. 그런데 날씨가 장난이 아니었다. 계속된 비로 인해서 오랜만에 등장한 해가 이제까지 머금은 햇빛을 땅으로 내려 꽂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렬한 햇빛이 나를 때리고 있었다. 다행히 엄청난 공격에 마지막 방어선, 2차 세계대전의 프랑스 마지노선 같은 역할을 해 줄 모자는 쓰고 있었다.      


걷는 동안 신발의 바닥은 워킹화라 그런지 푹신하고 바람도 적당하게 불어줘서 너무 좋았다. 오오... 오늘은 정말 달리라고 하는 날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시계를 만지고 핸드폰에서 노래를 틀고 첫발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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