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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Jun 07. 2023

이제 달리기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2)


2    

 

“아... 씨...”      


첫발을 딛자마자 입에서 나온 내 첫마디였다.      


‘자... 이제 출발~’이라고 머리에서 신호가 떨어지고 내 몸을 다리가 밀면서 다리에서 나온 첫마디였다. 나도 순간 당황했다. 평소 말도 잘 듣으며 아프지도 않고 항상 묵묵히 일하던 다리에서 나올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다리가 한 말이 맞다. 다리의 감정이 고스라니 느껴져 나도 더 이상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다리는 내 몸에 대해서 특히, 몸통에 대해서 강하게 불만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정말 더럽게 무거웠다. 마치 군인들이 완전군장을 매고 어느 정도 거리 이상을 걸으면서 나온다는 다리의 소리가 지금 내 다리에서 나오고 있었다.      


아... 벌써 걱정이다. 

이제 출발, 아니 조금 뛰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첫발을 내딛었는데, 다리에서 이런 소리를 한다면, 아... 완주가 가능할까 하는 걱정이 슬그머니 내 머릿속에 밀려들어와 나도 모르게 어느덧 가득차 있기 시작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창피해 하고있는 몸통의 마음을 다리에게 전하며 어떻게든 해보자고 계속 구슬리는 수 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뛰기 시작했다.      


뛰기 시작하면서 다리에서 엄청난 짜증을 내는 소리가 고스라니 나에게 들려왔다. 그래도 이제는 출발했으니 그냥 모른 척하면서 뛰기로 했다. 어느 정도 뛰면서 적응하다보면 그 불평도 어느 정도 줄어들꺼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착각이었다. 

불만은 점점 더 커져갔고, 심지어는 가만히 있던 폐까지도 힘들다고 아우성을 쳐대기 시작했다. 아직 땀도 안났는데, 이 정도로 심각하게 불평하고 있는 다리와 폐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다독거리면서 갈 수 밖에 없는 거 아닌가? 이제 다리와 숨이 같이 차올라오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이제 겨우 500m 정도 뛰었는데, 도저히 뛸 수 없는 상황이 된 거 같았다. 아... 진짜 힘들다.라는 소리가 내 입에서 절로 나왔다.      


저기 앞에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가 보였다. 아... 저기라면 안전하게 건너기 위해서 잠시 멈춰야 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차가 없으면 빨리 지나가야지 하는 생각 따위는 벌써 잊혀진지 오래다. 무조건 멈춰서 안전하게 건너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운전을 해서 가는 도로이기 때문에 거리를 가늠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달려보니 왜 사람은 차를 발명했는지 정말 이해가 가기 시작했고, 차를 만든 사람은 처음 에어컨을 발명한 케리어와 같은 수준의 찬양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최초의 달리기 코스를 잡으면서 고려했던 주변 경관 따위는 눈에 들어지도 않았다. 옆에서 보면 곧 죽을 거 같은 곰 같은 덩치를 가진 사람이 헉헉을 넘어서서 컥컥거리며 느린 속도로... 아주 느린 속도 -빠른 걸음과 달리기 중 빠른 걸음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겠지만, 나는 지금 그 어떤 마라토너보다 심각하게 거리를 생각하고, 페이스를 조정하면서 뛰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핑계로 포기할지, 또는 어떻게 잠시라도 멈춰설지에 대한 핑계도 동시에 찾고 있었다)      


횡당보도를 도착하기도 전에 노래가 꺼져버렸다. 그나마 노랫소리가 귀를 막고 있어서 신체들의 불만소리를 안들리는 척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완전하게 노출되어 버렸다. 숨소리가 내 숨소리가 아닌 거 같았다. 난 한번도 이렇게 숨을 쉬어 본 적이 없다. 곧 죽을 거 같은 폐질환 환자의 숨소리처럼 들렸다. 심전도는 180이 넘어갔다. 아... 이대로 가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머리가 그런 생각을 하게 끔 계속 유도했을 것이다... 나쁜 놈...)      


아무튼 도저히 그 상태로는 달릴 수 없을 것 같아 드디어 멈춰섰다. 그리고 몸을 몰아쉬면서 핸드폰의 노래를 다시 켰다. 핸드폰의 노래가 꺼진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거라도 핑계거리가 있어서 안그랬으면 횡단보도까지 얄짤없이 뛰었어야 했고, 그 앞에서 쓰러져서 죽었을 수도 있다. (고맙다... 핸드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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