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나는 영국 런던의 베이커가 거리에 있었다. 런더너(londoner)라면 아침마다 들린다는 베이커리에 가려던 참이었다. 내가 머물렀던 런던의 6월은 여름이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더위는 잘 없었다. 오히려 쌀쌀한 축에 속했다. 반면에 내 몸뚱이는 무척 추위를 잘 타는 탓에 한기 서린 바람이 한순간이라도 스치면 오한을 느껴버리고는 했다. 그런 체질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지만, 아끼는 검은색 티셔츠를 한여름에 입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결국, 퀴퀴한 냄새가 풍기는 옷장에서 티셔츠를 꺼내 입기로 했으며, 어느 것 하나 들어맞지 않는, 아니, 들어 맞출 수도 없는 상황을 묵묵히 거스를 뿐이었다. 한 가지 일러두자면, 나는 이런 모순을 꽤 좋아한다.
베이커가 거리에서 칼바람을 뚫고 도로변 베이커리 안으로 들어서자, 달콤한 버터의 향과 갓 구운 빵의 온기가 살결을 타고 진하게 전해졌다. 나는 그 향을 몸속 깊은 곳까지 깊게 들이마시고 진열대 앞으로 단숨에 다가갔다. 이른 아침에 구워낸 빵 냄새가 기어이 공복인 나를 매혹한 것이다. 스콘, 첼시 번, 크루아상. 그 옆으로 진열된 ‘2017년 바게트&디저트 대회 우승’이라 적힌 명패와 길쭉한 바게트가 남아있는 것을 보며 묘한 쾌감을 느꼈다. 곧이어 안쪽 부엌에서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훈! 조금만 늦었으면 냄새도 못 맡을 뻔했다고.”
현재 가게 주인이자 제빵사인 루크 씨는 경력이 십수 년을 훌쩍 넘는다. 그는 제빵 업계에 뛰어들고 보조로 일하며 몇 년 동안이나 지독하게 바게트만 구워냈다고 했다. 수요가 많았기 때문에 한 가지 빵만을 고집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덕분인지 입맛을 사로잡는 레시피를 발전시켰고 당당히 바게트로 우승을 거머쥔 것이다.
“루크 씨, 좋은 아침입니다.”
“자! 바게트와 바질크림, 맞지?”
나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가끔은 생햄이랑 치즈를 얹어보라니까 그러네. 자네는 은근히 고집이 강해.” 루크 씨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고는 커팅된 바게트와 바질크림이 담긴 종이봉투를 건네주었다.
“그럴게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기다려보게.” 루크 씨가 진열대 아래로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유키 양이 자네한테 전해달라 하더군.”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잠시, A4 사이즈의 갈색 상자가 진열대 위로 올라왔다. 아무런 무늬 없이 ‘피낭시에’라는 글자와 노란색 끈이 리본 매듭되어 있었다.
“유키가요?”
“일본에서 즐겨 먹었던 곳과 가장 비슷한 맛이라나. 내가 만드는 제과였으면 질투 날 뻔했어. 괜찮으니까, 가게 안에서 먹고 가게. 자네 추위도 잘 타잖나.”
볕이 잘 드는 창가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상자 안에는 개별 포장된 피낭시에와 빨간색 편지 한 장이 들어있었다.
잡초는 줄기라든가, 그 뿌리가 잘려나가더라도 남은 부분에서 또다시 자라나. 이건 잡초를 제거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야.
한 학기 동안 고마웠어. 한국 조심히 돌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