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페이지씩 보는 나의 건축노트
위치: 서울 중구 칠패로5
건축가: 윤승현, 우준승, 이규상
서소문 성지는 조선시대에 수 많은 천주교인들이 처형당했던 박해의 장소입니다.
하지만 그런 깊은 의미가 있는 대지는 경의선 철로와 서소문 고가로 인해 주변으로부터 동떨어진 채 방치되었었고, 한 때 공영주차장으로 이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처형장과 공영주차장. 이 두 어두움이 땅을 지배하는 분위기였죠.
우리는 땅 위에서 살아가지만 그 역사는 오롯이 땅 아래로 새겨집니다.
서소문 성지역사박물관은 이 모든 요소들을 고려할 때, “지하(underground)”가 가장 큰 주제가 되었습니다.
처음에 이 건물을 보게 된 계기는 단순히 저희 대학교수님의 설계작이어서였는데요,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 한 번 두 번 가보다 이제는 가장 익숙해지게 된 건물입니다.
관련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위와 같은 역사를 알게 되었는데, 그제서야 왜 그렇게 이 장소에 끌림을 느꼈는지 깨달았습니다.
땅에 대한 깊은 이해로 설계된 건물이어서였죠.
처형장이라는 어두운 역사, 마침 지하의 어두운 공영주차장으로 이용되었던 대지.
이를 따라 자연스레 땅에서의 역사를 새겨넣듯이 지하로 파고드는 건물로 이루어진 공원.
서소문 성지역사박물관입니다.
건물의 대부분은 땅 속으로 묻혀 있고 지상에서 볼 수 있는 부분은 위로 드러난 사각형의 매스들 뿐입니다.
이는 지하에서 하늘로 열린, 중정입니다.
동선을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가 진입광장을 마주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는 2개의 하늘로 열린 중정 중 첫번째입니다.
어두운 지하로 들어가서 마주치는 이 중정에서 이용자는 극적으로 밝은 하늘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지하에서 바라보는 지상이기 때문에 지상의 다른 사물들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하늘만이 보입니다.
이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원래의 공영주차장 구조를 일부 활용했기 때문에 사각형의 단위 그리드체계로 이루어진 전시공간을 마주하게 되는데요. 십자가 모양으로 만나며 공중에 떠 있는 듯이 머리 위를 지나가는 철근 보가 인상적입니다.
아직까진 지하에 있다는 게 실감이 잘 안나지만, 이후에 -3층까지 이어지는 길고 긴 경사로를 따라 계속해서 내려가다 보면 점점 어두움이 깊어지고 엄숙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경사로는 거대한 검은색 매스를 둘러서 아래로 이어지는데요, 계속해서 내려가면 어느새 -3층에 다다르게 됩니다.
넓고 깊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왼쪽에 아까 내려오며 계속해서 본 검은색 매스가 약간의 높이를 두고 공중에 부양해 있습니다.
콘솔레이션 홀 이라는 공간. 이는 건물 내에서 가장 어두우면서 엄숙한 중심공간이며, 약간의 틈으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면 어두컴컴한 내부에는 가운데에 지상으로부터 지하까지 뚫고 내려온 관이 빛을 바닥으로 내리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아까 전 지상의 잔디 공원에 뜬금없이 사각형의 유리판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가끔 건물의 구성을 이렇게 퍼뜩 이해할 때면 희열이 올라옵니다.
이 공간은 순교자들의 영혼이 머무르는 듯 무거우면서도. 중앙의 빛과 오묘하게 흐르는 벽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어두운 콘솔레이션 홀을 나오면, 가운데 복도를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밝은 빛으로 차 있는 유리문이 끝 없이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이런 깊은 지하에 있기에는 너무나도 밝은 빛에 이끌려 밖으로 나가게 되면 마주하는 것은 -3층부터 지상을 지나 하늘까지 뚫려 있는 거대한 중정입니다. 두번 째 중정, 하늘광장이죠.
과연 건축물 앞에서 인간이 자신의 미미한 존재감을 느끼는 것이 가능할까요?
저는 서소문 성지역사박물관에서 처음으로 그 경험을 한 것 같습니다.
나를 둘러싼 거대한 적벽돌 벽과 위로 펼쳐지는 광할한 사각형의 하늘 아래 나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느끼게 됩니다.
한참을 그곳에서 멍 때리다 나온 것 같습니다.
동선은 이곳에서 끝이 아닙니다. 하늘광장의 구석에, 작은 문이 하나 나 있는 것이 눈에 띕니다.
들어가면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인 하늘길 입니다.
서소문 성지역사박물관 전체에서 느끼게 되는 것이지만요, 밝음과 어두움이 하나의 연속성을 만들며 공간 전체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진입광장에서의 밝음 그리고 전시공간에서의 어두움, 아래로 내려갈수록 깊어지는 어두움은 콘솔레이션 홀에서 최고조에 달하고, 하늘광장의 밝음과 완전히 대조됩니다. 이어지는 하늘길은 어두운 진입복도로 시작하고, 이어서 밝은 하늘로 열린 길이 나타나죠. 지하공간이라는 특성과 이 어둠과 빛은 서소문 성지역사박물관의 주제가 되는 듯 합니다.
하늘길에는 회색빛의 노출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양쪽 벽의 높은 곳에 자리잡은 사각형의 매스들 사이사이로 밝은 빛이 쏟아지고, 그 아래의 경사로에는 오묘한 형태의 바위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야기한 밝음과 어두움을 연속적으로 경험하며 앞을 가로막는 바위들을 이리저리 피하며 경사로를 걸어가는 경험. 이는 그 자체로 마음을 가다듬게 해주고. 하늘길은 건물 안에서의 생각들을 정리 할 수 있게 해주는 공간입니다.
처형장과 공영주차장이라는 역사를 이어 받아 어둠 속에 빛이 공존하는 지하로 파고 든 서소문 성지역사박물관.
이 땅에 새겨진 건물처럼, 역사는 계속해서 땅 아래로 새겨질 것입니다.
-2023.08.07 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