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방수키보드야
치과 치료가 난항이다.
슬슬 치아가 문제 될 나이가 됐다는 걸 실감한다.
이 시기가 조금 더 나중에 오길 바랐지만 그건 마음만으로 되는 게 아니니 내 지난날의 과오로 덤덤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들 중 하나가 돼버렸다.
치료를 받고 항생제를 3일 치 처방받았다.
하루 세 번 복용하니 그간 먹지 않았던 아침 식사를 해야 한다.
빈속에 먹을까도 생각했지만 이렇게 하면 이것 또한 지난날의 과오로 나중에 밀려올까 봐 그러진 못했다.
뭘 먹을까 생각해 봤는데 예전에 동료가 선물로 줬던 선식이 생각났다.
마침 구입해 놓은 두유도 있으니 부담 없이 가볍게 식사 대신 하기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셰이커 볼이 들어 있는 보틀을 꺼내 두유와 선식을 같이 넣었다.
잘 흔들어서 마셔야 하니 입구를 꽉 잠갔다.
그리고 마구 흔들었다.
너무 힘차게 흔들었나, 두유와 섞인 약간 농도 짙은 연두색 액체가 사방팔방에 다 튀어버렸다.
흔들다가 튀면 바로 멈춰야 하는데 '어, 이거 왜 이러지?' 하면서 한번 더 흔든 게 가장 피해가 컸다.
보틀을 책상에 놓고 유심히 보니 입구가 살짝 틀어져 있었다.
마시는 곳 뚜껑은 재차 확인해 놓고 돌려서 닫는 뚜껑은 그냥 힘 있게 돌려 닫았지 제대로 확인을 못했나 보다.
아귀가 맞지 않아 그 틈으로 새어 나왔다.
책상 앞에 앉아한 행동이기 때문에 키보드에 가장 많이 튀어있었다.
닦으면서 드는 생각이 '아저씨'에서 나오는 김희원의 대사가 생각났다.
내 키보드는 방수가 되니까 액체 같은 게 흘러도 괜찮았다.
이거 방탄유리야! 가 아닌 이거 방수키보드야!
이렇게 혼자 피식거리다가 혹시나 하고 내 키보드를 검색해 봤는데 방수가 된다는 내용은 없었다.
이제 끔 왜 이 키보드가 방수가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아마도, 이 키보드가 출시되기 전에 기대를 했었고 예약해서 구매한 거라 당연히 방수가 될 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까지 워낙 잘 사용한 터라 고장 나도 크게 아쉬움은 없을 것 같지만 오늘 같은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 난 이 키보드가 끝까지 방수가 되는 키보드로 알고 있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좋다.
그래도 내 키보드인 건 변함이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