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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힘, AI의 힘, 그리고 인간의 자리

‘트렌드 코리아 2026’으로 살펴본 인간의 자리

by 이정호

2026년은 인공지능이 세상의 거의 모든 구조를 새로 쓰는 해다. 경제, 산업, 소비, 조직, 문화까지 AI가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다. 그렇다고 이 변화가 ‘인간을 대체하는 세상’을 뜻하지는 않는다.


『트렌드 코리아 2026』의 김난도 교수팀은 이 흐름을 한마디로 정리한다. “AI 위에 올라타는 인간, 그 결합이 바로 HORSE POWER(말의 힘)이다.”


말은 오래전 인간에게 이동의 자유와 노동의 힘을 주었다. AI는 현대의 인간에게 지능의 추진력을 제공한다. 그 위에 인간의 감성과 통찰, 그리고 가치 판단이 더해질 때 비로소 새로운 경쟁력이 만들어진다. AI가 엔진이라면, 인간은 방향을 정하는 손잡이다.


AI 시대의 인간, 반드시 개입해야 하는 존재 : 휴먼 인 더 루프(Human-in-the-Loop)


AI가 아무리 똑똑해도 그 판단은 과거 데이터에 근거한 예측일 뿐, 맥락과 윤리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시스템의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인간의 질문, 판단, 감정이 개입해야 한다.


통신공학으로 비유하자면 AI는 신호를 증폭하는 송신기이고, 인간은 왜곡을 바로잡는 필터다.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도 인간이 빠지면 시스템은 결국 방향을 잃는다.


속도에 지친 세상, 느림이 다시 가치가 되는 이유 : 제로 클릭(Zero-Click)


AI가 취향을 예측하고, 클릭도 없이 정보를 건네는 시대다. 편리하지만 사유의 틈이 줄어든다. 무의식적 선택이 쌓일수록 “나는 왜 이걸 좋아하는가?”라는 물음은 사라진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느림이다. 문학과 철학이 다시 소환되는 이유이며,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생각의 여백이다. 세상이 가속할수록 생각하는 인간의 가치는 커진다.


작고 빠른 세상, 픽셀로 쪼개진 삶 : 픽셀 라이프(Pixel Life)


과거에는 하나의 큰 목표를 위해 긴 시간을 투자했다면, 이제는 짧고 작지만 확실한 경험이 삶을 구성한다. 통신망이 데이터를 패킷으로 나누듯 우리의 시간과 관심도 조각나 흐른다. 플랫폼, 네트워크, 심지어 가족의 형태까지 모듈화 되고 재조합된다.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새로운 균형 : 1.5 가구(1.5 Household)


혼자이되 완전한 혼자는 아니고, 함께이되 전통적 가족의 틀에서는 비켜선 유연한 생활 단위가 등장한다.


한 공간을 공유하면서도 각자의 독립을 존중하고, 필요할 때 느슨하게 연결된다. 혈연의 필연에서 공감과 선택의 연대로, 생활의 단위가 재정의되고 있다. 픽셀화된 일상의 인간관계 버전이다.


기분이 곧 소비가 되는 시대 : 필코노미(Feelconomy)


사람들은 단순히 물건을 사지 않는다. 기분을 관리하기 위해 선택한다. AI는 표정, 목소리, 문장 속 신호를 읽고 ‘기분을 회복할’ 상품을 추천한다. 그러나 감정의 주인은 인간이다. AI는 감정을 측정할 수는 있어도 느낄 수는 없다. 이 차이가 인간의 존재 이유이자, 브랜드가 회복해야 할 인간적 온도다.


불확실성의 시대, 준비된 자가 기회를 잡는다 : 레디코어(Ready-Core)


예측 불가능성이 상수가 된 시대, 경쟁력은 준비성에서 비롯된다. 기술 지식만이 아니라 변화 감도, 적응력, 학습 습관까지 아우르는 핵심력이다. 데이터가 답하지 못하는 순간에 결정을 이끄는 것은 훈련된 직감과 경험의 축적이다. 준비는 속도를 이기고, 습관은 행운을 호출한다.


기술이 조직을 바꿀 때, 사람을 다시 중심에 : AX 조직(AI-Transformation Organization)


업무의 자동화와 의사결정의 계량화가 진행될수록 조직은 더 유연하고 분권화된다. 그러나 중심에는 여전히 사람의 동기와 신뢰가 있다. AX 조직은 데이터 기반 판단 위에 창의, 공감, 리더십을 설계한다. 도구로서의 AI와 목적을 정하는 인간이 맞물릴 때 조직은 말 그대로 ‘추진력’을 얻는다.


가격을 넘어 가치를 해독하는 소비자 : 프라이스 디코딩(Price Decoding)


소비자는 싸다, 비싸다의 이분법을 넘어 가격의 구조와 철학을 묻는다. 공급망의 투명성, 노동과 환경의 윤리, 애프터서비스의 신뢰까지 ‘값어치’의 일부다. AI가 추천해도 과정이 불투명하면 외면받는다. 소비는 숫자의 언어에서 가치의 언어로 이동한다.


건강은 새로운 지능이다 : 헬스 인텔리전스 HQ(Health Intelligence HQ)


웨어러블과 알고리즘이 몸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읽는 시대, 건강은 관리가 아니라 운영의 영역이 된다. 혈당, 수면, 면역, 노화 지표를 스스로 해석하고 전략을 세우는 능력, 곧 ‘건강 지능’이 경쟁력이다. IQ와 EQ를 넘어 HQ가 삶의 지속가능성을 결정한다.


디지털의 끝에서 본질을 다시 묻다 : 근본이즘(Fundamentalism)


AI가 이미지를 만들고 목소리를 복제할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진짜’를 찾는다. 손맛, 원조, 오래된 음악,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의 진심. 복제 불가능한 인간의 아우라가 희소가치가 된다. 효율의 끝에서 본질이 다시 시작된다.


AI 위의 인간, 그 조화의 힘


‘트렌드 코리아 2026’은 묻는다. AI의 시대에 인간은 어디에 서야 하는가. 답은 명확하다. AI는 속도를 담당하고, 인간은 의미를 담당한다. AI는 효율을 극대화하고, 인간은 가치를 세운다.


말의 힘이 인간의 이동을 가능케 했듯, AI의 힘은 인간의 사고를 확장시킨다. 그러나 그 말의 고삐를 잡는 손은 언제나 인간이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인간다운 사유, 감성, 윤리, 그리고 진정성이다.


그때 비로소 AI와 인간은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며 진정한 ‘말의 힘(Horse Power)’으로 달릴 수 있다.


자료 출처: 김난도 외, 『트렌드 코리아 2026』, 미래의창,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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