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를 기억하며
친할머니의 장례식은 조용했다.
은은한 꽃향기와 웅얼웅얼대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 공기는 이상할 정도로 건조하고 무거웠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반년 만에 또다시 장례식을 겪게 된 나는 장례식에 익숙해지는 내가 참 어이없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는 내내 입술을 꾹 깨물고 있었다.
이 장례식은 엄마가 수없이 관계를 소명하며 얻어낸 자리였다.
하지만, 서류는 끝내 바뀌지 않았다.
우리 할머니는 법적으로 여전히 무연고자였다.
‘동거인’, ‘무연고자’.
할머니를 설명하는 수식어가 이런 것들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모두가 어렵던 그 시절,
할머니는 정처 없이 떠돌던 어느 길거리에서 할아버지를 만났다.
꽤 부유했던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렇게 할머니는 우리 아빠를 낳았다.
그렇지만 그때 당시 할아버지에게는 부인과 자식들이 있었기에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법적 가족이 될 수 없었다.
이야기를 들은 뒤에야, 왜 건강이 좋지 않은 할머니가 아무런 논의도 없이 우리 집에 오셨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엄마가 명절 때마다 친가 방문을 꺼리던 이유도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외할머니 손에 큰 나는 명절에만 본 친할머니가 마냥 편하진 않았다.
외할머니에게는 마음껏 애교를 부리며 애기짓을 했지만, 친할머니 앞에서는 조금 거리를 두는 살가움으로 대했다. 마치 사회 생활하는 것처럼? 아마 나도 모르게 할머니를 어렵게 느꼈던 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친할머니는 첫째인 나를 정말 예뻐했다.
아마 할머니는 아빠와 관련된 모든 것을 사랑해서
아빠가 사랑한 엄마와 나, 동생들 모두를 사랑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새벽, 이상한 소리에 잠에서 깼다.
사각사각
무언가 가위질하는 소리 같았다.
거실로 나가 보니 할머니가 웅크린 채 싹둑싹둑 베개를 자르고 있었다. 할머니 옆엔 이미 잘린 옷들과 베개들이 흩어져 있었다.
“할머니, 뭐 해요?”
할머니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분명 나를 보는데 보지 않는 눈빛이었다.
“우리 예쁜 OO이구나. 인형 만들어 줄까?”
엄마 이름을 부르며 나를 보는 할머니를 보고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태연하게 "네~"라고 하고, 엄마아빠를 깨우러 달려갔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병인 치매의 시작이었다.
할머니의 치매는 점점 심해졌다.
나는 할머니의 친구였다가, 엄마였다가, 아빠의 친구였다가, 아기였다가, 생판 모르는 사람이 되기도 했다.
할머니가 혼자 밖에 나가 길을 잃은 날, 온 가족이 찾아 헤맸다. 그리고 실종신고 직전 집에서 세 정거장 거리인 버스정류장에서 겨우 할머니를 찾을 수 있었다.
엄마아빠는 할머니를 붙잡고 펑펑 울었다.
맞벌이인 엄마아빠가 더 이상은 감당할 수 없었다.
엄마아빠는 할머니를 멀지 않은 요양원에 모셨고, 정말 꼬박꼬박 찾아갔다.
아빠가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었을 때도 엄마는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할머니에게 다녀오곤 했다.
아빠가 세상을 떠나고, 정말 오랜만에 엄마와 할머니를 찾아갔다.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할머니는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나와 엄마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한참을 보던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 슬픈 침묵에 할머니에게 아빠가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을 말해야 한다는 충동이 들기도 했다.
할머니도 무언가를 느끼셨던 걸까. 그날 이후, 할머니는 더 이상 아빠에 대해 묻지 않았다.
약 한 달 뒤, 할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이 끝난 뒤, 엄마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희 할머니 참 안타깝지. 결국 어디에도 남지 못했어.”
그 말을 내내 곱씹었다.
법적으로 우리 가족에게 할머니의 흔적은 없었다.
할머니의 장례식은 조용했고, 할머니는 세상의 기록에 남지 못했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서, 할머니는 여전히 생생하다.
그녀가 우리와 함께했던 모든 순간은 잊히지 않을 것이다. 기록되지 않은 사람도, 이렇게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