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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는 깜빡이지 않았다

by 진동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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삑삑삑삑삑

도어락을 누르는 손가락부터 무겁게 느껴졌다.

어쩐지 피곤한 하루였다.

별로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어두운 집의 불을 켜고,

가방을 소파 위로 던지듯 내려놓았다.

내가 좋아하는 뜨거운 물 샤워가 절실히 필요했다.


옷을 벗고 샤워기의 물을 틀었다.

물이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린다.

뜨거운 물줄기가 피부를 타고 흘러내리며,

오늘 하루의 무거움이 물에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눈을 감은 채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습기 가득한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왔다가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샤워 부스의 유리는 어느새 김으로 가득 덮였다.

손을 뻗어 유리를 문지르자 흐릿한 손자국이 남았다.

‘오늘 왜 이렇게 피곤한 거지?’


아무 생각 없이 물을 맞으며 가만히 있었다.

몸은 노곤한데, 정신은 점점 또렷해졌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고개를 살짝 돌려 샤워부스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김이 서려 있어 바깥은 뿌옇게 가려져 있었다.

습기가 가득한 욕실, 굳게 닫힌 문, 고요한 공기, 떨어지는 물소리.


분명 아무도 없음에도 시선이 느껴졌다.

찝찝한 기분에 물을 잠그고 수건을 집어 들었다.

젖은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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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건으로 머리를 털다 거울 속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익숙한 얼굴.

매일 보던 내 모습.


그런데 뭔가 어색했다.

내 눈썹이 원래 이랬던가, 좀 달라진 것 같은데.

광대뼈가 어제보다 더 도드라져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눈을 살짝 찡그려 보았다.

거울 속 ‘나’도 눈을 찡그린다.


머리를 수건으로 틀어 올리며 다시 거울을 봤다.

이번엔 확실했다.

거울 속 ‘나’가 조금 달랐다.

뭔가 눈이 또렷해 보인다.

내가 알고 있는 내 얼굴보다 더.

아마 오늘 피곤했으니, 착각일 것이다.

어쩌면 단순히 그냥 기분 탓일 수도 있고.






다음 날 저녁.

어제처럼 피곤하지 않음에도

거울 속의 내가 어제와 조금 다르게 보였다.


표정 때문인가?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리 봐도 어색했다.

그렇다고 정확히 뭐가 이상한지는 설명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답답하고,

손끝이 차가워졌다.







며칠이 지나도록,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는 그냥 넘길 수 없었다.


거울을 피하고만 싶었다.

거울 속 나와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꺼려졌다.


마음을 굳게 먹고, 거울을 확인한 오늘.

거울을 보자마자 확신했다.


이건 내 착각이 아니다.

거울 속의 ‘나’가 변하고 있다.


눈빛이 다르다.

익숙한 얼굴인데, 내가 아닌 것 같다.

표정이 미묘하게 낯설다.


나는 거울을 똑바로 바라봤다.


거울 속 ‘나’도 똑같이 나를 바라봤다.


나는 숨을 삼켰다.


거울 속 ‘나’도 숨을 삼킨다.


나는 머리를 넘겼다.


거울 속 ‘나’도 머리를 넘긴다.


거울 속 ‘나’가 눈을 깜빡인다.


나는 깜빡인 적 없는데.


혼란스러운 나의 눈동자와

평온한 거울 속 나의 눈동자가 마주친다.


거울 속 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기분 나쁘게 평온한 얼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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