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서울 명동에 위치한 대신증권 본사 앞에서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증권업종본부 대신증권지부(이하 대신증권 노조)가 대신증권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직접 현장에 가서 두 발로 뛰며 노조원들의 목소리도 듣고 대신증권의 입장도 취재했지만 결국 기사화하지 못했다.
회사의 이권이 달린 문제라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기자이기 전에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월급쟁이이므로. 하지만 현장에서 처절하게 울부짖은 목소리를 무시하기에는 기자로서의 최후의 양심이 계속 나를 부추겼다. 이 목소리를 뭉개는 건 기자로서의 펜대를 꺾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사만큼의 파급력은 없지만 내 뜻대로 온전한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이 공간에서 내가 취재한 내용을 풀어놓고자 한다. 대신증권 노조는 왜 본사 앞에서 회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을까. 그 배경을 이해하려면 지난 2019년에 발생한 라임 사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라임사태는 지난 2019년 7월 라임자산운용이 코스닥 기업들의 전환사채 등을 편법 거래하면서 부정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의혹에서 시작해 같은 해 10월 라임자산운용이 운용하던 펀드에 들어있던 주식 가격이 하락하면서 펀드런 위기에 닥치자 환매중단한 사건을 말한다. 이 당시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상당 수가 대신증권 반포지점을 통해 판매됐다. 이후 펀드런이 일어나자 대신증권은 라임펀드 판매로 인한 엄청난 손실을 그대로 떠안고 1068억원을 고객에게 배상했다.
당시 대신증권은 대체투자 전략점포로 키우고자 반포에 WM지점을 설립했다. 일반 지점에서는 주식 영업을 했다면 반포 지점에서는 펀드 영업에 초점을 맞췄다. 그 때문에 외부 인력이었던 장영준 센터장을 영입했다. 노조원들 말에 따르면 반포지점에서 근무한 12명의 직원들은 회사에서 복잡한 구조의 블라인드 펀드 상품 설계 방법, 레버리지 상품 등에 대해 전혀 설명해주지 않아 직원들은 상품에 대한 이해 없이 고객들에게 상품을 판매했다.
금융회사는 사모펀드와 같은 복잡한 금융상품을 판매하기 전에 직원들에게 적절한 교육을 제공할 법적 의무가 있다. 그러나 대신증권은 레버리지가 포함된 복잡한 구조의 초고위험 블라인드펀드를 리스크 심사에서 통과시켜 판매하도록 승인하면서 직원 교육을 한 번도 실시하지 않았다는 게 대신증권 노조의 설명이다.
라임 사태 이후 해당 펀드를 판매한 직원들은 고객에게 따귀를 맞고 매일 협박과 욕설에 시달리거나 형사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그 뒤로 법적 대응을 위해 값비싼 변호사 비용과 1년에 달하는 정직 기간으로 고객을 잃어버리며 고통 속에 지냈다는 게 대신증권 직원들의 입장이다. 나와 만난 대신증권 직원들은 사실 회사가 이런 구상권을 청구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이러한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직원들이 자기 돈으로 고객 피해를 보상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런다 지난해 11월 6일 경제개혁연대가 라임 사태로 인한 손해 보상을 위해 이어룡 대신파이낸셜그룹 회장, 양홍석 대신증권 부회장(이어룡 회장 아들), 나재철 전 대신증권 사장을 고소하겠다고 하자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대신증권이 경제개혁연대에 소송 제기 통보를 받자마자 인사위원회를 통해 라임펀드 판매 직원 전원을 대상으로 서울보증보험에 보험금에 대한 구상권을 청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대신증권이 보험금을 지급받는 순간 서울보증보험에서는 라임 판매 직원들에게 지급한 보험금에 대한 추심을 진행하게 된다. 직원 각자가 적게는 5000만원에서 많기는 2억4000만원에 대한 보험금이 청구된 상태다. 직원들은 이같은 보험금을 전부 대신증권이 받아가면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파산할 수도 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대신증권 노조는 대신증권의 내부통제 부실에서 발생한 라임 사태에 대해 회사가 오너 일가를 보호하기 위해 직원들을 제물로 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양홍석 부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단 한 번도 사과한 적 없다며 양 부회장을 비호하기 위해 직원들을 더 이상 탄압하지 말라고 규탄했다.
이와 관련 대신증권 측은 "고객에게 피해를 입힌 책임을 통감하고 있으며 재발방지를 위한 시스템 구축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며 "CCO를 새롭게 선임하고 상품내부통제부를 신설해 판매 중인 모든 금융상품 및 기 판매된 금융상품에 대해 점검하고 이를 통해 불완전판매가 자리잡지 못하도록 철저한 내부통제 시스템을 갖춰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회사는 이번 신원보증보험청구는 "직원들의 불완전판매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고 고객에 대한 책임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이뤄진 최소한의 조치"라며 "보증보험을 통해 직원들에게 청구된 금액은 전체 금액의 2%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소 금액"이라고 말했다.
이는 "직원들의 불완전 판매 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이라며 "이를 통해 직원들의 고객 보호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키고 완전 판매 시스템 구축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