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번째 푸른 봄
“언제 이렇게 해가 나서 밝아졌대?”
몽당연필처럼 몸집이 자그만 할머니가 발걸음을 가볍게 통통 옮기며 창가로 향했다. 흰 커튼을 두 갈래로 펼치자 하얀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창문을 열자 주름살이 깊게 팬 오종종한 얼굴 위로 밀려드는 바람이 상쾌했다.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산울림의 '아니 벌써'의 첫 소절을 흥얼거렸다. 휑뎅그렁한 병실 침대를 정돈하는 손길이 경쾌했다.
그때였다. 똑똑똑. 텅 빈 요양원 병실을 노크 소리가 채웠다. 이윽고 머리를 단정하게 묶어 올린 간호사가 문을 불쑥 열고 나타났다.
"할머니, 영순이 할머니~아직 안 가고 계셨어요?"
"어, 좀 있음 구씨 영감 오시잖아. 얼굴은 보고 가야지."
"역시 그것 때문에 계셨구나. 충복 할아버지 병원에 더 계신대요. 아직도 중환자실에 계신가 봐요."
"그래요? 어지간히 고비인가 보네."
"얼른 들어가세요. 수고 많으셨어요."
간호사의 설명에 영순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예정대로였다면 영순이 오랫동안 간병한 구충복 영감이 오늘 퇴원해 요양원으로 돌아왔을 터였다. 그런 구 영감을 본 영순은 환히 웃으며 빠짝 마른 대벌레처럼 앙상한 그의 온몸을 마사지하고, 등목도 하고, 고스톱도 치고, 밤새 꾸려온 이야기보따리를 풀면서 미주알고주알 재잘거렸을 터였다.
영순의 고된 일상 중에 잠시나마 숨통을 트여줬던 그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영순은 직감했다. 퇴원하면 다시 고스톱 치자던 그 약속은 이뤄질 수 없을 것이다. 충복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이 은혜는 내가 꼭 갚겠다고 했던 약속은 공수표로 먼지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항상 오르내리던 봉천동 고갯길을 오르는 발걸음에 실리는 압력이 평소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단순히 오래 알던 친구를 영영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세월의 무상함도 영순의 등허리를 무겁게 짓눌렀다. 충복이 구순을 넘어 고꾸라진 늙은이가 아니었더라면, 그보다 앞자리 숫자가 하나만 낮았어도 폐렴은 사람 목숨을 그리 쉽게 노릴만한 중병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영순은 걸음을 우뚝, 멈춰 섰다. 그러자 아직 거리가 환한 초저녁인데도 일찍 철문을 걸어 잠근 상점의 우둘투둘하고 불투명한 소재로 덧댄 출입문에 비쳐 일그러진 자신과 두 눈이 마주쳤다. 영순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상을 처음 본다는 듯 출입문을 향해 서서히 다가갔다.
그러자 출입문 표면 속 망그러진 영순도 문 바깥세상에 서 있는 영순이 신기하다는 듯 천천히 다가왔다. 20년 전 남대문 시장에서 구입한 뒤로 색이 바랜 화려한 꽃무늬 남방셔츠와 곳곳이 해진 베이지색 통 넓은 바지를 입은 아담한 키를 가진 한 여자가 가까이 왔다.
단골 미용실이 작년에 개점 기념으로 머리를 싸게 해 준다는 말에 힘껏 말아 올린 머리카락은 여전히 꼬불거렸고 눈이 내린 듯 하얗게 새 있었다. 이마 위를 가로지른 흉측한 수술 자국이 보였다. 얼굴에도, 목에도, 쇄골에도 주름지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피부는 다 트이고 검버섯도 군데군데 피어 있었다. 힘을 줘도 굽어진 등이 보였다. 영락없는 할머니 그 자체였다.
매일 외출 전 화장대 앞에 앉아 단장하면서 거울 속 매일 두고 보던 얼굴인데 왜 그렇게 낯설게 느껴지는지 영순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앞자리가 7로 들어선 만큼 당연한 일인 것인데 주름진 자신의 손도, 손길이 더듬으며 느껴지는 얼굴의 감촉도 왜 이렇게 불쾌한지 몰랐다.
영순의 머릿속에 '아니 벌써' 2절 첫 구절이 재생됐다. 그 말대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어느새 인생의 밤은 깊어진 채 영순은 꼬부랑 할머니가 됐다. 그녀에게도 한 때 머물렀을 한창 싱그러운 청춘, 젊은 시절은 얼룩지고 찌그러졌다. 한낮과 같았던 그 시절은 영순에게 또렷한 하나의 상으로 맺히지 않는다. 마치 지금 출입문 속 영순이 찌부러진 형태로 비치는 것처럼.
어디서 타박상을 입은 건지 사고였던 건지도 모르는 채 머리를 크게 다친 26살의 영순은 전남대병원에 한동안 의식을 잃고 몸져누워 있었다. 몸을 잘 가누지 못했지만 병원 신세를 오래 질 순 없었다.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성치 않은 몸으로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긴 어려웠다. 그 때문에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하루 벌어 하루 약값으로 쓰며 근근이 살아남았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오직 살아내는걸, 살아남는 걸 목표로 악착같이 살다 보니 '아니 벌써' 영순의 시간은 한밤중이 되었다. 누군가에겐 푸르렀고, 누군가에겐 아련하고, 누군가에겐 싱그러웠을 한낮이, 영순에겐 아득한 공백으로 남아있다.
영순은 저도 모르게 신행일이 불렀던 '청춘을 돌려다오'를 읊조렸다. 아무리 비싼 값을 치러도 돌이킬 수 없는 청춘을 찾는 그 노래를. 황혼길에 접어든 인생의 서글픈 애환을 담은 그 노래를.
누군가에게는 나훈아가, 누군가에게는 현철이 부른 노래로 남아있을 이 곡의 원조가 신행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훈아와 현철이 부른 버전은 철없던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는 느낌이라면 신행일의 원곡은 절박한 청춘에 대한 회한이 묻어난다. 경쾌한 곡조인 건 같지만.
영순은 몸을 돌려 다시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적한 길목을 다양한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가 가득 채웠다. 임영웅, 이찬원, 박지현과 같은 내로라하는 트로트 가수들의 흥겨운 가락들이 영순의 귓가를 사로잡았다.
아니야, 이 느낌이 아니야. 아니야.
영순은 고개를 가로젓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풍부하면서 유려한 곡조, 직관적인 가사, 무대에서 순식간에 관객을 잡는 스타성까지 갖춘 가수와 노래는 요즘에도 매일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요즘 노래에는 흐릿하고 아득한 영순의 지나간 기억과 현재를 이어주는 곡들에 살아있는 말맛이 없다. 심금을 울리는 가사, 구슬프면서도 정겨운 가락도 없다.
그만큼 이제 굳어버린 걸지도 모른다. 더 이상 새로운 음악을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뻣뻣해져 버린 걸 수도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어느새 몸도, 마음도 이미 같이 늙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젊은 시절과 단절되어 있는 영순에게 그 시절과 현재를 이어주는 건 무의식 속에서 떠올리고 있는 그 노래들밖에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겐 고루한 옛날 노래일 뿐이더라도 그 노래는 영순에게 기억도, 추억도 없는 그 시절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동아줄이다. 이제는 너무도 낡아서 제 발로 찾지 않고서는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곡들이지만.
영순은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노트북으로 유튜브에서 6070 가요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걸 위해 요양병원에서 김 간호사를 붙잡고 몇 번이나 질문을 반복해서 간신히 배웠다. 영순이 일하는 요양병원에서는 점심시간에 한해 노인 환자들의 정서 안정을 위해 예전 노래들을 재생하곤 했다. 정작 환자들보다는 옛날 가요들을 마음껏 들을 수 있다는 데 신난 영순의 신청곡이 제일 많았지만.
영순은 이 곡 저 곡 신청곡 목록을 줄줄이 읊다가 김 간호사가 컴퓨터로 플레이리스트라는 걸 만들어 노래를 재생한다는 걸 알고 나서 끈질기게 어떻게 만드는지 알려달라고 졸라댔다.
그 결실을 오늘 처음 맺을 차례였다. 그 생각에 영순은 가슴이 설레서 미소가 저절로 피어올랐다. 플레이리스트를 어떤 가수와 어떤 노래로 채울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렸다. 산울림, 해바라기, 한대수…. 좋아하는 가수와 노래를 끝도 없이 채워 넣고 무한정 돌려 들을 수 있다는 건 카세트와 라디오가 친숙한 영순에게는 상상해 본 적 없는 세계였다. 이제 그 세계에 첫 발을 내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부풀어 올랐을 때였다.
분명히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아니 벌써' 1절 후반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날이 밝을 때를 기다리는 청춘의 설렘에 대해 그린 대목이었다. 영순의 두 귓가에 또렷하게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영순이 머릿속에서 되뇌거나 흥얼거리는 게 아니라 분명히 스피커 밖으로 재생된 노랫소리였다. 대체 누가 지금 나온 지 거진 50년이 다 되어가는 원곡을 틀고 있는 걸까. 영순은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맞은편에 위치한 아담한 빌딩 1층에 자리 잡은 낯선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별다른 간판도 없이 외창 표면에 'CAFE'라는 영단어만 새겨진. 내부에는 단정한 목조 인테리어를 갖춘 카페였다. 길거리에 생생하게 울려 퍼지는 '아니 벌써'의 진원지는 분명 그 카페였다.
"이상하다. 여기 이런 카페가 있었나?"
영순은 고개를 갸웃했다. 집으로 가는 길목이라 매일 오르내리던 그 고갯길에서 본 적 없는 카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생생하게 울려 퍼지는 김창완의 맑은 목소리와 통통 튀는 베이스 리듬, 그리운 퍼즈톤 기타의 합주에 이끌린 영순은 저도 모르게 그 카페로 발길을 향했다.
"……계세요?"
"……."
딸랑. 영순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문 위에 매달린 작은 종이 짤랑 울렸다. 그러나 카페 내부는 적막했고 조명 하나 들어오지 않아 어두웠다. 인기척도 전혀 없었다. 어디서 들려오는지는 몰라도 '아니 벌써'의 선율만 뚜렷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무리 카페 내부를 둘러봐도 노래를 도통 어디서 재생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영순은 당혹스러웠다. 10평 남짓한 카페 내부를 몇 바퀴째 돌아봐도 별 소득이 없었다. 그저 옛날 가요를 좋아하는 카페 주인이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잠시 자리를 비운 게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등 돌려 카페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영순은 카페 뒤편에 미처 못 보던 샛문이 하나 놓여있는 걸 발견했다. 그 사이로 밝은 햇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주위에 온통 어둠만이 드리워졌던지라 열린 문틈으로 비좁게 들어온 하얀 햇빛이 더 눈에 띄었다.
"여기 저런 데가 있었나?"
샛문 바깥에서 '아니 벌써'가 더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에 영순은 성큼성큼 샛문으로 다가가 문고리를 당겨 바깥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샛문 너머로 건너온 영순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좀 전에 그 어둡고 비좁던 카페와 연결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그 뒤엔 탁 트이고 환한 고풍스러운 공간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생기발랄한 오렌지빛 조명이 가득한 음악실과 같은 그 공간은 '아니 벌써'의 2절 후렴구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한쪽 벽면 전체에는 LP판이 빽빽하게 꽂힌 뮤직박스가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테이블을 빼곡히 채운 채 삼삼오오 모여 앉은 사람들이 저마다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뮤직박스 앞에는 DJ가 LP판을 재생시킨 채 혼자 흥에 겨워하고 있었다. 영순 혼자 그 가운데에서 영문을 모른 채 오도카니 가만히 서 있었다.
"어이, 레지! 여기 블랙커피 한 잔 더 줘!"
"네, 금방 갑니다. 영순아, 뭐 해? 얼른 커피 타야지"
"나, 나?"
"그럼 여기 양영순이 너 말고 또 있어? 빨리 해."
한 배불뚝이 신사의 주문을 받은 긴 생머리의 종업원으로 보이는 여자가 영순에게 그렇게 한 마디 던지고 지나갔다. 영순보다 까마득하게 어린 게 분명한 발칙한 아가씨였다. 하지만 그보다 영순은 방금 자신이 들은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져 정리가 필요했다.
"이, 이게 뭐야?"
영순은 무심결에 내려다본 자신의 두 손등을 보고 당황했다. 주름살 하나 없이 매끈하고 반들반들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손톱은 알록달록 갖가지 색깔의 매니큐어로 물들어 있었다. 여기저기 주름지고 갈라지고 부르튼 원래 영순의 손등이 아니었다. 화들짝 놀란 영순은 놀란 망아지처럼 다방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다 화장실 문을 박차고 다짜고짜 들어갔다.
"대,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영순은 세면대 위 붙어있는 거울 속 자신을 보고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강한 파마약을 써서 둥글게 말아 올렸던 새하얀 머리칼은 어깨 부근까지 윤기 나며 넘실거렸고 짙은 검은색이었다. 얼굴과 목, 쇄골 그 어디서도 주름살도, 검버섯도, 부르튼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수십 년 동안 영순의 이마 한가운데에 남아있던 수술 자국도 없었다. 굽은 등도, 왜소한 팔다리도 없었다.
화려한 원색의 분홍색 프릴이 달린 블라우스에 진주 브로치, 노란 스커트를 입은 푸릇푸릇한 한 뽀얀 아가씨가 그 안에 담겨 있었다. 영순은 도저히 믿기지 않아 몇 번이고 물을 끼얹어 세수를 하고, 눈을 비벼봤지만 그럴수록 거울 속 아가씨가 더욱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꺄악!"
몇 번을 다시 봐도 이 모습이 현실이란 걸 깨달은 영순은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지르다 그만 하이힐 뒤꿈치가 바닥의 패인 부분에 끼어 엉덩방아를 찧었다.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어떻게 인지는 몰라도 영순에겐 공백으로 남아있던 그 시절이 돌아왔다.
마른하늘에 떨어진 날벼락처럼, 그렇게 청춘이 돌아왔다.
★DJ's Pick
신행일-청춘을 돌려다오(1967년)
신행일은 본인 노래보다 1960년대 최고 인기 가수 중 한 명이었던 배호의 모창 가수로 더 알려졌다. 이 노래의 가사를 지은 작사가 월견초(본명 서정권)는 남일해의 이정표 등 여러 유명한 노래를 작사했다. 그러나 38세의 이른 나이에 숨졌다. 청춘을 돌려다 오는 이후 1983년 아세아레코드를 운영하던 최치수가 일부 가사를 개작했다. 이 버전으로 현철, 나훈아(1984년)가 잇따라 리메이크하여 원곡보다 더욱 유명세를 탔다.